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밧줄을 탄다, 목숨을 탄다'
        2010년 10월 05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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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밧줄을 탄다 /…(중략) 목숨을 탄다 // 민주 민족 민중의 산맥 우리의 선열들과 형제들의 / 목숨을 머금은 봉우리에 오르기 위하여 / 공장 농촌의 얼음벽 학교의 바위벽 / 벽을 탄다 기어오른다 / 하나의 밧줄에 차례로 몸을 엮고 하나의 운명 되어 / 목숨을 걸고 한 발 두 발 비지땀을 흘리며 / 식은땀을 훔치며 목숨을 걸고 한 발 두 발 / 아우성치는 압제의 손길 내리꽂히는 수탈의 손길을 뚫고 / 저 꿈에도 못 잊을 원한과 열망의 봉우리 / 꼭대기에 두 발을 딛고 새 하늘 새 땅을 보기 위하여 / 외치며 노래하며 // 민족의 아들 딸 / 밧줄을 탄다 목숨을 탄다” (채광석 시 [밧줄을 타며] 중에서) 

    가을을 알리는 징조는 여러 곳에 있었다. 이미 색이 변해가기 시작하는 나뭇잎. 똑같은 햇빛이지만 이미 끈적거림을 없애고 있었다. 여전히 교정은 활기를 머금고 있었다. 교문을 지나며, 사람들이 시간을 잘도 잊는다는 생각을 했다. 유독 사람만이 무엇을 기억하거나 잊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무엇이 바쁜지 종종 걸음을 치고 있는 사이를 지나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아도 보일 교정이었다. 키 작은 나무 아래 누워 잠을 잔 기억도 있었다. 한 때 이 곳에서 공을 차던 공수부대원들을 떠올렸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잔디밭임에도 불구하고 간이 축구를 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5월의 하늘 아래 퍼지고 있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대학 입학의 새로움은 최루탄으로 시작되었었다. 그리고 강제로 끌려간 문무대. 군복을 입고, M1 소총이 키만 했던 친구 형희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사람들은 다시 나른한 평온을 맛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술집이 붐볐고…

    그러나 변한 것이 있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변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경계의 눈초리 속에서도 모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비밀스런 눈짓으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술집이 붐볐고, 술이 취하면 싸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구나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고, 누가 무슨 일인가를 꾸미고 있을 것 같은 당치 않은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다시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큰 가방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올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도서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 갑자기 시끄럽다. 담배를 하나 물고 창가로 천천히 움직인다. 창밖으로 9월의 맑은 가을하늘이 펼쳐진다. 멀리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이 식당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도 보인다. 휴게실을 중심으로 낯익은 얼굴들도 보인다.

    멀리 예술대학 건물 나무 아래 태연하게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는 듯한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몇몇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그들의 심장의 쿵쾅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담배연기가 열린 창문 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마지막 학생이 나갔다. 

    가방을 연다. 쇠사슬을 문고리에 걸고, 다른 한쪽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책상다리에 묶는다. 자물통을 꺼내 채운다. 문을 한 번 흔들어본다. 끄덕도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가방을 창문 쪽으로 움직인다. 자일을 꺼내 몸을 감는다. 다리에 하나씩 차례로 감고, 허리를 돌려 어깨에 걸친다. 차례로 중간마다 매듭을 지어 몸을 꽉 조이지 않게 한다. 많이 연습을 한 덕분에 쉽게 할 수 있다.

    길게 늘어진 자일 한쪽을 잡고, 이번에는 창문을 열고 옆에 있는 다음 창문으로 던진다. 자일이 다음 창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진다. 긴장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다시 던진다.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온다. 들어온 끝을 처음의 자일에 묶는다. 세 번, 네 번 단단하게 묶는다. 

    한 번 길게 호흡을 가다듬는다. 가방을 목에 맨다. 창문에 발을 내딛는다. 예상보다 미끄럽다. 직각으로 내려가는 게 만만찮다. 간신히 비좁은 창문을 빠져 나온다. 가방을 열어 유인물을 꺼낸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그 놈의 이름을 외친다

    사람들이 물려드는 게 보인다. 그 중에 유독 한 여자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광주를 얘기한다. 학살을 주도한 그 놈의 이름을 외친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신없이 유인물을 던진다. 언제 나왔는지 유인물을 뺏는 사복형사들이 보인다. 

    누군가 거칠게 문을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문을 부수는 소리도 들린다. 메가폰을 한 손에 잡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누군가 창문 틈으로 허리띠를 잡는다. 갑자기 중심을 잃는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계속 소리친다.

       
      ▲내 사진은 아니지만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이 한 사람이 아님을 느낀다. 사람들의 비명이 밑에서 들린다. 어지럽다. 깨진 창문틀 사이로 완강하게 자신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떨어지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4층이라는 생각도 갑자기 든다. 살의 한 부분이 베이는 통증이 온다. 비명소리가 더 커진다. 힘이 빠진다. 밑에서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더 커진다. 이미 차단된 사람들의 노래가 들린다. 

    아침이슬.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그래 기나긴 밤을 새워야 아침이슬을 볼 수 있겠지.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입 모양이 노래를 따라 하고 있다. 크지도 않게. 그러나 귀에 들린다. 갑자기 기운이 빠진다. 창틀 사이로 몸이 구겨져서 당겨진다. 

    “아악” 

    나는 안으로 잡아 끌려진다. 바닥에 피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거친 호흡소리. 담배 냄새. 낯선 신사복들이 주위 사람들을 교실 밖으로 내몬다. 피가 보인다. 오른팔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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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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