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을 세습이라 못하는 진보신당
    2010년 10월 04일 07:37 오전

Print Friendly

김정일의 권력 세습에 대해 진보신당이 술에 물탄 것 같은 논평을 발표했다. 총 10줄도 안되는 논평 중에 비난성 표현은 한 줄뿐이고 나머지는 남북관계 경색은 안 된다는 등, 북한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은 북한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등 지난 10년간 하던 말을 다시 붙여놓은 내용이다.

   
  ▲공개된 김정은 얼굴.  

민노당보다 진보신당 더 비난 받아야

심지어는 권력세습 이란 말도 권력승계로 표현되었다. 이 논평에서 가장 심한 욕은 ‘아쉽다’ 였다. 살면서 이렇게 점잖은 비난 논평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경향신문>이 사설을 통해 3대 세습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논평을 비난했지만, 나는 진보신당 논평을 더 비난하고 싶다. 진보신당은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반대한다며 지난 2008년 분당을 감행했다.

여기서 패권주의란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렸다는 말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대국민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오직 종북주의 반대가 분당의 유일한 대중적 명분인 셈이다.

그런데 김일성 부자의 3대 세습이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마당에 당의 대변인 논평이 ‘아쉽다’ 정도에서 끝이라니!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에서 차별성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왜 분당을 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당의 원천적 차별성을 드러내기에 모처럼 호기를 잡은 상황에서 기회를 극대화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완성도 높은 점잖은 논평에 집중한 것 같다.

정치는 대중의 박수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각본을 쓰고, 무대 위에 올라 혼신의 연기를 다하는 거대한 연극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술에 물탄 논평’은 도대체 누구의 박수를 받기 위한 연극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누구를 위한 논평인가?

진보신당은 100점짜리 논평을 추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진보신당의 현재 의석은 300석 중에 달랑 1석이다. 비율로 따지면 0.33%이다. 진보신당의 당면 목표는 2012년 5석을 가진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점짜리 논평이 아니라 5점짜리 논평에 더 신경써야 한다. 95점 정도는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한 가지 가장 중대한 문제는 이런 식의 친북온정주의가 횡행한다면 오래지 않아 몰아칠 북한 붕괴의 거대한 폭풍이 남한진보세력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아빠 잘 만난 스물 몇 살짜리 최고 권력자가 지배하는 나라가 정상국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체제가 과연 몇 년이나 가겠는가?

진보신당은 북한체제의 몰락과 연결된 남한 내부의 친북 진보세력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할 때 혼자 살아남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을 가지고 운신해야 한다.

3대 세습에 관한 이번 술에 물탄 논평은 지난 2년간 진보신당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원인이 어디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어느 선배 당원의 말처럼 진보신당은 친북정당, 민주노총당을 탈피하겠다며 얼어 죽을 각오로 분당을 감행했지만 아직 아무도 얼어 죽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비난 액션을 취해본 적이 없고 민주노총을 제대로 비판해본 적도 없다. 이 결과 진보신당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자기 포지션을 전혀 구현하지 못했다. 당이 연합논쟁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게 지난 2년 동안 다른 당과 구별되는 독특한 자기 존재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얼어 죽지 않았다

최근 진보신당의 대표단 후보들이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운동 하려고 민노당에서 뛰쳐나온 것일까?"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민주노동당과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소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거부감만 제거해 준다면 한나라당에 포섭된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원래는 특정 부유층들만 지지해야 정상인 한나라당을 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하는가? 그것은 진보=친북 이라는 등식 때문이다.

아무리 비정규직을 만나고 다녀도 이 등식이 작용하는 한 아무런 효과도 있을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을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 북조선을 왕조국가로 규정하고 뛰쳐나왔던 2008년 분리주의의 정신이다.

진보신당은 북한 체제에 대한 원초적이고 강력한 비난 철학으로 당을 재무장하고, 때로 민주노총의 잘못과도 과감히 맞서는 새로운 좌파 정당의 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예 머릿속에 남아있는 민족주의의 추억 전체를 지워버려야 한다. 그것이 진보신당이 역사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