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옥에서 수백번 부른 '행복한 인생'
    By 나난
        2010년 10월 15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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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96년 2월, 당시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였던 저와 민맥출판사 대표는 『희망의 노래1, 2, 3, 4』(1992~1995 도서출판 민맥)라는 제목의 노래책을 발간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 됐습니다. 노래책에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를 실어 배포했다는 이유였지요.

    노래책 내고 구속되다

       
      ▲노래책 <희망의 노래>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나 자주, 민주, 통일, 투쟁, 해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노래에 밑줄을 그어 조각조각 짜깁기하더니 그게 북한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겁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이고, 꽃다지가 ‘열린 음악회’나 ‘샘이 깊은 물’ 같은 방송 출연도 몇 번 했던 터라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그 당시에도 몇 건의 국가보안법 사건이 계속 만들어지곤 했던 때였습니다.

    연행되던 2월 3일은 토요일이었고, 그날은 동대문운동장 앞에서 꽃다지 공연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장애인 노점상이셨던 이덕인 열사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외치는 집회였던 듯합니다.

    그날 결혼 2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남편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가 우리 공연 담당자의 급한 집안 사정으로 제가 대신 공연을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출발을 저녁으로 미루고 공연을 같이 갔더랬지요.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고, 삐삐를 통해 급한 연락을 하곤 했던 시절입니다. 공연을 하는 중에 계속 삐삐가 울렸고, 전화번호 끝에 8282라는 숫자가 붙어 뭔가 급한 연락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연 중이었고, 제가 반주 CD를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근처 공중전화에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민맥출판사 대표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집 앞에서 연행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민맥출판사는 서울매체라는 민중가요 음반 유통의 총판을 담당하고 있었고, 사회과학 도서와 음반의 배포를 담당하는 사람이 제 남편이었습니다.

    "형사들이 저를 보고 반색하더군요"

    바로 민맥출판사로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분명 출근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니, 아마 출판사를 털어가지 않았을까? 아니면 직원이니까 남편도 연행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남편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운동권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인연이 닿아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문화운동이라든가,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꽃다지 활동이나 문화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을 터이니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뒷정리를 하고 꽃다지 식구들과 민맥출판사 사무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어이없게도 형사들이 포진해 있었고 저를 보자마자 아주 반색을 하면서 영장을 보여주더군요. 형사들은 제가 결혼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새벽에 저희 친정에서 잠복해 있다가 허탕을 쳤던 것입니다.

    민맥 사무실을 수색하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고 남편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형사들이 아무 곳에도 전화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 발로 호랑이 굴에 찾아간 거지요. 저는 영장을 자세히 확인한 후 가까운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읽어주고, 담당 검사의 이름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남편에게는 ‘민가협과 <한겨레> 기자에게 연락을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저는 장안동 대공분실로 연행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어쩔 줄 모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구치소로 이송

    이틀간 유치장에서 조사를 받은 후 결혼기념일인 2월 5일 서울구치소로 이송이 되었고 검찰 조사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연행이 되던 날부터 장안동 밖에서는 매일 민가협 상근자들과 단체 사람들이 항의집회를 열었고, 꽃다지는 민예총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며 매일 탑골 공원에서 ‘구속 예술인 석방을 위한 거리공연’을 열었답니다.

    여러 신문에 기사화 되었고, 많은 이들이 농성장과 거리공연에 함께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남편과 꽃다지 식구들이 면회를 와 상황을 전해주고, 또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구치소 안에서는 조사가 없는 날은 주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읽고 쓰는 일이 전부였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많은 분들의 격려 편지를 받았고, 또 면회를 오지 못한 꽃사람, 꽃다지 식구들의 수많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가장 걱정을 했던 시부모님도 제 편이 되어 힘을 주셨지요. 시어머니는 민가협 집회 단상에서 “꽃다지 가수들은 많이 배우고 똑똑한 청년들이지만 그렇다고 자기들만 잘살려 하지 않고 스스로 힘든 일 마다 않으며 남들과 같이 나누려는 아주 훌륭한 사람들인데 왜 탄압을 하느냐”며, “내 착한 며느리 은진이를 당장 내놔라”하고 호통치셔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시아주버님들과 시누이 식구들도 모두 번갈아가며 탑골공원에 나가 후원도 해주시고, 고생하는 꽃다지 식구들에게 밥도 사주고 하셨지요. 다만 친정어머니만큼은 그 안에 있는 저를 안쓰러워 하셔서, 다음 달에 예정된 회갑연을 취소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를 이 안에 두고 내가 어떻게 그런 잔치를 하느냐"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셨지요. 단 한 번도 친정엄마한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걸 처음으로 후회했습니다.

    거리공연 당시 탑골에 계신 어르신들이 처음엔 시끄럽다고 항의를 하셨다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들 앰프를 날라주시고, 따뜻한 음료수를 사다주셨고, 오히려 공연을 방해하려는 외부인들을 나서서 막아주셨다더군요. 그분들은 제가 석방이 되고 나서도 종종 사무실에도 놀러 오시고, 공연도 보러 오시곤 하셨답니다.

    구속이 준 큰 선물

    꽃다지 식구들도 외롭진 않았을 겁니다. 꽃사람들과 꽃다지 팬들, 그리고 민족음악협의회 소속 가수들과 노동문화단체들, 그 외에도 대중가수들까지 참여해서 지지해 주셨지요. 그러니 매일 그 소식과 편지들을 접하면서 저는 정말 너무 벅찼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눈보라치고 추운 겨울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농성과 거리공연을 진행해준 모든 이들에게 어떤 표현으로도 모자란 마음이었습니다.

    인간이 한 평생 살면서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의 사랑을 한 번에 받았기에 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선택한 삶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그 때 이미 다 받았던 거지요. 그래서 저는 50일간 그 안에서 매일 다짐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에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모든 사랑은 저 개인이 아니라 꽃다지와 우리들 모두에 대한 사랑이었지요. 지금도 사람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면 그 때와 그 감정을 떠올립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줬던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쉽게 실망하지 말자,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자, 좀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자, 하면서 말입니다.

    어찌 보면 그 사건으로 꽃다지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알려지긴 했으니 고맙다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제가 이 길을 선택하고 살아온 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그 안에서 매일 매일 감사하고 다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입안에서 흥얼거려지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노래의 가사를 읊조리면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안에서 몇 백번도 넘게 되뇌던 노래 <행복한 인생>, 같이 들어보시지요.

     

    행복한 인생

    조민하 글, 곡

    삶은 나에게도 주어지고 때론 햇살이 드리우고
    때론 견디기 힘든 시련을 만나 방황도 했었지만
    그런 나의 삶의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선택은
    진정 사랑할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을 산다는 것
    잠시 쉬어갈 순 있지만 주저앉지 말고
    넘어질 수는 있다 해도 절망하지 말고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늘을 살아야지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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