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김정일이 내민 손 잡아줘야
    북, 후계체제와 외교전략 별개 문제
        2010년 09월 29일 11: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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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하루 앞둔 27일 김정은에게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한 데 이어, 28일 열린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한 것이다.

    ‘3대 세습’ 매진 여부 더 지켜봐야

    또한 후계 구도를 안착화하기 위해 장성택-김경희 부부(김정은의 고모부와 고모), 김정일 부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최룡해, 리용호 등에게 중책을 부여해, 3대 세습을 위한 친족-친위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

    이미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도 지적한 것처럼, 3대 세습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구축할 경우, 북한은 ‘김씨 왕국’이라는 외부의 부정적 인식은 더욱 고착화되고, 이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선순환적 관계 개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3대 세습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호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이 이처럼 무리수를 두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이 이미 70세에 가까운 노령에 접어들었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이유가 커 보인다. 또한 중국식의 집단지도체제 등 다른 권력구도 추진하거나 제3의 인물에게 권력 이양시 김정일 사후에 권력투쟁을 야기해 체제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대했던 만큼 외부와의 관계 개선과 경제난 해소가 이뤄지지 않은 것 역시 3대 세습을 선택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오로지 3대 세습으로 매진하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정은에게 중책을 부여해 본격적인 후계 수업에 나선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거꾸로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3대 세습과 함께,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유일지도체계를 ‘김정은+집단지도체제’로 완화시키는 방안, 노동당의 정상화와 국방위원회 강화를 통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 등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향후 북한의 선택에서 최대 변수는 김정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후계체제 환원론’을 경계한다

    북한이 3대 세습으로 가는 징후가 농후해지면서, 북한의 대외전략을 후계구도와 연계시켜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도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2008년 가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과 2009년 초부터 징후가 포착된 김정은 후계자 내정 움직임을 거치면서 북한의 모든 행태를 후계문제로 연결시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해져왔다.

    작년 4월 북한이 소형 인공위성인 광명성 2호(한-미-일은 이를 탄도미사일인 대포동 2호로 규정함)를 쏘았을 때에도,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에서 문제삼은 것에 반발해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김정은 후계구도 공고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핵무기를 물려지기로 한 만큼, 핵포기는 불가능해졌다’는 주장도 맹위를 떨쳤다.

    후계체제 환원론의 ‘백미’는 천암함 침몰을 김정은의 권력기반 강화와 연결시키는 주장에서 나왔다. 지난 5월 미국 정보기관은 김정은이 군심(軍心)을 얻어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놓이고자 김정일이 천안함 공격을 지시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분석은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을 핑퐁처럼 오가면서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김정은의 권력승계 기반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대세로 만들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원인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군사적으로 볼 때에도 천암한 공격 성격 성공 확률은 ‘복권 당첨’에 해당될 정도로 극히 가능성이 낮은 도박의 성격을 띤다. 또한 북한이 공격했다면 북한이 이를 김정은의 치적으로 삼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에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일관되게 강력 부인하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천안함 공격시 한반도 정세 불안 가중으로 북한 후계구도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이를 지시·주도했다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지도력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분석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최근 북한의 대화 공세와 유화책도 후계체제 구축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 지도부가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위해서는 대외 관계 개선 및 외부 지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천안함 침몰을 김정은 후계구도와 연결시켜 분석한 것과 정반대의 논리를 깔고 있다. 북한의 거의 모든 행태를 후계문제로 환원해 해석하다보니 이와 같은 자가당착이 나오는 셈이다. 

    3대 세습과 북한의 대외전략

    필자는 북한의 정책, 특히 대외 정책과 전략은 후계구도와 큰 관계가 없다고 본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대외 전략은 북미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를 적대관계에서 평화관계로 대체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으면서, 핵과 탄도미사일을 ‘억제용’과 ‘협상용’이라는 이중 용도로 사용해오는 고도의 일관성을 보여왔고, 이러한 전략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대화에는 대화로, 대결에는 대결로 상대한다’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특유의 벼랑끝 전술과 적극적인 대화 공세를 취사선택해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변수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있어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북한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급사라는 초유의 급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 그 해 10월 제네바 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절대권력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취약한 국가가 아니었고, 클린턴 행정부가 핵 협상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김일성의 죽음을 흡수통일의 기회로 인식한 김영삼 정부의 오판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을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려되는 것은 김정일의 건강과 김정은 후계 문제에 경도된 외부의 시선이 1990년대의 오판을 재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지만, 모든 것을 두 가지 문제로 환원시키고 여기서 더 나아가 ‘북한급변사태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지나치고 위험하다. 자칫 ‘작은 변화’로 끝날 수 있는 북한 내의 변화에 대해 외부에서 과잉 반응·대응할 경우 ‘큰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3대 세습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북한급변사태론’과 연계시켜 과잉 대응의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신중해져야 한다. 또한 한-미-일 3국이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여전히 권좌에는 김정일이 앉아 있으며, 그의 신변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권력투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난 20년간 유지되어온 북한의 대외전략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정일이 권좌에 있을 때, 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2012년 강성대국론’을 선포한 북한은 김일성의 유훈 관철을 핵심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의 유훈은 “인민들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세상”을 만들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며, “조선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 세 가지 북한의 목표는 한-미-일의 대북정책 목표와도 적지 않은 공통분모를 갖는다.

    ‘2012년 강성대국론’에 더해 3대 세습까지 나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 정권은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비록 3대 세습으로 정서적 거부감이 더해졌을 지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한반도의 다른 미래를 설계하는데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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