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되기’가 먼저 필요합니다”
        2010년 10월 13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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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봐리 부인, 그녀는 바로 나다”라고 했던 플로베르는 프랑스에서 사회 정치적 발언을 계속해 왔던 작가로 그가 주요한 현안에 대해 침묵하자, 그의 침묵에 대해 사람들은 ‘비겁한 침묵’이라며 비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개인에 대해 이런 비판은 그 개인의 묵비에 관한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분명히 과도해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발언을 해왔다면 그는 ‘공인’인 것이고, 공인으로서의 침묵도 일종의 사회적 발언으로 비쳐 보인다는 건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지지를 조직하는 정당에 이르러서야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아닌말로 <프레시안> 페리스코프 칼럼을 쓰는 김기협씨도 싱가폴의 리콴유의 예를 들면서 ‘권력의 세습을 절대악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는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을 관람 중인 김정은 ‘대장’

    국보법이 엄연히 살아 있어도…

    국보법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이 아닌 정당이라면, 특히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질문을 받고 있는 정당이라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은 묵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공당은 그럴 권리가 없다’ 진중권씨의 트위터 논평입니다. 짧지만 정곡을 찌르는 논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홍모라는 후배님이 이 문제에 대해 질문해 왔을 때 저는 북한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이 문제에 대한 ‘정당’ 수준의 판단과 입장 표명을 유보하거나 우회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경향신문>의 사설처럼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3대세습문제를 용인하는 태도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런 입장이라면 진보대통합에도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특히나 민주노동당의 그같은 태도로 인해 진보진영이 국민으로부터 고립되어 왔고 진보신당을 비롯한 새로운 진보의 길을 개척해 나가려는 세력마저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어 3대 세습에 대한 입장 표명의 문제는 북에 대한 메시지이기보다는 남한에서 진보정당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성격이 더욱 강하다는 입장을 가졌던 것입니다.

    불간섭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당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이 상대방 체제를 존중한다는 불간섭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정당이라는 행위주체가 국가와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는 외교와 국방의 당사자로 국가 대 국가 간의 행위 주체고, 정당은 국내의 계급간, 집단간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행위 당사자입니다. 따라서 3대세습이 민주주의적 상식이나 사회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묻고 거기에 합당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당연한 정치행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번 기회에 사회주의와 개인숭배가 짬뽕된 걸 용인하는 ‘친북좌파’라는 지겨운 딱지를 좀 떼고 갔으면 합니다.

    그런데 참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진보정치의 성장을 발목잡는 족쇄를 좀 과감하게 깨고 나가야 한다는 ‘정치행위’가 오히려 조중동식 논리로 비판받는 것이 어째 다람쥐 쳇바퀴 안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프레시안>에 강정구 교수께서 ‘조중동 논리 닮은 커밍아웃 요구, 대안일까’라는 제하의 글을 쓰셨습니다. 강정구 교수께서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경향이나 손호철 교수 등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문제의식처럼 진보 커밍아웃에 만족하는 ‘진보되기’에 집착하는 입장이고, 북의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진보를 만들어 가는’ 세력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연히 커밍아웃보다는 실질적으로 진보 만들기에 매진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더라도 민주노동당 당권파들의 민족지상주의가 남한에서의 진보를 ‘만들어 가던’ 모습이었을까요? 서민복지 혁명과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고 원내 입성한 민주노동당을 ‘민족의 대이동’으로 장악하고 국보법 올인 투쟁으로 몰아가던 게 과연 제대로 된 ‘진보 만들기’였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진보 만들기’보다 ‘진보 되기’가 먼저

    물론 ‘진보 만들기’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성실한 ‘진보 만들기’ 이전에 무엇이 남한에서 인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진보의 길인지 제대로 된 ‘진보 되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지요.

    6.2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치의 맏형 자리를 차지해버린 민노당의 침묵 아닌 ‘침묵’은 양날의 칼입니다. 한쪽은 날이 무디고 반대쪽은 날이 서 있습니다. 무딘 날은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을 향해 있고, 시퍼렇게 선 날은 남한에서 친북좌파라는 낙인을 향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3대세습을 비판한다고 남북관계가 얼마나 더 경색되겠습니까? 오히려 제대로 비판하고 ‘친북좌파’라는 낡은 딱지를 벗어 던지고 그 힘으로 이명박 정권의 반북정책을 규탄해야 훨씬 강한 지지를 모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남북관계의 경색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민주노동당의, 3세 세습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는 북에게는 우호적 메시지일지 모르지만 남한에서는 그보다 훨씬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는 메시지입니다.

    이정희 대표체제 들어서 북한의 해안포 발사에 대해 북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경고하는 등 국민들의 평화 열망에 부응하는 대중적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진보정당의 성장을 기대하는 이들은 모두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은 북한 권력의 중추, 수령론 자체를 건드리기를 극도로 주저하고 성역시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과연 무엇인 ‘진보 되기’이고, 무엇인 ‘진보 만들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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