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량진에서 '이상사회' 작당하자"
        2010년 10월 04일 07: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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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시대의 이상사회론

    트위터 타임라인을 오가는 또래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으면 순간순간 뱉어내는 분노들만 모아도 작은 지역 하나 쯤 순식간에 지상낙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 비판은 물론, 신비화된 일상을 무장해제하는 각종 전문지식과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각자의 이상사회, 그에 따른 단계적 전략까지, 그 공간은 이미 혁명 기운으로 들썩들썩하다.

    물론 온라인과 실제 세계 사이는 멀고도 깊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이데아를 대리 표현해주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섞인 한 마디에 묻어있는 사유와 욕망을 쓰레기 취급하기엔 어쩐지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고개만 끄덕이기엔 신선놀음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붉은 기운 또렷한 이 한 줌의 말의 공간, 근데 왜 통쾌한 변혁의 느낌은 오지 않느냐는 거다.

    이미 수천 번 반복된 실천부재 입 진보에 새삼 푸념하려는 게 아니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재등장한 인터넷의 허와 실에 대해 여기서 또 한 번 탐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조그만 조항 하나 바꾸려고 백만 명 쯤 거리에 모여도 정권이 ‘쌩까면’ 그만인 게 이 나라 일상인데, 갖가지 이상사회를 논리와 계산으로만 꿈꾸는 게 어쩐지 백만 광년 쯤 떨어진 얘기 쯤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의 끝까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이상사회론의 전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 이상사회 실험과 구체적 현실

    이상사회의 실험. 내가 실험이라는 말을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소로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이 알래스카로 떠나며 챙긴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에 대한 대중적 평가라면 자연주의의 선구자라는 어쩐지 도인 같은 이미지지만, <월든>을 찬찬히 읽어보면 실제로는 내 또래의 좀 어설픈 괴짜에 약간 황당할만큼 심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던 것 같긴 하다.

    <월든>의 첫 장인 ‘숲속 생활의 경제학’은 소로우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나름대로 기록한 부분인데, 호숫가에 들어가 집을 짓겠다며 판잣집에서 판자와 헌 창문 등을 얻어와 그 가격을 나열해 놓은 표 등이 실려있다.

    도시에서 자란 요즘 젊은이의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장단이지만, 그렇게 모은 재료로 콩코드 시내의 어느집보다 웅장하고 호사스러운 집을 짓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중구난방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소박’에 대한 통찰도 보이고, 그 위에서 자신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실험해보겠다는 한 젊은 괴짜의 돈키호테 같은 기획이 엿보여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생태주의와 같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세팅도 인류나 국가, 또는 하나의 지역이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어떻게 이용할 거냐는 질문에서 나오는 해답의 갈래들이다.

    따라서 이상사회는 결국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기 인생을 실험하는 것 말고 대체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거냐”는 소로우의 호통과, 무턱대로 혼자 호숫가로 들어가 2년간 자족하고 나와 해볼만 했다고 회상하는 그의 이상에 대한 태도가 아직도 그를 회생시키는 힘일 것이다.

    # 세대론과 당사자 운동

    사실 구체적인 공간에서 실험하자는 말이 특별히 새로운 건 아니다. 상세히 설명할 것도 없이 80년대부터 지역의 풀뿌리 조직은 꾸준히 시도됐었다. 80년대 운동권의 분화 이후, 정치권으로 유입되거나 시민단체를 조직했던 사람들 외에도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을 실험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지역에서 생협을 만들거나 유기농업 등을 가꿔온 이들이 없었다면 최근 부상하고 있는 마을만들기나 지역순환형 경제체제 등의 논의가 살아있는 근거를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 세대의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느 공간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 걸까? 세대론과 함께 촉발된 ‘20대 당사자 운동’을 기준으로 한다면, 젊은 세대의 활동영역은 출판계와 홍대, 그리고 이 둘 모두 인터넷에 기반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효과로 논의가 공유되는 속도와 파급력을 높였고, 책을 출판하는 등의 공식활동 없이도 유명인이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인터넷 언론이나 블로그, 트위터를 조금만 뒤져보는 사람이라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논의 지형이 형성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담론이 구체화되고, 새로운 담론의 출현 근거가 되는 현장은 인터넷의 방대한 논의지형에 비해 아직 너무나 협소하다. 특히나 구체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실험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물론 여전히 홍대는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이 젊은 문화와 이른바 홍대 정신이 훌륭하게 부활한 두리반 같은 이례적인 공간이 있긴 하다. 노동절, 젊은 아티스트들이 두리반 철거현장에 <뉴타운 컬쳐파티>라는 공연을 열어 일 없는 20대의 노동절 참여를 꾀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반짝였다.

    두리반 현장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을 주축으로 자립음악가조합 준비회의라는 것도 생겨났다고 하니 이를 두고 홍대가 낳은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을 막는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이상사회의 실험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도 별개의 텃밭이 필요한 것이다.

    # 어디가 좋을까?

    맞다. 요는 이상사회를 실험해서 운동의 구체적인 근거를 직접 만드는 구체적인 공간이 젊은 세대에게도 필요하다는 당연한 말을 하려는 거다. 소로우처럼 자연으로 둘러싸인 호숫가로 들어가든, 70~80년대 선배들처럼 지방소도시나 농촌으로 들어가든, 이상이라는 걸 살아남게 하려면, 또 그 이상이 가능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근데 이상적 사회라는 걸 꼭 여행 가서나 맛 보는 경관 속에 자리잡은 작은 농촌 마을에서 구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쩐지 긴머리 꽁지 묶은 꼰대 같은 아저씨가 읊어주는 동양철학 들으면서 높은 금욕정신을 강요할 것 같은, 무슨무슨 공동체에 들어가야만 체험할 수 있는 걸까?

    또래의 친구들에게 과도한 전투력을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하루 세끼를 먹고, 일하고 이웃들과 떠들면서 일상 속에서 하나 둘 변혁을 실험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은 없을까? 구체적으로 젊은이들이 부담을 덜고 소비할 수 있는 저렴한 상권이 남아있고, 이들을 위한 식당과 문화시설이 발달한 곳, 폭주하지 않는 주거공간이 자리잡고 있어 이웃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어디 없을까? 홍대일까? 신촌? 대학로? 압구정? 종로가 그런가?

    아쉽게도 교통 요지에다가 화려한 상권이 있는 곳은 그 스타일의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번잡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주거비나 유지비도 비쌀 수밖에 없다. 대학 근처의 원룸, 하숙촌이 있긴 하지만 이미 학생들로 포화상태인데다 대학촌 특수로 저렴한 비용으로 생활하기 힘들다. 시민단체 사무실이 많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활동가들이 모여살게 되는 마포나 서대문, 광화문 일부가 있긴 하지만 왠지 눈치를 봐야될 것 같다.

       
      ▲노량진 학원가.(사진=오마이뉴스) 

    # 노량진, 신림동 학원가

    쌩뚱맞을 수도 있지만 생활공간과 저렴한 상권이 갖춰져 있으면서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맞춤한 곳은 노량진과 신림동에 자리한 학원가다. 신림동이 몇 개의 지구로 나뉘어 있는 반면 노량진 상권은 일렬로 줄지어 있고, 학원의 종류가 달라 유동인구의 구성이나 분위기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시학원에 다니는 고시생이 원스톱으로 생활할 수 있게 세팅되어있다.

    예컨대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시원 건물 한 동 옆에 1층에는 생활용품이나 식당이 있고, 그 위로는 당구장, 만화방, 노래방, DVD방 등이 입주해 있는 건물 한동이 연쇄적으로 이어져있는 고시촌 특유의 공간이 나오는 것이다.

    그 사이로 고시전문 서점과 각종 생활용품과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파는 슈퍼마켓 등이 늘어서있다. 상점에는 1인생활자를 위한 생활용품은 물론 이곳에서는 책상베개나 손목보호대, 독서대 등 고시생에게 특화된 물건들을 많이 판다. 물론 기타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많지만, 고시촌은 기본적으로 생활공간이다.

    10대에서 30대 초반까지의 각종 수험생이 이 구역 유동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고시 거리의 가게는 자연스럽게 이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박리다매형으로 운영된다. 그래서인지 거대기업의 쇼핑몰이 없고, 여전히 상권의 대부분은 소상인들이 운영한다.

    주먹밥, 우동과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고시생을 위해 월별로 식권을 끊는 월식 백반을 파는 식당이 즐비하고, 공부하느라 집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젊은 고시생들을 자극하는 ‘고향집’, ‘젊은 할머니집’ 같은 토속적인 상호가 대부분이다. 보통 식당에서 한끼 식사를 하는 가격은 4천원 미만.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강남이나 신촌, 대학로에서는 2~3천원은 더 지불해야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다.

    당구장이나 만화방의 이용료는 서울 최저가 수준이고, 역시 저렴한 가격의 노래방이나 DVD방도 빼곡하다. ‘XX주점’ 따위의 이름을 가진 술집 대부분이 낮에는 무알콜 메뉴를 내놓으며 술집 테이블을 스터디룸으로 용도변경하는 등 고시촌에 적응한 특이한 운영방식을 갖고 있는 곳도 많다.

    # 눈물겨운 판넬을 걷어내고

    고시촌만 아니면 맘 편히 소박하게 지내며 이상사회를 작당하기에 딱 좋은 지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잠깐, 고시촌만 아니면? 고시촌이 뭐가 어때서? 오히려 고시촌 같이 왠지 긴장되는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선 마음맞는 친구들을 모아 장사가 시원챦아 보이는 고시원 아저씨와 협상해서 한 층 정도를 값싸게 뚫는 거다. 저렴한 고시원들은 그야말로 격자모양으로 구획해서 판넬로 대충 막아놓은 걸 방이라고 해놓았는데, 어차피 방음은 커녕 빛도 안 들어오게 만들어놓은 눈물겨운 판넬을 치우고 공간부터 해방시키고 기분이 좋아지도록 가재도구를 배치해 보자.

    일단, 도심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곳이니까 부담을 덜고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임대료도 벌 겸 수익사업을 구상해 볼 수도 있다. 이 곳은 값싼 음식과 놀거리가 널려있는 천혜의 유흥지 아닌가!

    한 가지 예로 고시촌에 배낭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는 것도 예상외로 괜찮은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신림동은 강남과도 가깝고, 노량진은 한강이 코 앞이다. 잘 되면 임대료도 벌고 고시촌을 새로운 여행자 스팟으로 만들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고보니, 한국을 방문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숙박비를 아끼려고 찜질방이나 PC방, 고시원을 심심챦게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다. 게다가 노량진의 중심거리는 카트만두의 타멜이나 태국의 카오산로드 같은 세계적인 여행자 거리와 거의 상당히 흡사하다. 앗, 그러고보니 둘의 패션도 비슷한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고시에 지쳐있는 또래 친구들을 공략할 이벤트를 기획할 수도 있다. 고시에 목매는 또래의 젊은 세대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는 서운한 게 사실이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교대 입학 점수를 급상승시키고 고시열풍을 처음 만든 장본인은 IMF였고, 가속페달을 밟은 건 신자유주의라는 걸 상기하면 그 많은 고시생들도 다 우리 같은 분노한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들이다.

    고시생 하면 자기 혼자 살겠다며 세상 일은 나몰라 하는 사람들로 보게 되는데, 어쩌면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같은 또래들이다.

    80년대 지역 풀뿌리조직을 실험하기 위해 각 지역으로 흩어졌던 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이상을 공유하는 동류끼리 모이는 데에는 재빠르지만, 그 이상을 안고 불모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이상사회의 상을 그리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바로 옆 동네, 또래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일상 속 실험을 시작해 나가는 것, 모순의 한 가운데에서 유쾌한 균열을 일으키는 실험을 시작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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