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살인법으로 산재왕국 벗어날 수 있을까?
    By 나난
        2010년 10월 01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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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산재왕국’이란 오명을 달고 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지난 2006년 이후 급성 심근경색 등으로 1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한국타이어에서 최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최근 몇 년간 산재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고는 하나 타 국가에 비하면 한국의 사망률은 월등히 높은 상황이다.

    당연히 “산재사망률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살인법은 물론 산재발생 기업에 대한 가중처벌 도입을 주장하는가하면,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고 있는 사업주 처벌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OECD 1등 !

       
      ▲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앞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은 바로 한국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09년 산재 사망자는 2,181명으로, 하루 평균 6명꼴이다. 이는 지난 2008년 2,422명보다 줄어든 수치이기는 하지만 외국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2008년 통계를 놓고 비교할 때, 한국이 10만 명당 18명꼴인데 반해 영국 0.6, 독일 2.1, 일본 2.7, 미국 3.7명이다.

    또 고용노동부의 2007년~2010년 6월 10대 건설회사 현장 사망자 발생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10대 건설업체(대한건설협회 기준)의 현장에서 141건의 산업재해가 생겨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 해 산재로 사망자는 노동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안전보건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최근 노동계에서는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업살인법’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살인법은 안전조치가 미비한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처벌토록하는 내용이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과실치사 혐의 적용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산재사망은 사업주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함으로써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때문에 징벌적 대상제도, 가중처벌 등을 요구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살인법이 제정되면 사업주가 엄격하게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이중처벌 논란 등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이를 실행할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게 우선으로, 안전보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법률적 검토를 위해 전문가들과 결합해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역시 “선진국처럼 기업살인법을 만들어 사망사고에 한해서 형사처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법이 생겨나지 않으면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산재를 일으킨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에 대해서도 형벌로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람에 대해 전과를 보관하는 것처럼 기업의 산재 발생 전과를 보관해 개인과 같이 가중처벌하자는 것이다.

    김은기 민주노총 산업안전보건국장은 “산재사고 발생시 산재보험료를 올리는 등 행정적 가중처벌은 가해지고 있지만 형사처벌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사업주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측면에서라도 가중처벌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타이어에서는 2006년 이후 17명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사진=금속노조)

    하지만 새로운 법의 제정보다는 현재 마련돼 있는 처벌규정의 정확한 이행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처벌규정은 있으나,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림으로써 정부와 사법부가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사망 등 중대 재해로 처벌받은 사업주 2,368명 중 구속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벌금형을 받거나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됐다. 여기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7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위반한 12만8,611건 가운데 96.2%에 대해 시정조치만을 내렸다.

    산안법은 위반 사업주에 대해 행정벌인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지만, 노동부가 ‘근로감독과 집무규정’이란 자체 훈령에 근거해 처벌을 유예한 것이다. 이에 금속노조는 지난 7월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 등을 ‘산업안전보건 업무 관련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한 바 있다.

    법상의 과태료도 유예하는 노동부

    “사업주 형사처벌 및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 산안법을 무시하고 단순히 시정명령만 내렸다”는 이유다. 당시 금속노조는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률 1위라는 ‘산재공화국’ 오명을 벗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임 전 장관의 솜방망이 처벌은 공장 내 산업재해를 더욱 부추기는 처사”이라고 비판했다.

    조 국장은 “코리아냉동에서 40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2,000만 원의 벌금을 냈을 뿐”이라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역시 처벌 조항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이를 실제 집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 역시 “현재 우리나라 산재 발생관련 사업주 처벌규정이 낮은 것은 아니”라며 “문제는 처벌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기소되더라도 사법부는 불기소 정도로 벌금처리하는 등 규정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미미한 수준”이라며 “각 산업현장의 안전시설을 점검하고 재해 발생시 조사하는 산업안전감독관은 현재 300여 명으로, 물리적 한계로 인해 노동부 감독이 허술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총 사업장 수가 180만 곳인 영국의 산업안전감독관 수는 2,800명인데 반해 한국은 300여 명이 약 156만 곳을 감독해야 한다.

    한편, 한국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도 산재사망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배준호 산업안전관리공단 문화홍보실 대리는 “한국 경제규모는 세계 15위인데 반해 안전의식 수준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며 “사업주는 근로자를 위한 안전시설 등을 구비하고, 근로자는 개인 안전모 등 보호장비를 제대로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험불감증, 안전불감증이 작업장에서 만연하다”며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있었다면 산업안전적 측면에서는 ‘조심조심’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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