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손학규와 노동당의 밀리반드
        2010년 10월 06일 02: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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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의 새 대표로 손학규 전 대표가 당선되었다. 지난 2008년 총선 패배로 물러난 후, 2년 만에 다시 전당대회를 통해 제1야당의 대표 자리에 복귀한 것이니 일단은 ‘성공적인 귀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결과에서 표출된 이른바 민주당의 당심은 한마디로 ‘변화’였다. 지금까지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째, 대여투쟁에 대한 제1야당의 태도다. 방송법, 4대강사업, 무상급식 등 정치적·사회적 쟁점의 중심에 서지 못했고, 그때마다 지도부가 내세웠던 “소수정당 한계론”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학규 후보가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오겠다”며 정권탈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 대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데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조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세균 전 대표가 정동영 후보에게도 밀린 가장 큰 이유다. 이와 아울러 이른바 ‘빅3’ 중 유일한 비호남 출신 인사에 대한 호남지역의 전략적 선택이 결정적이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잃어버린 600만 표’

       
      ▲ 현충원의 김대중 전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신임 지도부들 (사진=민주당)

    두 번째는 변화의 방향으로서의 ‘진보’다. ‘진보 민주당’을 내세웠던 정동영, 이인영, 천정배 후보가 비교적 상위권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 개혁’에 대한 요구가 다수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후 민주당이 갖추어야 할 ‘선명야당’의 내용적인 조건으로 이후 가장 큰 쟁점이 될 사안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점은 이후 이른바 ‘진보486’으로 불리는 40대 그룹의 역할과 맞물려 손학규 신임대표의 행보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동안의 경선과정에서 한미FTA 재협상, 부유세, 보편적 복지 등 민주당의 진보의제로 제기되었던 쟁점 중 큰 틀에서의 보편적 복지에 동의했던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그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결국 변화를 얘기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한나라당, 혹은 ‘이전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친노그룹’과 구별하여 ‘진보486’으로 불리는 이인영 최고위원과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그의 연대가 정책연대로까지 확대될 것인가는 여전히 가능성으로 남는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인영을 비롯한 개혁그룹이 부유세를 비롯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과 실행계획까지도 제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밀리반드의 아들들

    때마침 영국에서도 제1야당의 지도부교체 소식이 들려왔다.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비판적인 에드 밀리반드(Ed Miliband)가 유력한 당수후보이자 형인 데이비드(David) 밀리반드를 제치고 새 노동당의 얼굴로 선출된 것이다. 이들 형제는 영국의 대표적인 맑시스트 중 한 사람으로 노동당의 20세기 영국노동당의 지성으로 불리는 랄프(Ralph) 밀리반드의 아들로, 형제간의 경쟁으로도 관심을 모아왔다.

    그가 당선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짧게는 지난 5월 총선에서의 노동당의 패배로부터, 큰 틀에서 보면 블레어와 브라운 정권에 대한 당내의 비판적 평가의 결과였다. 즉 에드 자신이 강조하듯 ‘노동당의 변화’에 대한 당원들의 욕망이 분출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노동당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노조와 당내 풀뿌리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또한 선호투표제라는 선거방식도 그가 선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차 개표에서는 그가 데이비드에게 3% 뒤졌으나 최하위 득표자의 후순위 선호도를 추가하는 선거방식에 따라 4차 개표에서 1.3%차로 승리할 수 있었다.

    13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이후 실시된 영국노동당 대표선거의 메시지 역시 세대교체와 변화로 요약할 수 있겠다. 블레어의 완벽한 재현(full-blown)으로 불린 데이비드와 급진민주주의 좌파(Bennite)로 우파에게 공격당했던 에드의 대결이 노동당 내 이념대결의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공공정책과 복지확대에 있어서는 데이비드도 이전 고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한 제1야당에 대한 반동(反動)

       
      ▲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에드 밀리반드

    에드가 데이비드와 구별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모멤텀은 이라크 참전이 노동당의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점과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축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 또한 선거중간에 ‘오바마 스타일’의 변신을 꾀한 에드의 선거전략도 유효했다. 여기서 오바마 스타일이란 정당 내부로부터의 시작되는 정당개혁이 아니라, 정당 외부의 풀뿌리조직의 참여를 통한 정당개혁을 의미한다.

    고든 브라운에 이어 중도, 중간계급에게 노동당을 개방하는 것을 정당개혁의 관건이라고 주장한 그의 형과 구별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에드 밀리반드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다음과 같이 총평했다. “데이비드의 선거운동보다 무질서하긴 했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을 기초부터 단련시켰다는 것이다.

    멀리 영국 제1야당의 사례를 보면서 한국의 제1야당을 생각하게 된다. 민주당의 성공은 돌아온 ‘올드보이’ 손학규 신임대표의 개인적인 리더십보다는 오히려 개혁그룹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주당의 미래를 자임하고 있는 ‘진보486’이 과연 기존 계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 새로운 세대의 첫 차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많다는 점과도 궤를 같이 한다.

    어쨌든 민주당이 성장하고 환골탈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의 역할과 변화의 방향이 좀 더 왼쪽으로, 좀 더 진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국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이 우리나라 제1야당의 젊은 리더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의 핵심은 유사한 구호의 나열이 아니라, ‘이전 민주당’과의 분명한 결별과 정당개혁부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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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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