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에 활짝 핀 ‘장미빛 인생’
        2010년 10월 18일 0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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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런 끼를 숨겨 왔을까? ‘따듯한 밥 한끼의 캠페인’의 일환으로 16일 오후 서울역에서 열린 청소노동자들의 노래자랑 ‘장미빗 인생’이 성황리에 끝났다.

    청소 빗자루를 쓸면서 매일 매일 스텝을 밟고 노래를 불러왔다는 청소노동자. 보기에도 눈부신 반짝이 노란 드레스를 입고 나와서는 "이런 옷이 5벌이나 된다"며 자랑하던 분도 계셨다. 얼굴에 각설이 분장을 떼로 하고서는 꽁트를 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대사는 어색하고 연기라고 보기에도 힘들었지만 무대 위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배꼽을 잡기 충분했다.

    매일 새벽별 보며 출근해서는 허리한번 못 피고 일만하는 노동자들이 이날 만큼은 어느 연예인 부럽지 않게 즐겼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스트레스 풀 시간도 없다던 노동자들은 마치 이날을 위해 놀 준비를 마쳤다는 듯이 숨겨놓은 끼를 마음껏 풀어 헤쳤다. 음정이 약간 불안하기도 했고 나오는 반주와 다른 노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은 끊이질 않았고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취재진도 웃느라 사진을 놓치기도 했다.

       
      

    춤만 추고 노래만 부른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일하고 살면서 억울하고 서러운 이야기도 실컷 했다. 참가번호 5번 고려대 청소노동자인 박순숙씨는 "우리가 하는 일은 자랑스럽지만 언제나 최저임금만 받게 되는 현실은 많이 안타까워요."라고 전했다. 노동조합에 감사한다는 얘기도 많았다.

    참가번호 10번 박화임씨는 "서울역이 금싸라기 땅인데 이런 곳에서 무대 위에 설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노조 하니까 이런 세상도 오네요,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이런 노래자랑 대회가 계속 열렸으면 한다는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참가번호 7번 연세대 청소노동자 최영례씨는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조합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참가번호 12번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인 이미례씨는 "오늘이 토요일인데 모두 일하느라 응원하는 분들도 못왔는데요. 토요일에는 좀 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게 청소노동자들은 빗자루에 대걸레에 가려진 장밋빛 인생을 스스로 그려나갔다. 노래자랑이 이렇게 신나고 흥겹게 진행된 것에는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홍명화 공공노조 서울경인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 수석부분회장의 역할도 컸다. 홍 부분회장은 유안나 서경지부 조직차장과 함께 입담을 과시하며 참석자들의 재치있는 얘기를 이끌어냈다.

    홍 부분회장은 "너무 떨려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진행했다"라며 "사실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 기분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응원 열기도 뜨거웠다. 대학교에서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학생들의 응원전도 볼만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은 현수막을 들고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성신여대 학생들은 성신여대 청소노동자가 나올 때마다 무대 앞으로 뛰어 나와 함께 춤을 췄다. 연세대 한 학생은 "매일 매일 학교를 청소해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왔는데요. 어머님들 노래를 다들 잘하셔서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동안 딸이 응원의 꽃다발을 전해주기도 했다. 참가번호 2번 박금순 씨의 딸은 "엄마가 이렇게 무대 위에 올라선 것을 보니 너무 자랑스럽습니다"고 말했다.

    이날 노래자랑 대회에서는 참가번호 8번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벌인 꽁트가 인기상을 차지했다. 동상은 3번 ‘고추’를 부른 이민도씨, 은상은 ‘화장을 지우는 여자’의 박화인씨, 금상은 ‘황혼의 부르스’를 부른 이미례씨, 그리고 영광의 대상은 참가번호 11번 ‘날 버린 남자’를 부른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 김윤숙씨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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