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악마화'를 넘어서야
    2010년 10월 01일 08: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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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차기 CEO로 김정은 전무를 앉혀보겠다는 김정일 회장님 때문에 요즘 팔자에 없는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승무원들이 몇년 파업을 해도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노르웨이 언론들은, 이 ‘신기한 왕국’ 북한의 소식에 대해 늘 놀라운 궁금증을 보이고 있으며 요즘 당 대표자 대회 관련으로 제게 거의 매일같이 이것 저것 묻습니다. 가끔가다가 그저 웃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요즘 너무 바빠진 이유

며칠 전에 TV-2라는 방송국에서 김정은 차기 CEO의 스위스 학력을 들면서 "독재 국가의 권력자가 왜 하필이면 자기 자녀를 민주국가으로 유학보냈느냐"고 제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 그 자리에서 되물었죠.

"그러면 남한의 군사 독재자 노태우의 딸 노소영이 민주국가 미국에서 공부한 걸 어떻게 봐야 하나요? 남한 군사 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인 김종필의 아들은 유학 정도도 아니고 아예 미국 국적자와 결혼한 것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념적 색깔은 어떻든간에 주변부의 과두권력자들 중에서 진심으로 중심부 지향적 성격을 갖지 않는 이들은 과연 많은가요? 북한은 ‘사회주의’를 간판으로 내걸어 일부 관찰자들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 권력 실세들의 실질적인 의식이나 행동양태가 남한의 권력자들과 정말 그렇게까지 다르다고 보시나요?"

이렇게 해서 열변을 토했지만, 기자는 그래도 "독재 국가의 지배자가 자기 왕자를 민주국가에 유학 보내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고, 왕자가 민주사상을 배워오면 어떻게 될 것이냐"고 계속 우겼어요. 참, 그 ‘기자님’이 사우디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북한 정도의 독재국가에서 살면서 그 권력자들의 자녀들의 유학코스를 추적하셨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오늘은 또 사민주의적 지향의 <닥스아비센>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영어와 독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3대 최고권력자가 개혁, 개방 노선으로 가지 않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영어 잘 한다고 개혁 개방 노선?

이승만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해서 분단과 전쟁, 좌파 학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생 분단국 남한이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노선으로 갔을 확률이 많이 높아졌나요?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이 하버드 박사 출신의 영어 능통자라고 해서 그 기업에서 갑자기 노조가 생기고 하도급 기업 노동자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에 살인적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예’ 신세를 면하게 될 것인가요?

삼척동자가 알 일이죠.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식민지시대 엘리트들이 그 특권을 계속 누리는, 외세의존성이 절대적인 신생국가에서 독재를 하는 이유는 "영어를 못해 민주주의를 못배워서"가 아니고 그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다수 ‘피해대중'(조봉암의 표현)의 정권에 대한 증오심과 해방에의 의지를 억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극도로 착취적이고 반민주적인 한국 기업 문화도 ‘영어를 못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절반이나 될까 말까 하는 등의 기술적 후진성과 해외 시장을 둘러싼 날로 가열해지는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의 열세 등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기업인들이 손쉬운 ‘노동불안화, 임금착취’의 길을 택함으로써 형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다들 스위스에서 아예 눌러앉아 살아버려도 달라질 것도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북한의 귀족층이 왜 꼭 다르다고 봐야 하나요? 한국 기업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양보로 그 단기적 수익률을 위협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듯이, 북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공장/농장의 주인님들도 개혁, 개방을 지나치게 빨리 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 하지 않죠. 그들의 수장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능통자인데다 인터넷광이라고 해서 도대체 뭐가 달라진단 말에요?

제가 남한과 북한을 동렬에 놓고 비교하는 데에 대해서 가끔가다가 학생들은 문제제기를 하죠. 거의 모든 20대들이 매일 인터넷을 즐기는 나라와, 광명망조차도 주로 엘리트들만 이용하는 나라, 다이어트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나라와 큰 명절 아니면 고기를 제대로 못먹는 나라를 비교해도 되느냐고요.

김씨 왕족과 재벌 그리고 독재

물론 지금으로서의 양쪽의 소비 수준 등은 이미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 정도의 간극을 메꾸려면 적어도 반세기 이상이 걸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연 북쪽의 실패를 무조건 김씨왕족의 탓으로만 돌리고, 남한의 자본주의적 번영(?)을 무조건 재벌가와 독재자들의 ‘선정’ 덕분으로 돌려야 하나요?

사실, 남이든 북이든 한반도 역사 전체에서는 ‘국제적 계기’란 거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해온 것을 간과하면 안되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일제 관학의 ‘타율성론’ 등을 복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한반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그 총인구의 총체적 의지에 의해서 전개되죠.

남한의 민주화도 그랬지만, 어디까지나 대다수 인민들의 유교적 ‘충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북한의 기적과 같은 최근의 생존도 외인이 아닌 내인에 의거한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한 성만한 한반도에서의 국제적 ‘계기’들의 중요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적어도 역사 전개의 결정적 시기마다 말씀입니다.

예컨대 중국이 수나라, 당나라로 통일돼 고구려를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신라 통일’이 가능했겠어요? 백제와의 싸움도 혼자서 완결짓지 못한 신라가 거인 고구려를 혼자서 처리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결국 중원의 통일과 한반도에서의 삼국시대 종식은 분명한 인과관계에 있습니다. 원나라가 망해 친원 권문세가들의 ‘후견세력’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고려-조선의 교체가 이루어졌겠습니까? 청나라가 일찌감치 유라시아 국제교류의 한 축을 맡지 않았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부터 천주학까지 후기의 조선에 유입됐겠습니까? 청나라와 러시아가 차례대로 일본에 지지 않았다면 과연 ‘합방’이 이루어졌겟습니까? 해방이 아닌 ‘해방’과 팔자에 없는 분단의 ‘국제적 계기’야 굳이 언급 안해도 알만한 일입니다.

중원의 통일과 삼국시대 종식

그 다음에 남한이 1980년대 말에 준핵심부로 편입되기 전까지 그 개발의 핵심적 버팀목은 총 약 130억달러에 이른 미국의 원조(1973년까지)와 400억 달러 정도의 아시아개발은행, 일본 정부 및 시중 은행 등의 차관, 미, 일, 서구의 직접 투자와 기술 협력(포항제철은 과연 처음부터 국산기술이었던가요? 서울지하철 1호선이 처음 개통됐을 때에 그 차량들은 어디에서 만든 차량들이었을까요?), 그리고 1970년대말 같으면 남한 수출의 70% 이상 사주었던 일본과 미국의 시장 흡수력이었습니다.

냉전적인 미, 일, 서독과의 (다소 종속적)’협력’ 틀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라 통일’에 대한 당나라 천하 통일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그저 역사의 사실일 뿐입니다.

북한의 버팀목은 1980년대 말에 그 무역의 80% 정도를 담당했던 소련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버팀목은 좋았을 때에도 미, 일, 서독이 남한에 퍼주었던 만큼 돈과 기술, 시장 소비력을 북한에 절대 제공해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소련의 실질적 경제력은 미, 일, 서독의 총체적 경제력의 20% 정도이었어요. 좋았을 때 말이에요. 문제는 그 버팀목인 소련이 20년 전에 망했을 때에 천문학적인 군비의 무게에 허리가 휘었던 북한은 남한과 달리 아직도 ‘준핵심부’와 아주 사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유신 말기나 신군부 초기의 남한처럼 그저 종속적인 제3세계 국가이었을 뿐이죠(‘주체’에 대한 궤변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고요).

거기에다 중국과 달리 규모의 경제와 같은 장점도 없고, 1980년대 등소평 식 군축 정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 ‘최전선 국가’이었던 것이고요. 결과는 1990년 이후의 처참한 반(半)몰락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남북한 비교를 정말 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그러나 예컨대 양쪽의 버팀목들이 그나마 팽팽히 맞섰던 30년 전 같았으면 양쪽의 동등한 비교가 가능했다는 점도 기억해주어야 합니다.

남북한 지배 계층의 본질

국제정세에 따라 한반도 정치, 경제가 당장 춤추는 게 우리들의 비극이지, 버팀목을 잃은 한 쪽을 악마화하거나 무시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1990년대의 러시아처럼 미국이 국민총생산의 50% 정도 줄어버리면, 남한 경제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물론 북한의 세습 독재를 – 남한 재벌들의 세습 독재들과 마찬가지로 – 좋아할 일은 절대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을 그들의 실정만으로 돌려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사학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실정도 당연히 있었지만(삼성자동차는 실정이 아니고 무엇이엇을까요? 북한만 실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제 계기’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 같고, 그 국제계기의 영향으로부터 남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한의 지배 체제는 남한보다 훨씬 전근대적이고 억압적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북한의 지배자든 남한의 지배자든 똑같은 민중의 착취자일 뿐이지 북한측이 유독 악질적이고 악마적이라고 볼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카오에서의 김정남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안보셨어요? 딱보면 외국에서 비자금 관리하면서 도박이나 일삼는 남한의 부유층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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