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건전성 논쟁, 함정에 빠지면 안돼
    대기업-부자 증세, 세계적 추세 따라야
        2010년 09월 30일 0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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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에 음울한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은 지난 경제위기로 겁먹은 사람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며 순식간에 전 세계경제를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봄, 이 유령은 남유럽에 출몰하여 소문이 아닌 그 실체를 잠시 드러낸 바 있어 그 공포는 현실화되는 듯하였다.

    이 유령은 다름 아닌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적자와 국가부도에 대한 공포이다. 이른바 남유럽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재정위기는 경제가 또 다시 곤두박질 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체력과 면역력이 약화된 세계경제에서 한 국가의 부도는 급격하게 다른 국가로 전염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이 유령퇴치를 결의한다.

    G20의 전세계적 유령퇴치 작전

    G20 정상들은 2010년 6월 캐나다에 모여 긴축재정 및 향후 재정건전화를 위한 계획(fiscal consolidation plans)을 마련하고 이를 즉시 실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즉 유령퇴치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이른바 출구전략을 시동한 것이다.

    재정건전화 계획은 첫째, 신뢰성 확보, 둘째, 경제성장을 촉진 셋째, 중기계획을 즉시 마련한다는 세 가지 일반원칙과 2013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현재의 절반으로 축소하고 국가채무비율(government debt to GDP ratio)은 2016년까지 안정화 또는 하향 추세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재정건전화 정책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인 논쟁이 촉발되었다. 재정긴축과 긴축 반대를 둘러싸고 트리시 ECB총재, 스티글리츠, 제프리 삭스 등 당대 경제정책 집행자와 경제학자들 참여하는 논쟁이 그것이다. 논쟁은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 재정투입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입장에서 부터 금융시스템의 개혁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확대되어 진행되고 있다.

       
      

    사실 현재 각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는 2008년 금융위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금융위기 직후 G20은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붕괴 저지하고, 세계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즉 국가의 재정이 금융자본과 사기업에 투입되어 경제의 붕괴를 막아낸 것이다. 대신 국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마바의 금융개혁 등) 해당 금융기관과 사기업 및 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 수단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모른다 하더라도, 곧 죽을 것 같은 민간자본의 숨통이 터진 시점에서 재정긴축에 대한 논의는 꼭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떼 쓰는 모양인 것은 분명하다.

    민간자본 숨통 터진 직후의 재정긴축

    사실 경제위기 시 재정수지를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테시시 유역 개발과 같은 대규모 개발과 사회보장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뉴딜(Newdeal) 정책의 근원이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뉴딜정책은 상당한 반대에 직면하였다. 핵심정책은 미국연방법원에서 위헌판정을 받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재정적자 축소(긴축재정) 운동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한국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해결하려면 G20을 중심으로 국제공조를 통해 성장친화적인 재정 건전성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G20의 결의 내용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재정적자에 대한 ‘공포’는 일반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언론들은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을 이용하여 재정적자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최근 LH공사의 재개발사업 재검토를 과정에서 부각된 LH공사, 건강보험, 철도공사 등 공기업 및 공적보험의 부채가 질타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LH공사의 경우 부채가 100조원으로 하루 이자가 100억원 씩 불어난다고 하고,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일반정부와 공기업의 이자부 부채는 605조(6월 말 현재)에 달한다고 하니 어떤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까? 매월 카드빚과 주택담보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국민이다 보니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은 일반 가계와 다르다. 정부는 법적 강제수단을 통해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소득 또는 사업소득을 통해 유일하게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민간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사실 현재 한국정부의 재정적자는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성격이 짙다.

    부자감세 해놓고 재정건전성 우려 모순

    이명박 정부의 출발은 이른바 ‘부자감세’ 정책이었다. 법인세, 소득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의 무력화를 통해 5년간 99조를 감세한 바가 있다. 이 감세정책이 명목으로 내세운 소비 진작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법인세 인하 혜택의 86%인 2조458억원(2008년)가 대기업에게 돌아갔음이 밝혀지고 있다. 종부세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이 현재 재정적자의 주범이다.

    즉, 정부가 9월 제출한 2011년도 예산안은 25조 적자로 편성되어 있지만, 이는 사실 ‘부자감세’를 원점으로 하면 사실상 균형재정에 가까운 내용이다(여기서는 20111년 예산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루지 않음). 따라서 국가 재정건전성의 주된 논의는 부자감세 정책의 철회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공기업과 정부부채 비율은 증가한 반면 민간기업의 부채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민간기업의 이자부 자산-부채 배율은 2008년 말 0.77배에서 2010년 6월 말 0.90배로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이는 ‘재정 지출과 공기업 사업발주로 민간부문의 빚이 공공부문으로 이전된 결과’라는 것이다.

       
      ▲ 필자

    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금융기관, 건설업체 등 민간자본은 천문학적인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은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들 자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실히 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추세인 ‘대기업-부자증세’ 기조의 세입구조를 전환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세입구조의 구조전환 없는 재정건전성 논쟁은 우리사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축소시키고 서민경제를 위축시킬 개연성이 충분히 가진다.

    G20의 결의와 2011년 예산안에서 밝히고 있는 재정적자 감축 일정은 달성이 의심되는 경제성장율 5%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경제가 목표 경제성장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정건전성’은 현실적으로 국가자산의 매각 이외에는 별 대안이 없어 보인다. 즉 이는 인천공항, 산업은행 등 우량 국가자산을 민간에게 매각하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프로그램의 재작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내년 25조를 포함하여 향후 예상되는 400조 가까운 국가부채는 채권 등을 통해 매년 20조가 넘는(연 5% 국채수익률 가정 시) 세금이 고스란히 금융자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가 공공이 만들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세입구조의 전환이 없다면 (미국과 같은) 금융자본을 위한 재정적자 구조가 형성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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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자기소개 – 유성재

    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국책연구소와 정부부처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했다. 뜻한 바 있어 유학을 갔으나 세상구경만 실컷하고 돌아왔다. 좋은 세상 만드는데 경제학이 일조하기를 바라나 맛있는 음식, 경치와 분위기 좋은 곳만 찾아다니는 한량임

    현) 마들연구소 연구기획실장
    현) 진보신당 비상임 정책위원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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