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 평화상 유감
        2010년 10월 10일 0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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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슬로에서는 ‘빅뉴스’는 딱 하나, 노벨평화상이 중국 ‘반체제’ 인사인 유효파(劉曉波. 류사오보) 선생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대개 신문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도 관심사는 하나입니다. 이번 수상 ‘사건’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어디까지 냉각될까, 즉 중국이 노르웨이를 어느 선까지 ‘처벌’ (?)할 것인가 라는 부분입니다.

    노르웨이의 관심사

    그러한 처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효파 선생에게의 수상을 단행한 노벨위원회는 대개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물론 유효파 선생이 상을 받으실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합니다. ‘인권 투사’, ‘민주화 인사’이신데, 감히 토를 달았다가 국시 격인 ‘민주, 인권’에 대한 신념이 약한 ‘비국민’으로 찍힐 수도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처음부터 한 가지 오해를 방지하고자 합니다. 첫째, 저는 하옥을 각오하면서도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는 유효파 선생과 같은 분들을 개인적으로 대단히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서방에서 유효파  선생만큼 인기 높은 지식인 출신의 반체제 인사는 중국이라 하더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그저 증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무명의 민공이 비공식 노조를 만들려 하다가 공장주가 고용한 깡패에게 피살돼 죽을 수야 있지만, ‘바이오’인 구미인들이 잘 알고 지지하는 반체제 인사 정도면 중국 정부는 알아서 ‘배려’를 하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감옥은 감옥이죠. 결국 건강을 해쳐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니 본인의 신념을 위해 이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존경을 드리는 건 예의입니다.

    둘째, 저는 그 신념들이 꼭 ‘진보’와 무관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효파 선생이 주도하신 재작년의 <08憲章>은 일반적인 부르주아적 자유(종교, 언론 등등)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결사의 자유라든가 사회 보장 강화의 요구 등까지 담아 분명히 노동자적 입장에서도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유효파 선생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 일당 지배의 전복인데, 공산당의 지배가 노동운동을 억압하여 자유노조의 건설을 방해하는 것도, 자본가들의 초과 착취를 가능케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실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제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과연 유효파 선생이 갈망하시는 "공산당 독재가 없는 중국"이 노동자 친화적 중국일 것인가, 그리고 과연 유효파 선생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 사항들을 어디까지 이해하시고 지지하시는가 라는 궁금증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사오보. 

    의회 민주주의가 일당 독자보다 나은가?

    유효파 선생이 주도하신 <08憲章>을 보면, 좋게 들리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 신앙의 자유; 사법권의 독립; 지방 자치 및 분권화(聯邦共和)의 실행; 그리고 공직 선거와 의회 민주주의의 실행… 다 좋게 들리지만, 이 ‘의회 민주주의 실행’이라는 말을 보니 약간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각종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일당 독재를 반대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알겠지만, 의회 민주주의가 현존의 일당 집권보다 정말 현저히 낫다고들 생각하시나요? 우리도 국내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의회 민주주의란 근본적으로 별로 민주적이지도 않은 ‘금권 정치’입니다.

    사민주의적 대중 정당을 뒷받침할 만한 큰 노조가 있는 스칸다나비아 등 몇 개 예외를 제외하면, ‘정상적’ 의회 선거는 정치 자금의 경쟁의 장일 뿐이죠. 정치자금이 충분하면 매체력도 조직력도 생기지만, 그게 아니라면 – 국내의 진보 정당들처럼 – 아무리 제도적 민주화 다 돼도 그저 영원한 찬밥신세입니다.

    중국이라고 해서 과연 본격적으로 다를까요? 지금은 독재적인 지배세력인 공산당은 굳이 선거에 돈 쓸 일 없으니까 총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적어도 개별적 자본가들의 사리사욕을 어느 정도 억제하면서 나름대로의 ‘공공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경쟁선거에 돈을 쓸 일이 생기면 결국 그 돈을 대줄 대기업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뭐,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안들을 그대로 실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김영삼 이후의 국내 역대 정권들의 행태를 생각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민주화 그 자체를 꼭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금 중국의 상황에서 부르주아 민주화가 결국 노동계급보다 일차적으로 자본계급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부합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을 뿐입니다. 유효파 선생께서 이를 과연 이해하시는가요?

    유효파의 재산보호

    사실, 의회 민주주의를 비현실적으로 이상시하는 나이브한 소부르주아적 행태 이외에도, 유효파 선생의 <08憲章>에서 아주 우려스러운 부분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재산보호(財產保護)’입니다. 구체적 내용을 잘 몰라서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혹은 유효파와 같은 도회적 지식분자들이 농촌에서 토지사유제 같은 걸 부활시키려 한다면 이건 정말 큰일입니다.

    농지가 배타적 사유와 자유로운 매매 대상이 된다면 중국이 토지없는 농민들이 도시의 슬럼으로 내몰리는 인도와 꼭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피착취계급의 완전한 무산화와 각종 사회적 모순관계의 긍극적 첨예화 및 폭발을 그나마 방지하는 것은 토지에 대한 공공소유, 즉 모든 농민들에게 토지 사용권을 주는 제도인데, 이것마저도 ‘재산보호’ 미명 하에 없어진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인권이 절대 지켜지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굶지 않고 하루 세 끼 먹을 인권 말씀이죠.

    참, 유효파와 같은 사람들이 공산 권력이 약화될 경우에는 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공기업들이 민유화를 당해 극소수 부유층의 단기적 이익에 복무하게 될 점이라든가, 공산당의 통제없이 물이나 전기 가격 등이 ‘자유화’돼 크게 반등하여 서민들을 울리고 생산활동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각오하나요?

    독재 반대하려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나마 위대한 민중의 봉기에 그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는 공산 독재에 비해 극소수 부유층의 금권에 기반하는 ‘무늬만 의회정치’가 노동자 등 약자의 입장에서 꼭 나을 것이라고 정말 보기가 힘듭니다.

    유효파 선생의 일부 발언, 예를 들어서 "영국 식민통치 100년의 결과로 훌륭하게 민주화된 홍콩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에 중국은 300년 동안이나 식민 통치를 받아야 근본적으로 바뀔 것" (中國那麼大,當然需要三百年殖民地,才會變成今天香港這樣)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나이브한 지식분자이거나 정말 구미의 화려함에 넋을 잃어 완전히 압도를 당한 ‘윤치호 형 근대지상주의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은 들기도 합니다.

    구미의 화려함에 넋을 잃다?

    노벨위원회 분들은, 평균적 중국인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류의 발언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한 번이라도 고심 좀 해봤나요? 물론 유 선생은 진지하게 식민 치를 바라시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할 만큼 지식인인 그의 아버지와 가족과 함께 한 때에 하방시킨 공산권력을 증오하는 것이죠.

    모택동 사절의 지식인 하방, 하향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유효파가 젊었을 때에 막노동해야 했던 길림성 농안현공사는 그 당시 절대 다수의 중국 인민근로대중이 사는 모습 그대로이었어요. 유효파의 말 하나 하나 보느라면, 그가 자기 자신을 이 대다수의 인민들과 아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파악하는 것 같아요.

    글쎄, 그러한 분들이 흑여나 권력이라도 잡아버리면 과연 중국 일반 인민들이 소련 망국 이후의 소련 망국민의 비참한 운명을 면할 수 있을까요? 인권투쟁 내지 부르주아 민주화투쟁에도 그 나름의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진정한 변혁은 노동계급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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