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희, 줄리엣, 베드로
        2010년 10월 11일 09: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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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에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이념(opinion)이 아니라 정념(passion)이다.

    김정은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이유는 북한이 대화의 상대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것인데, 집권당도 아닌 군소정당이 언제부터 그렇게 국가 외교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왔는지 금시초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하든 대한민국의 국체가 변하든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변 국가들은 언제나 대화 상대일 수밖에 없는데, 민주노동당은 북한 아닌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공수부대를 보내겠다”는 둥 매우 과감한 자세를 보여 오지 않았는가.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이정희 대표 블로그, 10. 8)”고 확언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해 한마디도 않겠다는 민주노동당의 두 번째 이유는 남북관계가 매우 어려우니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권력승계가 이루어지는 시기 …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라는 이정희 대표의 변명은 “이번 대표자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로 후계체제 구축의 시급성 때문에 열렸다는 것은 왜곡(7일, 새세상연구소 토론회)”이라는 박경순 민주노동당 연구소 부소장의 주장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 사진=이정희 의원 블로그

    만약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호전되고, 김정은 세습이 완결되고, 남북 간의 대화가 원활하면 그때 가서는 세습을 비판하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남북관계가 긴장상태이든 화해무드이든 북한에 대한 민주노동당 종북파의 침묵이나 심정적 동조는 일관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부의 세습이 교육, 직업, 수명의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어요(이정희, 김제동과의 인터뷰, <경향신문>, 7. 21)”라고 불의에 분노해 마지않는 민주노동당은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은 말하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가져다 대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여러 사람 중 한 사람만이 가슴에 남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면, 이성이 아닌 감성, 이념이 아닌 정념이며, 그것은 단 하나, 사랑뿐이다. 박경순 부소장의 ‘똘레랑스’ 호소는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이제는 이념 문제 등에 대해 널리 통용되는 그 말은 ‘신앙의 자유에 대한 근대적 용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숨길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사랑 역시 숨겨질 수 없는 것이다. 원수 가문의 연인을 사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문과 추방과 죽음을 감수하지만, 사랑을 사랑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민주노동당의 사랑은 가슴 속에 간직할 수밖에 없다.

    정견을 밝히지 않는 정당

    이정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옳지 않다. 이정희 대표가 들이대는 이유는 피고의 권리이지, 자신들의 정견과 소신을 국민 앞에 정정당당히 밝혀 심판받아야 하는 정치의 의무가 아니다. 지지하여야 하는 국민은 지지받고자 하는 정당이 김정은 세습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이정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남북관계가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이다.” 옳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평화와 화해보다 더 근본적인 진보정당의 임무는 인류 보편의 진보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다. 권력 세습이 옳다면 그것을 변호하는 것이고, 옳지 않다면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재부’나 ‘대표부’가 아닌 독립적 진보정당의 임무다.

    순박한 처녀 줄리엣과 다를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 종북파는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받고 싶어 한다. 김영환이나 유다처럼 사랑을 고발하지 않지만, 베드로처럼 사랑을 부인한다.

    분당 때는 “종북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지금은 “남의 일이다”라고 부인한다. 그리고, 김씨 일가가 힘을 잃고 북한의 참상이 드러날 때, “아니라고 그랬었잖아요”라고 자신들의 숭김주의(崇金主義)를 세 번째 부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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