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 하나로는 반신자유주의 운동"
        2010년 10월 05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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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진영 내에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진보신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논쟁이 아직은 생산적인 방향이라 하기 어렵다. 보건의료개혁 운동이 한국사회에 진보 대 보수간 혹은 국민(혹은 노동) 대 자본간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기 이전에 진보진영내부에서의 비판의 벽을 넘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글은 진보진영내부에서의 논쟁이 좀 더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비를 줄이자는 운동

    현재 우리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매우 크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적 의료비 지출 때문이다. 보장성이 취약함으로 발생되는 과중한 의료비 부담과 함께 민영의료보험료 지출이 그것이다. 마치 GDP대비 교육재정은 3.5%에 불과하면서도 전체 사교육을 포함하면 7.5%로 웬만한 OECD 국가들보다 높은 것과 같다. 30조에 이르는 엄청난 사교육비 때문이다. 이는 의료비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와 의료비 지출구조를 간단히 요약하면 그림1과 같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 개의 호주머니로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① 첫째 호주머니로는 15.5조원에 이르는 보험료 부담이다(2008년 기준). ② 두 번째 지출은 의료기관 이용시 지불하는 본인부담액이다. 16조다. ③ 마지막으로 민영의료보험에 지출하는 보험료이다. 대략 15조다.

       
      ▲한국보건의료체계의 구조

    여기에서 각각의 재원의 특성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

    첫째, 건강보험료이다. 2008년 건강보험 총수입은 29조였다. 이중 국민이 낸 보험료(직장+지역가입자)가 15.5조(53%), 기업(사업주)이 9.5조(33%), 국가가 4조(14%)를 부담하고 있다. 이 구성 비율은 건강보험법상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예로, 매년 건강보험료율을 결정하는데 건강보험료 인상률이 결정되면 거기에 따라서 기업의 부담과 국고부담이 맞물려 결정되는 구조인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료는 근로소득에 정률제로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2008년 직장가입자 최하위 5%는 월 7,900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고, 최상위 5%는 74000원을 부담하고 있다.

    둘째, 국민들이 의료 이용시 직접 부담한 본인부담액이 16조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2.2%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고액진료의 경우 보장률은 더욱 하락하여 진료비의 절반까지 부담해야 한다.

    왠만한 큰 병이라고 걸릴라 치면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야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더불어 환자뿐 아니라 온가족이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두 번째 호주머니에서 지출하는 의료비는 보험료부담과는 달리 소득과 무관하게 의료이용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은 실제 훨씬 크다.

    셋째, 민영의료보험료로 15조이다. 현재 전체 가구의 80%가 하나 이상의 민영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이유의 대부분(80%이상)은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취약해서 오는 의료비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민영의료보험료는 국민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만을 지우고 있을 뿐,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률을 보완하고 있지 못하다.

    의료이용이 높은 고령자와 질병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은 보험가입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보험 상품의 경우 보험료 대비 지급률은 매우 낮다. 결국 민영의료보험은 보험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실제로는 민영보험사를 배만 불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와 세 번째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의료비는 단순 합산으로 30조다(물론 민간보험료의 일부는 건강보험의 본인부담을 일부 경감시켜 준다).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로 낸 금액(15.5조)보다 무려 2배에 이른다.

    첫 번째 호주머니에게 나가는 건강보험료의 경우 소득정률방식이다.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소득이 많을수록 보험료는 많이 내고, 적을수록 적게 낸다. 반면, 받는 혜택은 소득이 많든 적든 동일하다.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2009) 분석에 따르면, 보험료 최하위를 내는 계층(1분위)은 1인당 월평균 6,883원의 보험료를 내지만 급여혜택은 71,067원을 받아 10배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 반면, 최상위 계층(20분위)은 97,193원의 보험료를 내고 급여는 65,399원을 받아 매월 31,794원의 보험료를 더 부담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제도가 가지고 있는 사회연대적 효과 때문이다.

    반면 두 번째 호주머니의 의료비 지출은 소득 역진적이다. 이 는 소득과 무관하게 저소득층이든 고소득층이든 동일하게 부담한다. 저소득층에게 훨신 불리한 것이다. 세 번째 호주머니는 고스란히 민영자본에게 흘러들어간다. 우리 국민의 호주머니가 자본의 성장과 이윤창출의 근원인 셈이다.

    민영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 하나로

    자, 논리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고 하자. 그렇다면 의료이용시 본인부담이 최소화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레 민영의료보험을 가입할 이유도 사라진다. 둘째, 셋째 호주머니에 대한 부담은 불필요해지거나 최소화된다. 즉,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운동인 것이다. 이 운동이 갖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이것이다.

    물론 건강보험 하나만으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2008년 기준으로 의료기관 총진료비는 41조였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2.2%이니 25.5조가 건강보험 부담액이다. 만일 보장률을 90%로 확대한다고 하면 11.4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있다. 현행 건강보험 재원은 국민이 53%(직장 33%+지역 20%), 사업주 33%, 국고 14%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대폭 높이는데 필요한 재원을 사회연대적 보험료 이상을 통해서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의 부담률을 높이거나, 국고지원율을 높일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인 것이다. 현재 진보진영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이 재원마련을 사회연대적 방식을 통해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현행 건강보험 재원 중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하고, 나머지는 기업과 국가가 부담하게 된다.

    비록 건강보험 재원마련에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측면(종합소득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저소득층의 건강보험체납 문제 등)이 분명 있지만 그것이 현행 건강보험 재원마련 체계의 진보성을 부정하진 못한다. 건강보험 재정의 약 80%가 건강보험 가입자 중 상위 35%에 해당하는 계층과 기업, 국가지원으로 조성되기에 그렇다.

    다른 한편 가장 손쉬운 논리는 민영의료보험료의 일부만 건강보험으로 돌려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바로 ‘민영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 하나로’라는 슬로건이다. 예로, 민영의료보험료 15조 중 6.2조를 건강보험료로 전환하다고 해보자. 현행 건강보험 재정마련 구조상 여기에 기업이 6.2조, 국고가 2.7조를 추가 부담하게 되어 12조가 마련된다.

    이렇게 15조중 6.2조만 건강보험으로 돌리면, 두 번째 호주머니 지출이 대폭 줄어들어 의료비 불안과 가계파탄을 막을 수 있을 뿐 있다. 15조의 민영의료보험료도 필요없게 된다. 마법과도 같은 일석 이조의 효과다. 또 소득비례적인 보험료 부담제도는 저소득층일수록 추가 부담 보험료도 적으므로 훨씬 그 혜택이 크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반신자유주의 운동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해 비판 중 하나가 왜 국민만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느냐이다. 그러나 이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풀리지 않는 쳇바퀴가 될 수 있다. 오히려 현행 구조상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면 기업과 국가부담도 함께 인상된다. 자연스레 기업과 국가 책임은 병행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오히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가장 반대하는 세력은 작은정부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기업, 그리고 민영자본이다. 물론 의료자본도 여기에 반대한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제시하고 있는 재원마련 방안은 이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특히 보험자본과 재벌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이 운동이 바라는 바이다.

    정리하자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첫째,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운동이다. 서민가계에 보탬이 되는 민생살리기 운동이다. 두 번째, 우리의 건강은 민영보험자본이 아니라 사회연대적 방식인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지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세 번째 반신자유주의 세력과의 큰 싸움을 예고하는 운동이다. 이것이 내가 적극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지지하는 이유이며, 진보신당이 이 운동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마련하는 방식이 나는 이 한가지 방안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현재의 정세 하에서 진보진영이 전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현재 재원마련 방안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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