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과 여성, 그리고 또 있다
        2010년 10월 02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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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하버드의 한 교수님과 어떻게 해야 건설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주 교수님께서 추락사고 예방이나 소음성 난청 예방 등과 같은 주제를 내주시면, 제가 그 주제에 대한 기존의 문헌들을 정리해가서 한 시간 가까이 토론을 하는 방식이지요.

    나의 동성애자 교수님

    요즘에는 이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 일주일의 절반은 자료를 준비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워낙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명쾌하면서도 난해한 문제들을 비껴가지 않는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매번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가 제가 교수님 칭찬을 할 때면 같은 과 박사과정의 대만 친구는 묘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곤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교수님이 동성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재작년 자신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도권 교육을 받아온 저로서는, 그 이분법적인 분류로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만났을 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무척 난감해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왠지 저도 모르게 온 몸이 오그라들 것 같고, 또 그들은 저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벽 같은 것이 그들과 나 사이에 놓여있다고 믿었던 게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미국에 와서 동성애자인 학생들과 친구가 되고 여러 고민을 나누고 서로 알아가면서 비로소 그들을 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것처럼, 저 역시 표현은 하지 않았을지언정, 그들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괴물’처럼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연 중인 Anne 교수. 

    남성과 여성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런 제게 2000년 7월 <사이언스>지에는 실린 논문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스턴 대학에 계시는 Anne Fausto-Sterling 교수님께서 쓰신 <The five sexes, revisited>¹입니다.

    많은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다고 믿고, 트랜스젠더들은 남성의 몸에 여성이 깃들거나 여성의 몸에 남성이 들어가있다고 생각을 하고, 동성애자들은 의학적으로 몸은 남성이지만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이 논문은 생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인간의 몸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생물학, 해부학 수준에서도 남성/여성 이분법으로는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Anne 교수님은 그들을 인터섹슈얼스(intersexuals)라고 부르면서, 1.7% 가량의 영아가 이 경우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 하나의 예로, 그는 선천성 부신과형성증(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의 몇몇 사례를 이야기합니다.

    여성의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남성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인해 외부 성기는 남성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 난소와 자궁은 임신 가능한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의과대학에서는 남성 호르몬 과다 분비를 억제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주는 것을 치료법으로 배웠던 질환입니다.

    그러한 몸의 상태를 인터섹슈얼(intersexual)이라고 불러야 할지 혹은 치료를 필요로하는 ‘질병’으로 규정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성별이 불분명한 신체를 가진 아이들이 의학적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 치료는 누가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인생에 그 치료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존과 조안

    인터섹슈얼을 치료하는 데 가장 흔히 통용되는 원칙은 1950년대에 존스 홉킨스대학의 심리학자 John Money를 비롯한 팀에 의해서 개발되었습니다. 그들은 생후 18개월까지는 아이들의 성별 정체성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인터섹슈얼들을 치료하는 것은 오직 외과적으로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가에 기반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들에게는 외과적으로 결정된 성별(sex)에 따라 아이를 키우도록 권유했구요.

    Money 박사 팀은 그러한 수술을 받은 아이들을 추적하며, 새롭게 부여된 성별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례들을 모아 발표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안(Joan)의 경우인데요, 인터섹슈얼은 아니지만 포경 수술중에 사고로 남성 성기가 절단된 존(John)은 외과적으로 수술을 받고 Joan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훗날 Joan은 드레스를 즐겨입고 머리 단장하기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로 잘 큰, 수술의 ‘성공’ 사례로 보고되고 인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발간 된 『As Nature Made Him』이라는 책에서 John/Joan은 수술로 남성의 성기가 제거되었음에도 의학의 도움을 받아 여성과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해 살고 있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수술로 부여된 성별을 거부한 것이지요. 이처럼 외과적 편리에 의해서 부여된 성별을 거부한 사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거부를 통해 선택한 성별은 염색체 수준의 성별과 무관한 경우도 많구요.

    이 모든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많이 낯선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 비슷한 문제로 고뇌하고 신음하는 또 다른 John/Joan이 한국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구분하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범주밖에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 뿐이겠지요. 그런 그들이 1.7% 가량 된다는 Anne 박사의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1.7%

    만약 역사가 발전해왔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저는 그 핵심이 개인의 자유, 즉 개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에게 자신의 종교와 사상을 결정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성별을 결정할 자유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인터섹슈얼들의 성별을 외과적 편리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모든 이들에게 남성 혹은 여성 둘 중 하나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 개개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채로 메스를 휘두르고 있지요.

    남성/여성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혹은 인터섹슈얼들이 사회에서 설 곳을 빼앗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분법의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동안 여성스러운 남성 혹은 남성스러운 여성들은 사회가 부여하는 성 역할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고 또 구속했어야 했을까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서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에이즈에 걸릴 것을 우려하는 광고를 보고서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던 것은, 동성애와 에이즈를 그토록 당당하게 연결시키는 의학적 무지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러한 글을 보고서 자신의 존재가 이 사회에서는 여전히 ‘비정상’으로 ‘괴물’인 것 마냥 취급받고 있는 것을 또 한번 확인하며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겨났을 상처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괴물’은 동성애자인 그들이 아니라,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닌 인간인 그들을 인간 이전에 남성 혹은 여성으로 살도록 하는 우리 사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 Fausto-Sterling, A., The five sexes, revisited. Sciences (New York), 2000. 40(4): p.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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