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노동자들은 싸움을 잘한다?
        2010년 10월 29일 1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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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성신여대 집단해고 투쟁 승리
    2008년 연세대 주차관리원 해고 투쟁 승리
    2008년 연세대 체불임금 투쟁 승리
    2009년 고려대 단협 승계 투쟁 승리
    2010년 이화여대 노조 결성 및 임단협 체결
    2010년 고려대 폐지 투쟁 승리
    2010년 고려대병원 단협 체결 승리
    2010년 덕성여대 파업과 점거농성 끝에 임금인상 투쟁 승리
    2010년 ‘따뜻한 밥 한끼’ 캠페인 대중적 성공
    2010년 청소노동자 노래자랑 ‘장미빛 인생’ 개최
    2010년 대학교 비정규직 집단교섭 쟁취

       
      ▲ 공공노조 서경지부 덕성여대분회의 홍보 활동 (사진=공공운수노조준비위)

    모두가 지난 몇 년간 이뤄낸 (가)공공운수노조준비위 공공노조 서경지부(이하 서경지부) 승리의 기록이다. 그야말로 붙었다 하면 승리요, 싸웠다 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요즘은 노동자들의 싸움은 구속과 해고, 심지어 건강한 노조 조직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는 어려운 시절이다. 

    이기는 방법

    비정규직 투쟁은 KBS 비정규직, 한통계약직, 기륭, 동희 오토, 이랜드 투쟁에서 보듯 장기투쟁과 극한투쟁으로 점철돼왔다. 그 긴 시간 싸움을 벌여오는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도, 연대하는 사람들도 지쳐나가기 일쑤였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우면 승리한다는 말은, 책이나 노개 가사에서만 있을 뿐, 현실에서는 이긴 기억이 별로 없는 요즈음이다. 이 같은 어려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최근 몇 년간 서경지부 청소노동자들이 일궈낸 승리는 그런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경지부는 공공노조가 출범할 당시인 2007년 조합원이 800명이었으나, 2010년 현재 1,600명으로 늘었다. 지금도 노조를 만들겠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곧 서울 시내 중심가 대형 빌딩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설립도 계획되고 있다.

    서경지부는 또 지난 22일 9개 대학청소용역 사용자와 2011년 임단협 상견례를 갖고 청소노동자 최초로 집단 교섭을 가졌다. 장소도 그들의 안방인 민주노총 회의실이었다. 집단 교섭을 통해 명실공히 서울 전 지역 대학의 청소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한발짝 다가 선 것이다.

    권태훈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앞으로 서울시내 전 대학가의 청소노동자들을 모두 조직하는것이 목표"라며 "장기적으로는 1만명 이상의 청소노동자들 조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투쟁의 승리가 조직적 성과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서경지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무엇이 다르기에 매번 이기는 싸움을 하는 것일까?

    낯선, 반가운 우군들

    서경지부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는 언제나 ‘우군’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대’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보여준 ‘연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의 ‘우군’에는 같은 소속인 민주노총 조합원보다는 학생과 시민일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서경지부는 이들과 함께 하는 고리를 만들어냈다. 아무런 법적 의미도 효력도 없는 ‘지지 서명’을 전체 학교 학생들의 2/3 이상을 받아냈다.(성신여대, 고려대) ‘포스트 잇’에 응원 문구를 쓰도록 했고(성신여대 투쟁) 학생들 스스로 학교의 본관을 점거하도록(고려대) 했다.

    시민들도 이들의 연대 전선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했다. 인터넷 포털의 다음 아고라를 통해 서명하게 했으며, 노조 행사(조합원 노래자랑 ‘장미빛 인생’)에 시민들이 직접 모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우군’과의 연대 활동은 언론에 자주 보도됐으며, 주요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이후 대부분 여론은 청소노동자들의 편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같은 여론의 힘으로 사용자와 학교를 압박했다. 학교와 사측은 "어, 어" 하는 순간 불리해진 여론에 백기를 들었다. 청소노동자들을 무시했던 학교 측이 당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수순은 언제나 비슷했다.

    수오지심과 시비지심

    그러면 이처럼 학생과 시민으로 구성된 ‘우군’들이 적극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우군’들의 ‘염치’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어머니 뻘의 청소노동자가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우고 있다.’ ‘새벽부터 나와 일을 하면서도 노동조건은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침밥을 먹지 못하기도 하고 점심은 화장실에서, 창고에서 식은 밥에 김치를 얹어 해결하고 있다.’ 이런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는 학생과 시민의 ‘염치’를 자극했고, 나아가 단순한 동정심에서 이 문제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생각하는 계기도 만들어줬다. 

    하지만 1차적으로는 지난 2008년 성신여대의 집단해고 투쟁을 지켜본 성신여대 학생들은 "우리 학교에서 어머니들을 해고한 것을 보니 창피하다"고 했다. 2010년 고려대의 폐지 투쟁에 함께 했던 학생들은 학교측에 "민족고대 100년을 치욕스럽게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장밋빛 인생을 후원하는 다음 아고라 모금 청원에 서명한 한 시민은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고도 했다. 이런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 함께 투쟁했다. 주변에서 이들의 투쟁을 보고 느끼는 심정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수오지심’을 불러냈으며, 나아가 ‘시비지심’까지 ‘발단’시켰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승리의 추억

    이제 서경지부의 청소노동자들은 으레히 "싸우면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이런 자신감은 싸우는데 있어서 공격적이면서도 유연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밀려서 하는 파업 투쟁이 아니라 먼저 선제공격을 하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 여론을 살핀다. 그리고 또 다시 기습적으로 싸움을 건다.

    2010년 덕성여대 임단협 투쟁에는 교섭 결렬 2시간만에 본관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전광석화다. 이런 투쟁이 가능한 것에는 "우리가 싸우면 언제나 이겼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승리의 기억 때문이다.

    투쟁의 승리는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지난 청소노동자 노래자랑에 참여한 한 조합원은 "노동조합 때문에 비로소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자부심이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승리와 자신감, 자신감과 승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분명한 타깃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이다. 따라서 원청 업체는 "고용 당사자가 아니"라며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기 일쑤고 하청업체는 "권한이 없다"며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경지부는 싸움의 대상을 원청업체로 돌렸다. 어찌보면 하청업체를 무시할 정도로 하청업체보다는 원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하고 싸움을 걸었다.

    권태훈 부장은 "원청인 대학교측에 많은 부담을 줬다. 처음에는 무시해도 끝까지 원청만을 상대 했다. 우리는 원청업체를 꺼려하지않고 싸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봤다 원청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원청인 학교에서 하청업체에 ‘요구 조건을 들어주라’고 해야 문제가 해결 됐다."고 말했다.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가 있다. 하드웨어 성능만 본다면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은 경쟁 상대가 안된다. 만약 게임기에서 하드웨어만 보고 산다면 당연히 플레이스테이션이 우세하겠지만 사람들은 닌텐도를 더욱 선호했다. 그것은 닌텐도의 소프트웨어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움직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파업의 영향력만 본다면 철도나 화물연대, 금속노조의 현대차 파업이 더 강력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파업으로 사람들의 감동을 끌어오는 것은 청소노동자들이었다.
    공공부문의 파업도, 정규직 노동자의 파업도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처럼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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