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결임박→결렬→경찰투입→농성…
    By 나난
        2010년 10월 18일 03: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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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만 올라가셨으면 좋겠는데….”
    “(웃음) 나는 올라가야 하는 운명인가 봐요. 계속 (농성을 위해) 올라가게 되네요.”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이 이번엔 굴삭기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구사옥을 매입한 코츠티앤디가 지난 15일 굴삭기를 동원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공사강행 중단, 성실교섭 촉구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와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서울시당 등은 18일 기륭전자 측에 공사 강행 중단과 성실교섭과 공사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말에 경찰까지 동원해 농성을 해산하려 했던 것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난 15일 시공사와 기륭전자 측은 경비실을 허물겠다며 포크레인을 앞세워 들어왔다"며 "지금은 긴장 상황의 연속으로, 어떻게든 끝장을 보는 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문대 변호사(민변 노동위 부위원장)은 "파견철폐 투쟁에 기륭동지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며 "자본과 정권은 직접고용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만들고 있을 때, 기륭전자 현장과 함께 법정에서도 싸우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추석을 전후한 실무교섭을 통해 최종안까지 접근했으나 기륭전자 사측의 일방적 교섭 결렬로 조합원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등 탄압을 받고 있다"며 "성실한 태도로 나서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합의하고, 노동자들이 이제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이 굴삭기 위에서 4일째 고공농성을 진행 중이다.(사진=이은영 기자)

    기륭전자의 장기투쟁은 경찰이 투입되기 몇일 전만 해도 곧 타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13일에 조인식이 이뤄질 것으로 예정되는 등 마침내 투쟁 종료가 임박한 상황까지 진전이 됐다.

    2008년 김 분회장의 93일간의 단식은 물론 철탑농성과 한나라당 점거 등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요구했던 것은 단 하나, “직접 고용”이었다.

    조인식 하루 앞두고 결렬

    2010년 9월 추석 직전, 코츠티앤디는 “기륭전자 노사 간 협상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노조의 농성으로 인해 기륭전자 구사옥에 세울 아파트형 공장 건설을 하루도 더 지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의 농성은 기륭노사는 물론 코츠티엔디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사 간 협상은 시작됐다. 애초 직접고용의 기한 등에 대해 이견은 있었으나 점차 의견은 좁혀지는 분위기였다. 2~3차례에 걸쳐 “곧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소식이 퍼졌다. 그리고 지난 12일, 노사는 직접고용 시한과 투쟁 기간 받지 못한 월급 조의 위로금 등 구체적인 내용에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조인식을 하루 앞두고 기륭전자 측은 최종결렬을 선언했다. “정규직 직접고용만은 안 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분회장은 “회사가 우리를 우롱했다”며 “최동렬 회장이 코츠티앤디 등의 압박에 밀려 교섭을 진행했는데 결국 막판에 뒤집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은 ‘처음부터 직접고용은 안 된다’고 말해 왔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노조 조합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흥희 조합원은 “최 회장은 ‘직접고용은 죽어도 안된다’,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며 “결국 이번 협상은 우리를 가지고 논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지난 며칠 간 기륭전자에서 벌어진 상황은 지난 2년 전과 닮아 있다. 2008년 6월 노조는 당시 배영훈 기륭전자 사장과 합의안을 도출했다. 회사는 2년 후 정규직 복직을 제안했고, 노조는 1년 후 복직을 요구했다. 협상을 진행하며 그 간격은 1년 6개월로 좁혀지기도 했지만 마지막 조정 당시, 회사 측은 합의를 깼다. 당시에도 최 회장이 ‘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자회사로의 복직’이라는 양보안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2년 전과 닮은 꼴

    조합원들은 집단 단식에 들어갔다. 오랜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조합원이 하나 둘 발생했고, 김 분회장은 93일간의 단식을 이어갔다. 2010년 10월 현재, 회사가 또 다시 합의안을 백지화하자 윤종희, 오석순 조합원이 지난 13일부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15일 대형 굴삭기가 농성장에 투입됐다.

       
      ▲ 18일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기륭전자의 성실한 교섭 촉구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이은영 기자)
       
      ▲ 지난 12일 기륭전자의 교섭결렬 선언 후 윤종희, 오석순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사진=이은영 기자)

    당시 농성장을 지키던 문재훈 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은 굴삭기 앞에 앉아 온 몸으로 현장 진입을 막았다. 유흥희 조합원은 굴삭기 앞바튀 앞에 드러누웠고, 송경도 시인은 굴삭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김 분회장이 뒤따라 굴삭기 위 고공농성에 합류했다.

    그리고 16일, 경찰은  “굴삭기에서 자진철수하지 않을 경우 강제진압하겠다”며 현장에 4개 중대를 투입했다. 당시 송 시인은 굴삭기 위에서 전깃줄을 잡고 “떨어지겠다”, “용산과 같은 일을 만들겠다”고 외치며 경찰의 강제진압을 막았다.

    노조 "희망은 있다"

    유 조합원은 “송 시인은 아슬아슬하게 포크레인에 매달려 있고, 이를 김 분회장이 잡고 있었다”며 “혹여라도 사고가 날까 조합원들이 울고불며 송 시인을 말렸다”고 전했다. 다행이 큰 마찰 없이 경찰은 철수했지만, 조합원들은 혹시라도 있을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비해 현재 각 시민사회단체 등에 연대를 손길을 호소하고 있다.

    이렇듯 기륭전자 노사는 해고 이후 지난 6년간, 투쟁→협상→잠정합의안→백지화→용역 및 경찰 투입→농성 및 단식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 조합원은 “회사가 정말 문제를 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분회장의 “지금 기륭전자는 부지개발 관련 자금 때문에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말처럼, 노조의 농성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코츠티앤디의 공사도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실제 코츠티앤디 심 아무개 사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공사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으로 한 달 이자만 5억8,000만 원에 이르는 상황이라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때문에 코츠티앤디는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서라도 기륭전자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노동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륭전자 부지 공사 지연과 관련해 건설 관련 업체들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최 회장이다. “직접고용만은 절대 안 된다”,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그에게 협상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김 분회장과 유 조합원은 “지난 2008년부터 최 회장이 협상안을 계속 뒤집고 있어, 이제는 믿을 수 없다”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노사 간 협의를 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한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최 회장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했다.

    김 분회장은 지난 2008년 단식과 고공농성과 관련해 오는 19일 결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앞서 그는 건조물 침입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의 구형을 받았으며, 현재 고공 농성 중이라 재판 연기를 요청한 상태다.

    그는 “내일(19일) 재판이 열려 혹여 구속이 되더라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조합원 복직 문제 해결되기 전까지 공사 역시 강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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