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로 물든 '반도체의 날' 축제를 멈춰라"
    By 나난
        2010년 10월 29일 03: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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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0월 29일은 ‘반도체의 날’이다. 지난 1992년 반도체 수출 100억 달러 돌파를 기념해 지식경제부가 지난 2008년부터 제정해 매년 행사를 개최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수출 100억 달러 돌파를 만든 노동자들은 그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지경부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제3회 반도체의 날’을 맞아 ‘반도체산업 2015비전 선포’와 ‘반도체산업 동반성장 협약식’을 개최하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가 “축배를 들기 전에 노동자들의 눈물부터 보듬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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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삼성전자에서만도 100여 명의 직업병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30여 명의 사망자가 나타났다. 이들의 산재신청은 번번이 불승인 났으며,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업무연관성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며 “개인질병”이라 주장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이날 은탑산업훈장을 수여한다.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반도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떼어놓고 무엇을 기념하고, 축하를 할 수 있느냐”며 “우리는 남의 집 잔치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게 아니라, 오늘의 반도체 산업을 만든 노동자들의 아픔을 먼저 보듬고 책임부터 져야 한다는 걸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아파서 울고, 슬퍼서 울고 떠나간 자녀 생각에 우는 사람이 아직 많음에도 불구하고 축제를 하는 반도체 산업 주주들이 양심이 있는 것이냐”며 “내 딸은 6년간 삼성에서 일하다 1급 장애를 얻어 혼자 밥을 먹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출이라도 하려면 빨대와 기저귀를 챙겨야 한다”며 “정정당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로, 하루 속히 산재를 인정받아 치료라도 받고,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라도 위로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이날 한 씨는 산재보험 재심사 청구를 냈다. 이미 지난해 3월 24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바 있지만, “역학조사 결과 업무관련성이 낮다”는 이유로 불승인됐으며, 지난 8월 9일 산재 심사청구 마저도 불승인 통지를 받은 바 있다.

    한 씨는 지난 1996년 삼성전자 LCD 회로기판을 만드는 사업장에 입사해 6년간 납땜하는 일을 담당해오며, 납으로 된 솔더크림과 플럭스, IPA 등 몸에 해로운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장갑조차 제대로 착용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안전교육도 받지 않았다.

    한 씨는 “취업 후 일하다 병을 얻었기 때문에 산재를 신청하는 것은 (나의) 당당한 권리”라며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에서 준 자료만으로 산재여부를 판가름했다”며 “산재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녀 씨는 “이번에는 산재인정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 재심사청구를 접수했다”며 “지난번 면담에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믿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의 산재보험 재심사 청구 결과는 2~3개월 후 나올 예정이다.

       
      ▲ 반올림 활동가들이 ‘제3회 반도체의 날’ 행사가 진행 중인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은영 기자)
       
      ▲ 삼성반도체 등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노동자만도 30여명에 이른다.(사진=이은영 기자)

    한편, 계속된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재 불승인과 삼성 측의 외면에 대해 국제사회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럿 D. 브라운, MPH(공중 보건학 석사), CIH(공인인증 산업 위생학)와 리처드 클랩, D.Sc. (Doctor of Science; 과학 박사) MPH(공중 보건학 석사) 등 미국, 대만, 스코틀랜드 보건․건강 전문가 22명이 백혈병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지지 서명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삼성과 한국정부에 △화학물질의 구성성분과 독성정보 공개 △생산시설 모니터링․산업위생 노출 자료 공개 ․삼성 노동자 건강진단 방법과 결과 공개 △피해자 정당한 보상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반올림이 지난 3월부터 진행한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청원운동’에도 세계 50여국 7,0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게 노동자를 보호하고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며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고, 삼성의 책임을 분명히 하라”며 “반도체 산업 노동과정의 유해요인에 대한 진실을 노동자와 시민에게 공개하고, 안전하고 공정한 일터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반올림은 이날 기자회견 후 삼성전자 등에서 백혈병을 얻은 피해자 및 사망자들의 이름이 적힌 방진복을 입고 피를 상징하는 장미를 뿌리고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반도체 노동자들은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며 “피로 물든 반도체의 날의 축제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삼성과 정부의 무책임을 꾸짖으며 반올림과 국제사회는 청원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며 “삼성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에게 사과할 때까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과 이미 죽어간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정부가 삼성의 책임을 묻고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쟁취할 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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