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스탈린식 군주제…세습비판 당연
    김정은, 개방-실리 강화…대화 중요”
        2010년 10월 16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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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권력 이양을 가속화한 측면도 있지만, 김정은의 자질이 이양을 앞당긴 측면도 있다. 김정은이 어리다고 해서 과소 평가하거나 그의 권력이 불안정하다고 볼 수 없다.”

    오래 전부터 김정은으로의 북한 권력 세습을 예측해온 정성장 박사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으며, 김정은 권력 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김정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한 문제, 특히 권력구조에 대해 정통하다는 평을 받아온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됐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휘하는 지위에 섰다는 것이고, …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이어받겠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성장 박사는 또 “김정은이 아버지의 용인술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업무 장악력도 뛰어나다는 진술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의 고립주의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면모를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현 시점에서는 김정은이 개혁과 개방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 예로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 개선을 최대 목표로 제시한 것도 과거의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더 군사주의적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정성장 박사는 내다봤다. “김정일 사후에 비핵화 문제에서는 더욱 비타협적으로 갈 수 있다. 김정일은 당을 기반으로 군부를 장악했는데, 김정은은 군대가 더 중요한 권력 기반이기 때문에 군부의 입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성장 박사는 북한의 핵포기와 평화보장이 일괄 타결돼야 한다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핵을 폐기해도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 9.19공동성명에서 6개국이 합의한 바를 구체화하기 위한 남한 정부의 비전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정성장 박사(사진=이재영) 

    정성장 박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6일과 11일, 두 차례에서 걸쳐 성남시의 세종연구소에서 이루어졌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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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졸업 작품이 군부 신뢰 얻어

    –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되는 과정과 배경에 대해 개괄해 달라.

    = 2006년 초까지만 해도 김정은보다 김정철이 후계자로 유력시됐었는데, 정철이 여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질환을 앓게 된 데다가 정철이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하면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2006년을 시점으로 정은에게로 후계자 내정이 옮겨갔다.

    정철은 유순한 편이고, 정은은 기가 세고 사람을 좌지우지한다고 한다. 두 형제가 다 농구를 좋아하는데, 두 팀이 경기를 마친 후에 정철은 ‘수고했어’라고 말하고 팀원들을 돌려보내는데, 정은은 팀원들을 남겨 경기분석을 하는 보스 기질이 있다고 한다.

    2006년 12월에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의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게 위성정보와 GPS에 기초한 작전지도인데,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 작전지도를 만드는 데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의 교수와 동료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의 하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김정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었다.

    김정은이 김정일을 빼어 닮아서 사람을 다루거나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질을 과거부터 보여주었는데,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작전지도는 과거의 평면적인 작전지도를 뛰어넘는 앞선 지도였다. 이것은 김정일이 <꽃파는 처녀>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빨치산 출신들의 마음을 얻는 것과 비슷하게 군부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7년 초부터 2009년 1월에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되기 전까지, 후계자로서의 준비 과정이 있었다. 김정은은 군부, 공안기관, 당을 장악하는 데 나선다. 특히 군을 통해 북한의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해 왔다.

    리영호 등 통해 군부 장악

    북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온 한호석 통일학 연구소 소장은 김정은이 2007년부터 초급 지휘관으로 근무하면서 리영호 평양방어사령관과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때부터 김정은의 신임을 얻게 된 리영호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지 한 달 후인 2009년 2월 총참모장에 임명됐고,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됐다. 리영호와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인 김정각이 김정은의 군 장악에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 이번에 김정은이 받은 직책과 직함 중 당 군사위 부위원장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던데, 맞는가? 전에는 군사위가 눈에 잘 안 띄던데, 김정은에게 군사위 부위원장직이 주어진 의미는 무엇인지 국방위와 비교하여 말씀해 달라.

    = 군사위 부위원장직이 가장 중요한 게 맞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국방위를 최고권력기관이라 과대평가하고 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기 때문에 국방위가 최고권력기관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그렇다면 김정일이 당중앙군사위 위원장도 맡고 있으니 거기도 최고권력기관이라 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노동당 총비서도 맡고 있으니 거기도 마찬가지다.

    국방위를 최고권력기관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가치와 용어로 북한을 보려는 편견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가 우선이지만, 북한은 당-국가체제이고 국가는 당의 영도를 받는 집행기구다.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를 청와대나 정부 비슷하게 볼 수 있지만, 당이 지도하는 국가인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결정한 것을 국방위원회가 집행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실증적으로 분석해보면, 군사위 명의의 지시와 명령은 군대의 지휘와 작전에 대한 것이고, 국방위 명의의 지시와 명령에는 군대에 관련된 것은 없고 민방위훈련이나 주민동원 등에 대한 것이다.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의 의미

    그동안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국방위를 과대평가한 것은 오류다. 이번에 김정은이 군사위 부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언론들이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군사위가 후계체제의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원래 힘 있는 기구였던 군사위에 김정은이 취임한 것이다.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됐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휘하는 지위에 섰다는 것이고, 그동안 김정은의 군부장악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후계체제, 세습의 진전에 대해서 실상과 다른 얘기들이 널리 확산돼 있는데, 정부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 당중앙군사위가 그렇게 중요한 기관인가?

    = 북한에는 5대 권력기관이 있다. 김일성 주석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에 화환을 증정하는 등과 같이 중요한 의식에 이 5대 기관이 동원되고, 중요한 정책결정도 이 5대 기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가 당중앙위, 두 번째가 당중앙군사위, 세 번째가 국방위, 네 번째가 최고인민위 상임위, 다섯 번째가 내각 순이다. 당의 양대 최고기관인 중앙위와 군사위 중 군사위를 먼저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이어받겠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다.

    이번 계승을 놓고 김정일의 후계 과정과 비교하면서 김정일처럼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나 비서가 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후계자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은 김정일의 계승 시대와 김정은의 계승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계승할 때인 주체시대에는 사회주의권이 살아 있었고 북한의 사정도 괜찮았기 때문에 당부터 장악하는 방법을 취했지만, 김정은이 계승할 때인 선군시대에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했고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사정이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주체시대의 권력승계 방식과 선군시대의 권력승계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체시대와 선군시대

    – 지난 9월 15일 흥사단 포럼 발표에서 북한이 ‘군주제’라는 표현을 썼다. 상징적인 수사 정도인지, 무슨 뜻인가?

    = 북한체제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지금의 권력승계 과정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제가 북의 3대 세습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게 2004년 경부터인데, 당시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제 의견에 비판적이었다. 특히 진보적인 전문가들이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정치관행이나 문헌을 보면 일반적인 사회주의체제라고 볼 수 없다. 군주제 국가에서 군주의 생일이 최대 기념일인 것처럼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 당창건기념일이나 정권수립기념일보다 더 중요한 명절이다.

    김정일이 북한 간부들에게 ‘김일성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충신과 효자가 되라’고 말하는데, 충신과 효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봉건시대의 용어다. 그 용어는 김정일이 총비서가 될 때도 ‘김정일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충신과 효자가 되겠다’는 맹세로 쓰인다.

    북의 엘리트와 인민들이 충신과 효자라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왕이 되는 것이다. 김정은도 자신의 생일에 후계자로 결정됐다. 사회주의 이론 때문에 차마 왕이라는 말을 못 쓰고 수령이라는 말을 쓰면서 왕을 의미를 실제로 담아 쓰고 있는 것이다. 북한체제는 스탈린체제에 군주제를 합친 것이다.

    김정남은 ‘서장자’

    – 김정은이 이런 지위를 확보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고, 아무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낙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고영희(김정일의 처, 김정은의 어머니, 2004년 사망)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 고영희의 역할도 컸고, 김정은의 자질도 크게 작용했다고 함께 봐야 할 것 같다. 고영희로서는 자신의 두 아들 중 한 명이 권력을 승계하는 걸 원했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것이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 ‘자질’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여러 사람 중의 자질이 아니라, 아들들 중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 그렇다. 정남, 정철, 정은 중 누가 뛰어난가라는 기준이다. 그런데 정남은 예외로 할 수밖에 없다. 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은 김정일과 동거하기 전에 기혼자였는데, 김정일이 강제이혼시키고 동거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부인으로 만드는 데는, 김일성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실패했다.

    –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 그렇다. 성혜림(김정일의 첫 동거녀, 2002년 사망)은 부인이라기보다는 동거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 그렇다면 김정남은 혼외자로 봐야 하나?

    = 봉건시대로 보면 서장자다. 적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랑을 받지만, 적자가 태어나면 사랑이 적자에게로 옮겨간다. 그래서 정남은 김정일의 숨겨진 아들로서 커갔고, 김정일이 간부들에게 대놓고 내 아들이라고 밝힐 수 없고, 정남이 아들이라는 사실은 소수만이 알고 있다.

    – 북한에도 그런 전례가 없어서 예측하기는 어려울 텐데, 정남과 정철은 어떻게 될까? 어떤 지위를 차지하거나 어떤 일을 하게 될까?

    = 정남은 지금처럼 해외를 계속 떠돌아다닐 것 같다. 정철은 권력욕도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재처럼 정은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어린 정철과 정은을 오래 봤던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는 정은이 후계자로 될 것이고 정철이 도울 것이라고 진술했었다.

    천안함 사건은 영해 분쟁과 남북 해군 간 교전의 연장선

    – 남한의 일부 우익은 천안함 사건이 김정은의 군사적 업적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 친북파도 다른 의미에서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천안함 사건은 서해에서의 남북한 해군 간 교전의 악순환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국제해양법상의 영해 규정이 90년대에 3해리에서 12해리로 바뀌는데, 미군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NLL이 과거의 영해 규정과는 충돌하지 않았지만 새 영해 규정에는 맞지 않게 되면서 북한은 90년대 중반부터 12해리 영해의 보장을 요구한다.

    해주에서 남해로 나올 때 12해리 영해라면 곧장 나오면 되는 것을, NLL 때문에 백령도 북방으로 북향하여 돌아나올 수밖에 없으니 기름이 부족한 북이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진 것이다.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1999년 제1차 서해교전이 벌어진다.

    1차 교전에 대한 북의 보복이 2002년 교전이고, 그 이후 한국 해군의 보복이 2009년 교전이다. 당시 북 경비정은 50발 정도를 쐈는데, 남측에서는 그 99배인 4950발을 쏜다. 북한에서는 이에 대한 보복을 다짐해왔고, 그 결과가 천안함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천안함 사건을 김정은의 호전성이나 군사적 업적을 위해서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 올 6월에, 조선로동당의 제2인자로 알려져 있는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음주운전사고로 사망한 것을 두고 일부 탈북자들은 김정은의 당 장악과 관련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탈북자들의 주장 중에는 귀중한 정보도 많지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몇 가지에만 기초해서 과장한 루머들도 많다. 김정은 세습과 리제강 사망을 연관시키는 주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최고위층들이 음주운전 사고를 많이 당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특권층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평양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하는 비밀 연회가 가끔 열리는데, 그 연회가 워낙 호화롭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운전사를 대동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연회 참석자들이 술을 먹고 손수 운전하면서 사고를 당하는 것 같다.

    김정일의 용인술을 물려받은 김정은

    – 김정은의 퍼스낼러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달라.

       
      ▲사진=이재영

    = 김정은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보인 모습이라든가 중국대표단과 만났을 때 보인 모습은 당당하고 의젓하다.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김정은에게 잘 보이려 신경을 쓰는 것이 화면에서 많이 눈에 띄더라.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다고 쉽게 생각하거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두려움을 가지고 대하는 것 같았다.

    김정일의 용인술, 사람에 대한 장악능력이 김일성보다 서너 배 위였다는 게 황장엽씨의 진술인데, 김정은도 아버지의 그런 능력을 물려받은 것 같다. 당대표자회의 동영상을 분석한 한 전문가는 고모인 김경희가 조카 김정은의 눈치를 보더라고 진술하더라.

    상당히 강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독재자로서의 정치적 자질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만한 소질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김정은이 축포야회를 준비하면서 컴퓨터 기술자들과 함께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다는 북한 내부 문건을 볼 때 컴퓨터 등에 대해 일정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업무장악력도 뛰어나다는 진술이 많다.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을 생중계하고 외신 취재도 허용했는데, 김정일의 고립주의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면모를 가진 것 같다.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는 것 같다.

    김정은 경제정책의 변화

    김정은이 작년에 생산증대운동인 ‘150일 전투’를 지휘했는데,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동안은 주민들이 텃밭 가꾸기 등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해왔는데, 150일 전투에 동원되면서 오히려 생활이 악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작년 말에 있었던 화폐개혁도 김정은이 주도했는데,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년에 김정은이 보여줬던 경제정책은 보수적 계획경제를 복원하려 한 것이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고, 화폐개혁의 실무책임자이자 보수파의 핵심인 박남기를 해임시키고 상대적 개혁파인 박봉주 전 총리를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복권시켰다.

    그리고, 라진선봉자유무역지대법을 중국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작년에 김정은이 보여줬던 경제정책과 올해의 정책은 큰 차이가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능력이 입증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는 김정은이 개혁과 개방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이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권력 이양을 가속화한 측면도 있지만, 김정은의 자질이 이양을 앞당긴 측면도 있다. 김정은이 어리다고 해서 과소평가하거나 그의 권력이 불안정하다고 볼 수 없다.

    – 10.10절 행사와 황장엽 사망에 대해 간략히 의견 달라.

    = 당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은 지난 당대표자회를 통해 제2인자 지위에 오른 김정은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축하하는 행사였다. 이 자리를 통해 김정은이 외교무대에도 데뷔했다. 그동안 김정은의 관여 분야가 내치였는데, 이제 외교 분야에도 관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은의 방중도 예상된다.

    황장엽 전 로동당 중앙위 비서가 타계했는데, 황장엽씨 만큼 북한 상층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시 국내에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그런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과거에 김일성 김정일 독재정권에 기여했음에도 그에 대한 반성 없이 타계한 점은 회의적이다.

    경제생활 개선 여부가 주민 지지의 관건

    – 이제 세자옹립식은 거쳤고 대관식이 남은 상황인데, 북한 지배층과 인민은 향후 어떻게 반응할까? 세대교체에 의해 물러나야 하는 노년 엘리트층은 싫어할 수도 있겠는데.

    =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에서 아무런 직책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은 군사위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리영호 밑에서 떠받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북한 상층 지배층의 노령자들은 불만도 있을 수 있고, 불안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에 의해 일찍 상층부에 오른 리영호, 김정각 등 60대들과 젊은 층은 기대를 거는 양상이 보인다. 뭔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거는 것 같다. 한국 정치에서도 나이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주민들의 삶의 질 문제, 경제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는가에 의해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도와 입장이 좌우될 것이다.

    – 김정은이 부각되기 전에는 중국-장성택-김정남 라인에 대한 가설이 한국에서 지배적이었는데, 이 라인이 어떻게 반응할까?

    = 한국 언론에서는 중국이 장성택과 김정남을 밀고 있다는 보도를 계속 내놨는데, 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중국으로서는 잘 모르는 김정은보다 여러 차례 접촉하고 잘 아는 장성택과 김정남을 선호할 수 있지만, 북한의 내정에 잘못 개입했다가는 중국의 입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북영향력이 약화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면서 무모하게 특정인을 지지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중국은 김정남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정치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렵다. 김정남에게 줄을 섰다가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한다든가 북한의 광물자원 개발 이익권이 축소될 수도 있다.

    장성택과 김정남의 관계에 대한 언론 보도도 억측이다. 장성택이 김정남을 자주 만난 것은 그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고 숨겨둔 아들을 만날 수 없는 아버지 김정일을 대신해서 고모부로서 만난 것이다. 장성택은 김정남의 고모부이기도 하지만, 정철과 정남의 고모부이기도 하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장성택이, 김정일이 김정은을 총애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다.

    2012년에 ‘최고사령관’ 승계

    – 완전 승계까지 어떤 과정을 밟게 될까? 시기는?

    =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2012년까지는 김정일이 군권을 넘길 것이다. 군권은 국방위원장직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이다. 김정일이 군대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직책이 최고사령관이다.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불분명하지만 2012년에는 최고사령관직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국방위원장직과 최고사령관직을 미리 물려준 것처럼, 김정일로서는 당총비서직만 유지하면 군림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국방위원장직은 물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김정일을 ‘공화국의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남겨둘 수도 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정무원을 폐지하고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내세운 것과 비슷한 과정이 있을 수 있다.

    – 김정은 정권의 노선은 어떤 모습일까?

    =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3년간 자연재해가 계속됐고 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시기를 거치며 김정일 노선이 구체화된다. 과거의 혁명주의가 퇴조하고, 군사주의와 실용주의가 강화되는 노선이 김정일의 노선이다.

    98년부터 ‘강성대국’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헌법과 당규약에서까지 사라졌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공산주의’가 호소력과 희망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강대하고 부유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김정일 시대의 최대 목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체제 유지를 위해 군에 의존하고, 군의 위상이 높아진다. 과거에는 노동계급을 중시했는데, 선군정치를 하면서는 노동계급보다 군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데올로기도 수정된다.

    과거의 평등주의가 약화되고 실리주의가 강화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과학기술 중시 사상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간부들에게 충성심을 더 중요하게 요구했는데, 2000년부터는 충성심에 더해 실력을 요구한다. 2002년에는 수요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경제관리개선 조치가 취해진다. 신의주나 개성 등에서 특구 정책도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실리주의 + 군사주의가 김정은의 노선

    그러나 김정일의 실용주의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이었다. 북한 스스로는 ‘모기장식 개방’이라고 말한다. 김정은은 경제 분야에서 김정일보다 훨씬 개혁 개방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소평, 주은래, 장쩌민 중국 엘리트들이 프랑스 유학을 했던 것처럼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경력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진자본주의를 직접 본 김정은은 김정일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선악식으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개선을 최대 목표로 제시한 것도 과거의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당대회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의 이력을 상세히 소개했는데,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녹화중계가 관례인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생중계한 것도 과거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김정은이 김정일보다는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부터 <로동신문>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보인다. 컴퓨터수치제어를 뜻하는 CNC라는 영어 이니셜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 역시 해외 생활을 오래 한 김정은의 영향인 것 같다.

    김정은의 가장 중요한 권력기반이 군부이기 때문에 김정일 사후에 비핵화 문제에서는 더욱 비타협적으로 갈 수 있다. 김정일은 당을 기반으로 군부를 장악했는데, 김정은은 군대가 더 중요한 권력기반이기 때문에 군부의 입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 김정은 정권의 경제적 기대치와 군사주의 강화는 서로 충돌하는 딜레마를 낳을 것 같다.

    = 잘만 조화되면 박정희식 개발독재로 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면 선군노선이 경제발전을 제약할 수 있다. 어떤 조합이 나올지 예상키 어렵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북한 혼자 결단할 수 없는 것이고, 주변국들의 보상과 함께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세습은 시대착오적, 대화로 해결해야

    – 3대 세습에 대한 판단 견해나 그에 어떻게 대응할지 하는 입장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개인의 견해는 어떤가? 한국 정치세력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 시대착오적인 권력승계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치방식 역시 시대착오적이었다. 북한 체제가 운영되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고, 3대 세습은 그것을 재생산하는 것이므로 부정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김정은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이 부분적으로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교육받아 내부에서 성장한 엘리트들보다 더 개혁개방적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 체제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하루아침에 민주화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김정은이 군부 인사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을 하며 여러 경험을 해서 국내파보다 더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소련과 중국에서 발전된 제도와 기술을 배우려 했다. 그런데 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열린 주체’에서 ‘닫힌 주체로’ 바뀐다. 김정일의 고립주의에 비교해 김정은의 가능성은 긍정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역할이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한국과 타협하려는 시점에, 무릎 꿇으라는 식으로 임하면 북한은 중국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남은 북이 내민 손을 잡고 북의 개혁개방을 도와줘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것들이 해주나 신의주에도 만들어야 하고, 두 나라의 영향력과 의존도가 커지고, 한국으로 인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어야 한국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비핵화나 천안함 사건에 연동하여 언제까지나 교류를 중단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의 사과를 원한다면 북과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의 퇴로를 제공하면서 사과를 이끌어내야지, 지금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사과만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핵화와 평화보장 일괄 타결해야

    – 민주노동당 박경순 부소장은 ‘똘레랑스’ 관점에서 보자고 주장했고, 이정희 대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3대 세습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적 체제와 봉건적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 스탈린주의와 봉건주의 경향의 청산을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처음부터 급격한 민주화를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중국과 같은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하는 정도는 해야 한다.

    북한의 권력승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는 인물론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인물론이라는 것도 세습임은 다르지 않다. 김정일의 세 아들 중 김정은이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김정은으로의 세습에 의해 북한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미 권력이 상당히 넘어갔음을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하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 어떤 대북정책을 펼쳐야 하는가? 긴장완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정치는?

    =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핵을 폐기해도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남한은 끊임없이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과 군사적인 신뢰 구축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같이 검토하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에서 남한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므로 핵무기는 북한의 유일한 자산이자 최대 자산이다. 핵 포기와 함께 평화체제를 보장받도록 하는 일괄 타결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물론 이행 과정에서는 어느 한쪽이 앞서거나 뒤처질 수도 있지만, 하나의 패키지다. 9.19공동성명에서 6개국이 합의한 바를 구체화하기 위한 남한 정부의 비전이 절실하다.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 군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동독의 군병력은 서독의 절반도 안 됐다. 이에 비해 북한의 병력은 남한의 두 배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다면 군축을 통해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남북 양 사회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민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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