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반노조' 아니라 '무노조'
        2010년 10월 29일 1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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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경 위원장(사진=레디앙) 

    2010년 10월 28일 오전. 나는 이 숫자에 과연 의미부여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며 서초구에 있는 행정법원으로 향했다. 청년유니온은 청년세대들의 노동조합을 표방하며 지난 3월 13일 창립식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이때만 해도 나는 청년유니온이 헤쳐나가야 할 시대의 무게감을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 했다. 오히려 청년들의 노동이 지극히 불안정한 시대에 청년유니온이 너무 늦둥이로 태어난 거 아니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

    하지만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제출한 이후 2차례의 반려와 1차례의 보완이라는 고용노동부의 행태에 직면하며, 나는 오늘의 청년들이 그리고 청년유니온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감을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우리는 지난 7월 13일 노조설립 반려처분 취소 소송장을 제출하였고 이에 대한 공판이 10월 28일 오전 11시 20분에 있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청년유니온을 반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3가지의 요지와 그에 대한 청년유니온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 이유는 재판에서 고용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의 노조설립 문제를 두고 언급한 내용들이 현 정부가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여실히 드러내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첫 번째 주장은 구직자, 실업자가 주축이면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서울여성일반노조는 ‘구직자도 헌법상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끌어내며 한국의 노동운동사에 너무나 유의미한 결론을 만들어 냈다. 사실 청년유니온이 탄생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서울여성일반노조의 경우 25명의 조합원 중 4명만 구직 상태였기 때문에 실업자가 주축이 된 노동조합이 아니라서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은 실업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실업자가 주축이 되는 조직은 노동조합의 애초 목적인 근로 조건의 유지 개선을 위한 활동보다는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적 행위를 주로 할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업대책이 그간 효과도 의지도 없었던 이유를 엿볼 수 있다.

    헌법을 부정하는 노동부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3권 중 단결권을 가지게 되면 단체교섭권은 당연히 가지게 되는 권리이므로, 역으로 말해 단체교섭할 대상이 없다면 단결할 수 있는 권리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체교섭할 대상이 없는, 이른바 정해진 사업장이 없는 사람의 경우까지 허용하기 시작하면 사회에 혼란을 끼칠 수 있으므로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은 신고제라더니 이렇게나 까다로운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애시당초 허가제로 했어야 하지 않나?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발언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중 단결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도 자신들이 허가하는 것만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공무원노조, 전교조, 건설노조 등에 가해지는 노조의 존립 자체에 대한 공격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사진=청년유니온 카페) 

    현재 청년들의 현실로 잠깐 눈을 돌려보자. 일단 실업자, 구직자와 일하고 있는 청년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반듯한 직장이 있는 소수의 청년들을 제외하면 비정규직이나 프리터, 알바와 같은 불안정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취업과 실업을 오고 간다.

    그리고 요즘 같이 구직 활동이 깨진 장독에 물 붓는 것처럼 취업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속에서 알바 안 하며 구직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다. 다만 그 알바가 단기직, 임시직이다 보니 사업장을 정확하게 지칭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노동 유연화 정책을 펼쳐 오신 ‘선진적인 정책의 필연적 결론’이므로 이들이 노동자냐, 아니냐라고 시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엄밀하게 말해 청년유니온 조합원 중에는 구직자보다 노동자가 더 많은 조건이다. 그럼에도 청년유니온이 나서서 노동자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은 건 고용노동부의 산수 놀음에 끼고 싶지 않아서이다.

    "구직자도 노동3권" 판례 무시

    서울여성노조는 구직자가 소수지만, 청년유니온은 대다수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구직자를 한 명이라도 노동조합원의 구성원으로 인정했다면 이는 구직자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구직자가 몇 명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실업자가 대다수라면 노조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실업자도 시간이 지나 노동자가 되면 자신들이 누릴 권리들이기 때문에 현재에 일을 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근로 조건 개선을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구성원으로 인정이 가능한 것이다. 2004년 대법원 판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동부의 다음 주장은 청년유니온은 정치투쟁을 주로 하는 사회단체이지 노조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구차하다. 고용노동부가 굳이 청년유니온을 반려하기 위해 심사 권한 밖의 문제를 끄집어 와서 구구절절 반론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불안정한 노동과 청년실업의 문제가 왜 개인의 문제가 아닌지에 대한 케케묵은 설명은 이제 그만 하련다. 다만 청년유니온의 활동 그 자체가 정치적이냐 아니냐의 심사는 청년유니온 노조 설립 신고의 심사 기준이 될 수 없다.

    노조 설립 신고 심사 기준은 노조법에 기재된 것처럼 제출된 문서로 진행하게끔 되어 있다. 그 문서에 하자가 있다면 그 문서를 보완하면 되는 것이다. 이 문제야 말로 고용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을 노조로 인정해 주고 난 후에 다투어 보아야 할 문제이지, 노조로 인정도 안 하면서 이런 평가를 내리다니 관심이 지나쳐도 문제다.

    오늘 고용노동부를 변호해 준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실업자나 구직자도 당연히 노동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법률이 문제이기 때문에 법률을 바꾸지 않는 한 청년유니온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 변호사님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묻고 싶었다. ‘법률의 문제인가요?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당신들의 문제인가요?’ 책임을 전가하는 논리도 참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변호사의 뒤통수를 향해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청년유니온의 노조설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논쟁들의 근간에 이 정부가 노동조합과 노동3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천박한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부는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반노조주의를 넘어 무노조주의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오늘 고용노동부측은 이렇게 말했다. “청년유니온을 노조로 인정하게 되면 중, 고등학생들도 노조를 만들어 사회혼란이 온다” 몰랐다. 그런 방법도 있는지는, 생각해보니 한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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