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 세습, 소모적 논쟁 아니다"
        2010년 10월 15일 07: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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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의 3대 세습 논쟁은 ‘소모적 논쟁’일까?

    민주노동당의 논평과 <경향신문>의 사설로 촉발된 북한의 3대 세습 논쟁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발언 이후 진보진영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민노당은 나름 정치적 판단을 통해 대응 자제로 입장을 정리한 듯하다. 그러나 ‘소나기만 피하면’ 그뿐일까?

    한편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현재 논쟁이 ‘소모적 논쟁’이고, ‘진보판 색깔론’이며, 2008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분당하는 계기가 되었던 소위 종북주의 논쟁처럼 소모적이라고 규정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진보대통합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다. 복지국가를 매개로 하는 가치 중심 진보대통합이 최대한 광범위한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문제는 진보대통합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2012년 진보-개혁 진영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유창선씨의 표현을 빌리면 심모원려(深謀遠慮)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서민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고학력 중산층’이 진보개혁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

    한국사회에서, 특히나 한국정치에서 북한문제는 왜 중요한가? 그것은 단지 통일의 상대방, 평화의 상대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절반의 진리’만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문제가 특히나 중요한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한국 민중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한국전쟁의 체험’ 때문이다.

    좀 더 단호하게 말해, 한국의 지식인이 ‘군부독재’를 체험했다면 한국의 서민들은 ‘한국전쟁’을 체험했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최소한 4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김동춘 교수는 한국사회를 (전쟁의 결과물로 형성된) ‘53년 체제’라고 규정할 정도이다. 이러한 견해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라는 걸출한 역작을 생산해낸 박명림 교수의 견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1950년대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50대 중후반이다. 그 시대는 절대빈곤의 시대였다. 그런데 한국전쟁으로 엄마, 아빠, 가족의 누군가를 잃었던 사람은 어린 시절 ‘애비, 애미’ 없는 자식이라는 죽음과도 같은 소리를 들으며 ‘가난’을 원망하고, 그 가난에 대한 원망은 ‘한국전쟁’으로 귀결되고, 다시 ‘북한’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요컨대, 고학력 중산층이 군부독재를 ‘체험’했기에 反한나라당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저학력 서민층은 가난과 한국전쟁을 ‘체험’했기 때문에 反북한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민들의 반북 정서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적 선전 선동 이전에 ‘체험적 토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험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야권의 대선승리와 ‘북한 문제’

    2010년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과 달리 2012년 대선은 가치와 가치, 인물과 인물, 이슈와 이슈가 전면적으로 맞붙는 총체적 성격을 갖는다. 한마디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가치와 비전의 대격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나라당을 제대로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지지기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은 크게 넷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북(反北) △성장 △영남 △부자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반북과 성장은 한국전쟁의 체험과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체험동맹’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체험동맹은 마치 유럽의 서민층이 ‘복지국가의 체험’ 때문에 여전히 사민당류에 대한 강력한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서민층은 ‘안보(한국전쟁)-성장의 체험’ 때문에 한나라당류에 대한 강력한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야권에서 2012년 대선과 총선의 승리 전략으로 거론되는 대안이 ‘(보편적) 복지국가론’이다. 복지국가를 매개로 하는 진보대통합, 또는 야권대통합이다. 이는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며 세계사적인 시야의 지평으로 볼 때, 미국 루즈벨트의 집권 과정에서 있었던 ‘한국판 뉴딜동맹’의 성격을 갖는다.

    2012년 대선, ‘한국판 뉴딜동맹’의 의의와 한계 – 다시, 북한문제 성찰의 중요성

    그러나 이러한 ‘미래지향적’ 가치동맹은 한국의 대선 지형을 감안해볼 때, 승리의 전망을 타진해 볼 수는 있지만,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자기 완결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지난 97년과 02년 대선 승리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30만표 차이라는 초박빙으로 승리했다. 그런데 97년은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IMF 환란사태가 터졌고, DJP연합이 있었고, 이인제의 출마로 480만 표의 여권표가 잠식당한 상황에서 나온 ‘기적 곱하기 기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한 02년의 경우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통한 서해안벨트 연합, 미선이·효순이 사건으로 상징되는 수십만 명의 ‘대중적 항쟁’이 결합되면서 간신히 60만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두 번의 대선 승리의 공통점은 민주당-중도파의 정치연합, 호남-충청의 서해안벨트 지역 연합, 항쟁 수준의 거대한 이슈의 존재라는 3가지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한나라당이 가장 불리한 시기에 치러졌던 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자민련의 정당득표 합산은 40%, 진보-개혁세력이 가장 불리한 시기에 치러졌던 07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대선 후보들의 합산은 35%이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한국사회는 보수(40%)-중도(25%)-진보․개혁(35%)의 기본 지분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 진보-개혁 정치세력은 한편으로는 가치동맹으로서의 ‘복지동맹’을 추진해야 하지만, 단지 그러한 대선 전략만으로는 386 중산층의 표를 결집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50대 이상 저학력 서민층의 표를 결집시키는 데에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을 매개로 하는 북한에 대한 인식은 ‘체험동맹’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보-개혁 세력은 50대 이상의 저학력 서민층에게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평화진전을 분명하게 추구하지만, 최소한 ‘친북세력’이 아니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진보진영은 ‘비북(非北) 평화세력’이어야 한다.)

    좌파와 우파의 ‘절반의 진리들’ – ‘증오의 정치학’을 넘어

    대한민국은 (북한식)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전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적이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약 6개월에 걸쳐서 실제로 ‘통일’이 실현된 적이 있는 나라이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은 4번에 걸쳐 북-남-북-남으로 권력교체가 ‘체제수준’에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가 김일성과 이승만에 의해서 ‘통일’이 실현되었던 시기이다.

    이러한 (북한식) 사회주의 세력의 집권과 통일의 실현이 얼마나 참담한 고통으로 귀결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학살, 부패, 가난, 증오, 적개심, 전쟁의 폐허가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물리적’ 폐허 이전에, 한국전쟁의 결과물이 낳은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폐허 위에서 건국된 나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죽음으로, 가난으로 체험해야 했던 이들이 바로 50대 이상의 한국 민중들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던 고학력 중산층의 민주화운동 세력이 학살자 전두환에 대해 갖고 있는 분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처럼, 한국전쟁과 가난을 겪어야 했던 저학력 서민층이 한국전쟁과 가난에 대한 분노(?)가 역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우리가 주장하는 남북한의 군비축소, 우리가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우리가 주장하는 한미관계의 수평적 재정립, 우리가 주장하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대로’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민층이 체험해야 했던 ‘증오의 정치학’을 발전적인 방향을 지향하되 우리의 심장으로, 가슴으로, 진심으로 보듬어 안을 줄 알아야 한다.

    3대 세습-한국전쟁-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이정희 대표의 ‘성찰’을 촉구하며

    만일 ‘친북적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 군비축소, 한미동맹 해체, 한미군사훈련 중단,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주장한다면 그 주장의 진정성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에, 즉 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친북적 의혹’을 털어낼 수 있을 때만 남북의 평화와 교류진전, 한미관계의 수평적 재정립, 그리고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가치는 서민대중의 강력한 엄호 속에 더욱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희 대표는 3대 세습에 대한 침묵은 물론이고, 한국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 묻는 유권자의 질문에 끝내 침묵으로 일관했고, 북한 인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북한 백성들의 먹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동문서답형’ 답변으로 우회했다.

    이정희 대표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의 구현, 그리고 한나라당을 ‘제대로’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유창선씨의 표현을 빌리면,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마음가짐으로 북한 문제를 성찰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민주노동당은 지난 시기에 북핵 사태와 일심회 사건 등을 통해서 ‘친북 편향적’ 행위를 했던 것이 팩트(fact)로서 존재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희 대표의 성찰적 접근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이정희 대표가 ‘친북적 의혹’을 받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이정희 대표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진보대통합과 야권의 선거연합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야권의 진보적 정치재편 – ‘성찰의 대연합’에서 ‘비전의 대연합’으로 되어야

    진보신당의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심상정 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하며 연합정치와 진보대통합을 화두로 제기했다. 이후 심상정 후보는 민주노동당은 ‘북한 문제’를, 국민참여당은 ‘한미FTA 문제’를,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등장한 이인영 최고위원은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야권단일정당을 주창하고 있다.

       
      ▲필자(사진=레디앙)

    진보적 정치세력과 개혁적 정치세력은 현재의 야권난립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진보적 정치재편은 분명하게도 각자 정치세력들의 ‘성찰과 성찰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정치재편의 본질은 ‘성찰의 대연합’, 즉 ‘성찰적 정치대연합’이어야 한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각 정치세력들의 ‘성찰’과 ‘성찰’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성찰적 정치대연합은 2012년 총선을 2004년 총선에 버금가는 ‘중대 선거’로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적 정치대연합은 특히나 ‘MB심판’이라는 낡은 레토릭이 더 이상 통용 불가능한 2012년 대선에서는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대선은 본질적으로 가치와 비전의 대격돌이기 때문에, ‘성찰적 정치대연합’만이, 2012년 대선을 ‘비전의 정치대연합’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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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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