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혹하고, 잔인한 전쟁지도자
        2010년 10월 16일 1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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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15일, 대동아공영을 외치던 일본의 124대 천황 히로히토(裕仁, 1901~1989)는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선언서를 읽어나갔다. 강경 우익의 허수아비 천황이자 “유약하고 유명무실”한 천황으로 평가받았던 그는 전후 전범처분에서 면죄부를 받고 평화전도사로 자리 잡았다.

       
      ▲책 표지

    이후 일본에서는 히로히토 천왕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금기시 되었고 전범재판이 마무리되자 전후 어떤 국가도 그를 재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로히토가 ‘유약한’, ‘유명무실한’ 군주가 아닌 사실상 2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다는 학설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허버트 벅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와 극동언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에 걸쳐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해왔고 미국과 일본에서 일본사를 강의했다. 그런 일본통인 그가 히로히토를 고발한다. 『히로히토 평전』(삼인, 35000원)을 통해.

    저자는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통해 일왕 히로히토가 태어날 때부터 전제군주로 길러졌고, 태평양전쟁에서도 누구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전쟁 책임 문제에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입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히토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공세, 학살은 물론이고, 미국에 맞선 전쟁에서는 전진과 후퇴와 같은 소소한 전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항을 장악하고 통제했던 사실상의 전쟁 지도자였음을 밝힌다.

    종전 후 일본 우익과 미국은 암묵적 공조 속에 히로히토에게 유약하고 유명무실한 천황이라는 가면을 씌워 태평양전쟁에서 히로히토라는 이름을 없애려 했지만, 그는 냉혹하고 잔인한 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기소조차 한 번 받지 않고, 아흔 살이 가깝도록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진단이다.

    히로히토는 전쟁 종결을 반대했으며 “우리 신민은 초인적인 노력과 희생을 감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 자원을 잃고 매일 공중 폭격을 받는다 해도 일본은 승리할 수 있다. 일본이 마지막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면 강화 협상의 전망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도 그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하고 히로시마 시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냉정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는 또한 히로시마를 비극으로 몰고 간 과정에서 그가 했던 역할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으로, 특히 역사학자들을 분개하게 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히토는 천황 자신과 궁정관료들이 차기 총리대신을 선임하고, 독자적인 국정 방침을 지시한 ‘전제군주’의 모습에 가까웠으며, 1920년대 중후반기에 발전한 정당정치 제도를 동요시켰다. 중국에서 전쟁 시작과 확전을 직접 주도하기도 했으며, 타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지위를 결사적으로 지키려 했다고 밝힌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수많은 전범 중 특히 언급이 부족했던 히로히토의 본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이다. 한-일 사이의 과거사 문제가 언제나 양 국 사이의 발목을 잡아왔지만 정확하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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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허버트 빅스(Herbert P. Bix)

    193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출생.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와 극동 언어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에 걸쳐 일본 근·현대사에 관한 저술 활동을 했고, 미·일 양국에서 일본사를 강의해 왔다. 2001년까지 히토쓰바시(一橋) 대학교 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는 빙햄튼 대학교(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 오현숙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본 고베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문화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일통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행복하다고 말하면 진짜 행복해진다』, 『일본어 뉘앙스 사전』, 『넥서스 영어 사전』등을 번역했으며, 『한글만 알면 일본 간다』등의 저서가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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