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자진해산? 임금 자진삭감? 뻥!
        2010년 10월 21일 04: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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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장: 대전에서 올라온 이 기사는 뭐야?

    사회부: 노조가 자진해산 했다는 단신입니다.

    국장: 그래? 민주노총 산하 노조 아니야? 그럼 단신 아니지. 탈퇴를 제목으로 빼고 크게 실어.

    사회부: 근데, 민주노총이 싫어서 탈퇴한 게 아니고, 부설기관과의 조직 분리를 위해 탈퇴한 걸로 되어 있어서요. 뒤에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설기관 조합원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해산이라고 보기가 애매합니다.

    국장: 누가 민주노총 싫어서 탈퇴했다고 뽑으래? 일시적이든 뭐든 탈퇴했으면 자진해산이지. 어? 연봉도 3% 삭감했네?

    사회부: 본원 노조가 일시적으로 없어지고 나니까 사측에서 삭감을 단행한 듯합니다.

    국장: 공공연구노동조합이 뭐하는 노조야? 들어본 것 같은데?

    사회부: 얼마 전에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 구조개편 문제로 단식도 하고, 요즘 계속 시끄러운 노동연구원이나 건설기술연구원노조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국장: 그럼 자발적으로 노조 해산하고 고통분담 노사합의로 전 직원 임금삭감으로 무조건 엮어. 연봉 3% 삭감 부분 리드로 빼고, 뒤에 부설기관 조합원들 남아 있다는 부분 잘라. 스트레이트 기사는 넘치면 뒤부터 자르는 거 몰라? 과학기술계 노조라는 걸 강조하고 민노총 소속 노조 자진해산을 제목으로 뽑아서 3단 실어.

     

    위 박스는 물론 가상의 시나리오다. 어제 날짜 (2010년 10월20일)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민노총 소속 기초과학지원연 노조 자진해산> 기사를 읽으며, 신문기자 5년간 생활을 했던 필자 머릿속에는 이런 동아일보 편집국 풍경이 그려졌다는 것일 뿐. 근데 꼭 가상이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왜곡을 넘어, 알고도 엄연한 거짓보도

    동아일보 보도 요지는 민주노총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소속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노조가 최근 자진해산을 했고, 대신 직원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고통분담을 위해 전 직원 연봉 3%를 삭감키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는 사실일까?

       
      

    당초 한국기초과학연구원노조(정식 명칭은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기초과학연구원지부가 맞지만, 편의상 연구원노조로 쓰기로 한다)에는 본원 소속 조합원 20여 명과 부설기관인 핵융합연구소 소속 조합원 50여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사실 확인부터 하자면, 현재 탈퇴한 조합원은 모두 본원 소속이고 부설기관 소속 조합원 50여명은 그대로 연구원노조 조합원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자진해산”이라는 기사 자체가 거짓이다.

    뿐만 아니라 “탈퇴한 조합원들이 노조 대신 직원협의체를 택했다”는 논리도 상당한 왜곡이다. 본원 소속 조합원들은 이전부터 노조 운영 등의 현실적 애로로 부설기관 노조와의 분리를 요구해 왔고 공공연구노조 중앙의 방침 등으로 여의치 않자 노조 분리의 방법으로 개별탈퇴를 택했던 것. 일시적으로 탈퇴한 20여 명의 조합원들은 본원과 부설기관노조가 분리되면 재가입을 할 예정이다.

    연봉 삭감도 고통분담을 위한 노사합의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노조가 소멸된 상태를 틈타 연구원측에서 일방적으로 임금삭감을 단행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공공연구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 신문 논조 아시잖아요.”

    그럼 어떻게 이런 기사가 써졌을까? 왜곡이야 하도 당해서 그러려니 한다고 쳐도, 소위 메이저급 신문이라고 하는 동아일보 기자가 노조가 해산이 됐는지 아닌지에 대한 팩트 확인조차 안하고 기사를 썼을까?

    보도를 접한 공공연구노조는 즉각 해당 기사를 쓴 이기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기자는 “우리 신문 편집방향을 잘 알지 않느냐”며 “핵융합연구소 조합원들이 남아있다는 내용이 원래 기사에는 있었는데 삭제됐고 데스크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강조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기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사실 노조가 다 탈퇴됐다고 해서 그렇잖아도 타 노조에 영향은 없는지 취재차 다른 지부장님(대전지역 공공연구노조 소속 연구원노조 위원장을 뜻함)한테 전화도 했었는데 그런 거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기사의 중간쯤에 있는 ‘이번 해산 결정은… 다른 정부 출연연구기관 노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는 문장은 누가 써넣었다는 말인가.

    “4대강 공사는 대운하”라는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 이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징계와 해고로 시끄러운 건설기술연구원노조가 소속된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준) 산하 공공연구노동조합이다. 지난해 일방적 단협해지에 맞서 85일간 파업을 하고 아직까지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노동연구원노조도, 민영화 반대를 위해 간부들이 5일씩 돌아가며 릴레이 단식을 벌이는 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노조도 공공연구노조 소속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 통폐합 저지를 위해 위원장 단식까지 불사하고 있는 전국공공연구노조의 사기를 꺾겠다는 동아일보의 편집의도가 너무 빤해 유치할 지경이다.

    신문의 생명은 정론집필일진데 있는 걸 없다고 하고 틀린 걸 맞다고 해도 구독률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저 자신감, 정정보도 요청이 아무리 들어와도 자신들은 건재할 거라는 저 오만방자함, 정말 우리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의 힘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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