다원주의를 통한 이념과 이념보기
    2010년 10월 30일 12: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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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폴 슈메이커, 후마니타스, 35,000원)은 다원주의 정치이론 학자 폴 슈메이커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12가지 이념을 횡단 비교하고, 각 이념이 서 있는 철학적 바탕과 논쟁적인 정치 쟁점에 대해 각 이념이 취할 입장을 세밀하게 살핌으로서, 이념과 이념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책 표지 

4가지 철학적 가정과 7가지 정치적 원리, 12가지 이념을 비교의 관점에서 본 현대 정치사상 교본으로, 하나의 이념으로 전체를 설명하고 모든 문제에 해법을 내리려는 ‘신념’은 내려놓고, 여러 이념들의 장단점을 살려 공적 문제를 다루며 ‘유연’하게 다가가고 있다.

이 책은 이념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시장을 선호하는 사람은 자유주의를 좋아하고, 시장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유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피상적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나을 법한 방식으로 이념을 구분해 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이 책은 다원적 공공 정치를 이루기 위한 ‘철학’(다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이념이 아니라 철학으로 접근할 것을 권하는 셈이다.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이념을 과도하게 평가해 다른 이념을 상대적으로 덜 평가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기에 철학과 이에 바탕을 둔 정치적 원리가 공적 논의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판단 기준별 횡단 비교 없이 처음부터 하나의 이념만을 살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각 이념의 장단점은, 이 책에서처럼 (철학적 가정과 정치적 원리라는) 공통된 기준으로 이념들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폈을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이 책은 결국 인간 삶의 개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념이 존재한다고 본다면, 사회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념들 사이의 대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적 문제에 대해 적대적ㆍ배타적 논쟁이 있었을 뿐, 좋은 대화를 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이론 틀은 현대 정치사상에서 다원주의가 얼마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알려 주며 저자가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다원주의는 각자의 이념적 입장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모든 정치 이념들의 저변을 이루는 합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메타 정치 이론이다.

그런 점에서 다원주의는 여러 이념들이 한데 모여 합의를 도출하는 데 필요한 원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념들과는 다른 지위를 갖는다. 이 책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이라는 말이 ‘다원주의’와 혼용되는 것도, 다원주의가 ‘그릇 이념’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다원주의는 일종의 규범적인 정치 이론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다원주의가 가장 명확하게 지지하는 규범이란, 대단히 추상적인 차원에 속하며, 흔히 과정 지향적이거나 절차적이다. 결국 다원적 정치의 목적은 다원적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 각자가 적용하려는 가치와, 그들이 숙의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지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이 책은 5장에서 15장까지 정치 이념의 철학적 가정의 4가지 차원, 정치적 원리 7가지 차원으로 세분해 살피며 철학적 가정들과 정치적 원리들을 모두 합한 11가지 판단 기준에 의거해 12가지 주요 정치 이념들을 횡단 비교함으로써 총 132개 항목에 걸쳐 정치 이념을 비교 분석한다.

각 정치 이념들이 등장한 역사적 과정과 그 중심 사상에 대해서는 2~4장에서 서술된다. 먼저 19세기와 20세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8개의 주요 정치 이념을 소개하고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 자유주의를 구분하며, 전통적 보수주의와 현대 보수주의를 구분한다. 아나키즘ㆍ마르크스주의ㆍ공산주의는 서로 구분되는 별도의 이념으로 다룬다.

16장은 한국어판에 특별히 실린 보론으로, 원서가 출간된 2008년 이후 미국에서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변화된 상황과, 오바마 정부를 어떤 이념 틀로 바라볼지에 대한 분석을 다루었다. 이로 인해 한국어판은 본서의 개정판이라는 의의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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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 폴 슈메이커 Paul Schumaker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2년부터 미국 캔자스 대학의 교수로 재직해 온 원로 정치학자이다. 오랫동안 미국 정치의 체계적인 편향에 관심을 두어 왔고, 이를 토대로 다원주의 정치 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한 Critical Pluralism을 1991년에 출간했다.

이 책에서 슈메이커 교수는 지역 정치 공동체가 세 가지 정치 목표―정치 원칙과 정책의 융합, 책임 있는 대표성, 복합적 평등―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가를 분석했다. 그 후 규범적 정치 이론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여 1996년에『정치사상의 이해 IㆍII』(Great Ideas/Grand Schemes)(공저, 오름, 2005/2007)를 출간했다.

그는 또한 2000년 부시-고어 대선 논쟁 이후 대통령 선출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Choosing Our President: The Electoral College and Its Alternatives를 공저했다. 2008년에는 다원적 공공 정치를 주창하는『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From Ideologies to Public Philosophies)을 출간하여 정치사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중도 좌파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진보적 다원주의’에 관한 저서, 그리고 정책 형성에서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도덕적 다원주의’에 관한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역자 –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겸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 초빙교수이다. 저서로『인권의 문법』(2007),『인권의 풍경』(2008), Human Rights and Civic Activism in Korea(2005), 편ㆍ역서로『전 지구적 변환』(2002),『인권의 대전환』(2009),『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2009),『세계인권사상사』(2005) 등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 박사이며, 하버드 대학 로스쿨 펠로우를 지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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