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가 아니다. 살인이다"
        2010년 10월 12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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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겐 딸이 있다. 반도체 회사에 입사해 집을 떠난 지 2년 만에 딸은 백혈병 환자가 되어 돌아왔다. 항암치료로 벗겨진 머리와 핏기 없이 창백한 딸의 얼굴이 낯설었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생각했다.
    ‘왜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 (사진=반올림. http://cafe.daum.net/samsunglabor)

    막연한 의심에서 확신으로

    10만 명 중 2, 3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이다. 가족 중에 백혈병은커녕 암에 걸린 사람도 없다. 딸은 겨우 21살이었다. 고 3때 삼성 반도체에 입사한 후로 회사와 기숙사만을 오가던 아이였다.
    ‘일하다가 병에 걸린 건 아닐까?’

    막연한 의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딸과 같은 조에서 일한 이숙영이라는 사람도 백혈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이 똑같은 곳에서 2인 1조로 일했는데, 똑같은 병에 걸려. 백혈병이라는 게 감기도 아니고 옮겨 다니는 전염병도 아니잖아요? 그 희귀한 병이 둘 다 똑같이 일하다가, 똑같이 걸린다는 건 틀림없이 이상하잖아요. 뭐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는 딸 유미에게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아픈 딸이 괜한 걱정을 할까봐 조심스러웠다. 지나가는 말로 한번 묻고 며칠 뒤에 다시 묻는 식이었다. 유미는 디퓨전(diffusion) 공정에서 일한다고 했다. 반도체 웨이퍼를 여러 화학약품에 담가 세척하는 일이었다.

    “무슨 약품을 쓰는데?”
    그가 묻자 유미는 영어로 된 약품 명칭 몇 개를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했다. 딸의 다이어리에는 공정 순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몇 번을 반복해 쓰고 외웠다. 그런 아이가 자신이 매일같이 쓴 용액의 성분을 몰랐다. 화학약품의 이름과 기능은 외우고 또 외워도, 성분은 알지 못했다.

    회사 "산재 아니지만, 치료비는 주겠다"

    물어볼 곳이 회사 밖에 없었다. 황상기씨는 딸이 다니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전화를 했다. 산재인 것 같다고 하자, 회사 직원은 펄쩍 뛰었다. 과장과 직장이 집으로 찾아와 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퇴사를 할 테니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회사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대신 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남은 치료비가 4천만원이었다. 병간호를 하느라 일을 하지 못해 벌이가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치료비를 보상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때만 해도 딸이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다 나은 줄 알았다.

    몇 주 뒤, 유미가 열이 펄펄 끓었다. 내성이 생겨서 해열제도 듣질 않았다. 애를 들춰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재발이 된 게였다. 마침 회사 직원이 아주대병원으로 찾아왔다. 직원은 약속된 치료비가 아닌 500만원을 건넸다.

    “500만원을 내밀면서 그것밖에 없대.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었는데, 그 돈을 안 받으면 안 되는 거야. 애가 저러고 있으니까.”
    속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딸의 병이 산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마음에는 산재다 싶은 거야. 내 눈으로 본 게 있잖아.”

    회사는 산재라는 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돈으로 꾀고 술수를 쓰는 게 아닐까. 하지만 ‘산재’라는 단어도 못 꺼내게 하는 삼성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떤 날은 ‘개인 질병’이라며 윽박지르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억울한 마음에 눈물만 흘리다 온 적도 있었다.

    ‘작은’ 언론사에 전화를 걸다

    고심 끝에 황상기씨는 언론에 이 문제를 알리기로 했다. 먼저 공영방송을 찾았다. KBS 방송국에 제보를 하니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힘없는 개인이 증거를 어떻게 찾아요?”

    그것도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증거를 찾아오라니,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는 딸에게 인터넷 이용법을 배웠다. 작은 언론사를 찾기로 했다. 손에 익지 않아 인터넷 검색이 서툴렀다. 전화번호가 보이기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월간 <말>지의 윤보중 기자와 연락이 됐다. 비슷한 경로로 <수원시민신문> 김삼석 기자와도 만나게 된다. 유미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2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2007년 3월, 유미는 세상을 떠났다. 눈이 뒤집힐 일이었다. 황상기씨는 싸움을 결심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삼성을 상대로 산재 신청을 했다. 삼성반도체에 백혈병 환자가 황유미, 이숙영 외에 4명이 더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삼성 홍보그룹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환자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인권단체들이 있었다. 다산인권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단체들이 모여 유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를 결성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시작이었다.

    그 후 3년, 황상기씨 한 명이었던 제보자는 100여명에 다다랐다. 백혈병뿐 아니라 악성 림프종, 재생불량성 빈혈, 뇌암, 루게릭 등 희귀질병들이 제보되고 있다. 이들은 작업공정에서 벤젠과 납, 방사선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모두 대표적인 발암 물질이다.

    울고 싶었던 19세 소녀

    유미가 세척을 하기 위해 만진 웨이퍼에도 벤젠이 묻어 있었다. 세척약품 중 하나로 사용한 황산은 발암을 촉진시키는 물질이다. 막연한 의심으로 시작했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점차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삼성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보고서’도 그의 의심을 뒷받침해준다. 보고서는 반도체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99종의 화학물질 중 삼성이 자체적으로 성분을 확인한 경우는 한 건도 없고, 심지어 10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성분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제 황상기씨는 산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그들이 몰랐을까요? 노동자들이 무슨 약품을 사용했는지, 거기에 어떤 유독물질이 있었는지 몰랐을까요? 삼성이 알았다면,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면 이건 산재가 아니에요. 살인이에요, 살인.”

    19살 유미의 일기를 봤다. 2003년 10월 6일 ‘삼성전자 입사’라고 적은 날부터 삼성전자 직원 유미의 생활은 시작된다. 교복 대신 하얀 방진복을 입은 유미는 21일 월급날을 달력에 표시해두었다. 일기에는 날짜 옆에 ‘월급날 10일이 남았음’이라는 문구가 날씨 마냥 적혀 있었다.

    11월에는 수능 날에 표시를 했다. 유미의 친구들은 이날 수학능력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은 속마음을 적어두었다.

    "입사 초반엔 퇴사하고 싶단 생각 정말 많이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맨날 울고 엄마한테도 퇴사하고 싶다면서 계속 울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고 참고 일했다. 차라리 친구들처럼 대학이나 갈 걸. 싫은데도 참고 일하는 건 엄마한테 미안해서이다. 엄마가 대학가라고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이 회사 왔는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퇴사 못하겠다. 슬픈 책이라도 읽고서 아주 펑펑 울고 싶다."

    속초, 울산바위

    달력에는 Day(오전 근무) Swing(오후 근무), G.Y(밤 근무)가 표시된 사이사이로 ‘집에 가는 날’이 적혀 있다.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가족들에게 한 선물 목록에는 내복이 들어가 있다.

    일기에는 휴무 때 어떻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는지를 세세하게 적어두었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였다. 방진복에 낙서를 해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정수칙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용모 단정,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는 수칙도 보인다.

    청정수칙을 중시하고 직원들의 복장까지 단속하는 삼성이 수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건강에는 왜 이리 무심한 걸까. 유미가 3번이나 옮겨 적은 작업수칙, 품질수칙 10대 항목 어디에도 안전장치나 안전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2004년도 마지막 장에는 다짐서가 있다. 2005년에는 작업할 때 MISS를 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신입사원 유미의 1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다음해 6월, 유미는 백혈병 판정을 받는다.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에서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말하는 내내 기침이 잦다.

    “제가 백혈병이라는 말을 듣고는 많이 울었어요.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되던 때였다. 그러나 몇 달 후, 병이 재발한 그녀는 영영 눈을 감았다.

    황상기씨를 만나기 위해 속초에 간 날이었다.
    “저기가 울산바위에요.”

    속초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앞장서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가 가리킨 곳에 푸른 능선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산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예, 그러고 말았다. 황상기씨는 다시 앞섰다. 말없이 한동안 걸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 와서야 유미씨의 유골을 뿌린 곳이 울산바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딸을 울산 바위에 뿌린 이유를 이야기 했다.
    “유미가 방사선 화학약품 때문에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공기가 맑고 깨끗한 산에서 맑고 푸른 동해바다 바라보면서 있으라고 그곳에 뿌렸어요.”

    황상기씨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산재임을 밝혀내겠다고 딸에게 한 약속도 이루어내길 바란다. 
    고 황유미씨의 명복을 빕니다.

                                                      * * *

    * 레디앙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반올림’과 함께, 삼성의 전자 관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희귀병 발생 실태와, 은폐와 침묵을 강요하는 회사쪽의 행태와 이에 맞서 싸우는 가족과 관련단체들의 저항을 몇 차례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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