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책’이 돌아온다
        2010년 09월 29일 06: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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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안내양, 공돌이 공순이, 양은 도시락, 통금, 종점 다방 … 우리 곁에서 사라져간 것들. 그리고 사회과학 서점.

    여느 책방들처럼 책을 팔되, 오가는 이들끼리의 은밀한 눈빛이 교환되던 곳. ‘독재 타도’를 외치거나 끔찍한 노동조건을 폭로하는 유인물이 쌓여 있고, 지적재산권 따지지 않는 노래 테이프와 5월 광주의 비디오, 지하정치조직들의 이론기관지가 유통되던 곳. 지난 세기 말에는 대학가와 공단 들머리마다 들어앉아 있었지만, 지금은 다국적 커피숍 따위에 밀려 흔적 없이 사라진 그곳.

       
      ▲발터 벤야민의 사진과 문구로 장식한 레드북스의 간판 (사진=이재영)

    구닥다리 빨간 책 가게

    서대문역 근처 큰길가 2층에 그 ‘사회과학 서점’이 돌아온다. 진보신당과 에너지정치센터의 활동가인 최백순, 김현우씨가 준비해온 ‘레드북스’가 30일 개업한다. 독재도 사라지고, 사회주의 나라들도 사라진 이 ‘개명천지’ 세상에 사회과학 서점이라니. 하루빨리 ‘낡은 외투’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이때에 구닥다리 빨간책이라니.

    “지금 전국에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일곱 개 있어요. 저희가 여덟 번째가 되는 거죠. 사회운동 활동가들이나 진보적인 지식들에게 필요한 책을 파는 책방이예요. 그런 게 시대에도 좀 안 맞고 장사도 어렵겠지만, 저희로서는 운동으로서의 책방을 연 거예요.

    저희 둘이서는 ‘민중의 집’의 서점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둘이 갑갑한 운동 현실을 풀 활로를 찾던 중에 서대문역이 보이더라고요. 서대문역 근처에 20여 개 사회단체가 있었는데, 올 여름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연맹까지 이사 와서 서대문역이 한국 사회운동의 집적지나 운동권 생태계처럼 되더라고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놀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레드북스의 출발점이었어요. 좀 전에도 참교육학부모회에서 놀러 오셨더라고요. 헌책도 사가고, 자기네 간행물 가져다 놓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이리저리 끌어모은 돈 5000만 원이 종자돈이 됐지만, 장사 안 되면 그 정도 돈 까먹긴 일도 아니다. 어느 정도 벌어야 유지가 가능하냐고 물어도 두 사람은 눈만 굴린다. 주판알 굴리기보다는 몸 굴리는 일에 익숙한 두 사람에게는 아직 손익분기점 같은 개념이 자리잡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한참 채근하고서야 답이 돌아온다.

    종자돈 5천만원으로 시작

       
      ▲김현우(왼쪽) 최백순씨(사진=이재영) 

    “인문사회과학 책 팔아서 유지하기 어렵다는 건 저희도 알아요. 다른 수익모델을 찾아야죠. ‘민중의 집’이나 <레디앙>처럼 후원회원을 모아야죠. 책 매출이랑 후원회비 합쳐 월 500만 원이나 700만 원 정도 되면 될 거 같아요.”

    이 정도 계산에는 두 사람의 품삯이 빠져 있다. 총무의 임금과 건물임대료, 공과금으로 나갈 돈이 그 정도라는 얘기다. 현실이 비록 그러할지라도 꿈은 야무지게. 수익이 더 늘어나면 당분간은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란다.

    “저자와의 대화, 책장터, 사회단체 기획도서전, 예를 들어 이번 주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추천하는 도서 30선, 다음 주에는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추천하는 20선, 이런 걸 하려고 해요. 홍세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추천하는 명사 추천전 같은 것도 좋겠죠. 그리고 독서 동아리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출판기획에도 도전해 보려고요.

    저희 책방에는 새책과 헌책, 각종 음료, 운동권 팸플렛도 다 있어요. 후원회원에게는 음료 무료, 신간서적 10% 할인의 혜택이 주어집니다. ‘민중의 집’보다 회원 혜택이 더 많아요.”

    마지막 대목이 레드북스의 사업 포인트인 모양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공간은 사고 전변과 문화 혁명과 사회 변혁의 근거지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의 영광을 구가했던 중세 이스탄불의 카페들처럼, 부르주아 혁명기 유럽의 살롱들처럼, 돌아오라 사회과학 서점들이여. 그리하여 부활하라, 빨간책이여!

                                                      * * *

    개업식 : 30일 오후 7시
    오픈 기념 & 후원 일일주점 : 오후 5시~12시
    후원 : 우리은행 1002-340-775749 예금주 김현우
    연락 : 070-4156-4600

    http://redboo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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