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과 긴밀 협의해라" 공문 파문
    "짐작했지만, 너무 노골적 황당해"
    By 나난
        2010년 10월 15일 12:3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삼성전자 등에서 백혈병을 얻은 피해자와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의 산재 불승인과 관련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공단이 삼성전자와 공동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본부 실국과 긴밀한 협조체제 유지"

    15일 근로복지공단 국정감사에서 공단이 지난 1월 22일 내부공문을 통해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주)가 보조참가인으로 동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경인지역본부에 요청한 공문이 공개됐다.

       
      ▲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1월 22일 경인지역본부에 보낸 ‘소송지휘 요청에 대한 회신’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해당 공문에는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 번호를 명시하고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며 “본부 관련 실국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소송 진행 중 특이사항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해당 지침이 내려진 이후 삼성전자 측은 국내 유명 법무법인에게 소송 대리를 맡겼고, 지난 3월 4일 6명의 변호사가 선임돼 행정소송에 보조참가를 신청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공단이 삼성 측 변호사를 보조참가인으로 앞세워, 마치 피해자와 삼성전자 간 민사소송을 벌이는 있는 형국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해당 문건을 (경인지역본부에) 내려 보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이 자리에서 의원님이 말씀해주셔서 내용을 취득했다”고 변명했다.

    이어 그는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단이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경우 해당 사업장을 보조참가인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삼성전자 측 변호인단의 보조참가인 참여가 특별한 사례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제 싸움은 삼성과 하는 것"

    하지만 이 의원은 “문건에서 밝힌 ‘사회적 파장’이라는 게 무엇이냐”며 “삼성이 입을 경제적 타격을 말하느냐, 삼성의 이미지 타격을 말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산재보험은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유능한 변호사 6명과 공단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 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기업 측을 개입시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황당하다"며 "공단과 삼성이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행정소송은 삼성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백혈병, 암 등 업무상 질병과 관련해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암을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산재 승인률은 13.6%로, 신청자 10명 중 1명을 조금 넘는다. 특히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진폐법)에 따라 비교적 산재 승인률이 높은 폐암을 제외하면,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승인률은 3.6%에 불과하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직업성 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위암의 경우 최근 5년간 총 37건의 산재승인 신청이 있었지만, 단 한 건도 산재로 승인되지 않았다.

    간암은 200건 신청에 6건만이 승인됐으며, 백혈병은 76건 신청에 12건이, 림프종은 38건 신청에 6건이 각각 승인됐다. 기타로 분류된 각종 암들 역시 105건 신청되었지만, 이 중 불과 6건만이 산재로 승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발암성 평가기준 국제 수준 훨씬 못 미쳐

    이 의원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발암물질 정보센터에 따르면, 국제기준을 적용했을 때 국내 연간 발암자 가운데 4% 가량인, 약 5,000여 명이 매년 직업성 암에 걸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5년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모두 97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제 암 연구소과 유럽연합(EU) 발암성 평가 기준은 각각 417종과 1,007종인데 반해 국내 고용노동부 고시 발암성 평가 기준은 56종에 불과하다. 이어 이 의원은 “우리나라의 법정 발암불질의 범위가 국제기준에 비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직업성 산재 승인이 저조하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