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도 ‘물그릇’을 허하라"
        2010년 09월 27일 1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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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은 오래간만에 ‘해군’ 출신으로서의 위치를 되찾아 학익진을 펼치셨다. 열흘에 가까운 황금 추석 연휴의 시작은 ‘기록적인 폭우’와 ‘침수 피해’의 언론 헤드라인과 함께 시작했다.

    하수관은 뚫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해 역류하기 시작했고,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은 베니치아 못지 않은 수상도시가 되어가는 뉴스 화면이 연일 보도되었다.

    특명, 반지하를 없애라!

    문제는 이후에 벌어진 다양한 논쟁(?)들이다. 이래서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야의 공방부터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상습 침수지역에는 반지하 건축을 규제한다고 한다)

    필자는 ‘하천복원’과 관련된 논란은 물론 ‘주택문제’와 관련된 논란 모두 이번 서울 폭우 침수 피해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논란은 뒤에 따로 언급하기로 하고, 후자의 이야기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반지하를 없애면 침수피해가 안생기나? 서울시민은 아예 1층 이상의 주거지에만 살도록 법령을 개정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주택문제를 해결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하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도권 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이 물에 잠겨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도권의 지하철을 전부 지상화 할껀가?

    하수관 정비만이 정답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국지성 집중 호우로 인한 문제의 해결책은 도시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구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당연히 하천 범람으로 인한 문제의 답은 4대강 삽질이 아닌 지천 정비와 천변저류지다.

    그렇다면 도시는? 서울같은 대도시의 실개천은 거의 복개되었거나 건천인 경우가 많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공간은 지면이 거의 대부분 불투수층이기 때문에 빗물이 땅속으로 흘러가 지하수가 되기 어렵다.

    하수도를 정비하여 크게 만들어 놓으면 해결될까? 하수도 정비는 예산이 많이 든다.(주민 민원이 많이 들어와 지자체에서 꺼리는 사업이 상수도와 하수도 정비사업이다) 예산을 들여 100년에 한번 내리는 폭우에 대비할 만큼의 하수도 정비를 해놓고 나면 200년만에 오는 폭우는? 300년만에 오는 폭우는? 그때마다 하수관을 정비하고 늘릴 것인가?

    물론 장기적으로는 청계천과 같은 ‘가로로 흐르는 분수’가 아니라 빗물이 하천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생태적 관점의 도시계획과 이를 기반으로 한 도심 하천 복원 계획이 필요하다.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옆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잠깐 보자.

    일본의 사례-흘려보내면 홍수, 모아두면 자원

    일본의 사례는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2년 도쿄 신주쿠구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있었다. 당시 보건소의 직원으로 현장에서 소독 지도를 하고 있던 무라세 마코토(토호대학 약학부 객원교수)는 ‘홍수를 어떻게든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문제의 본질이 도시의 ‘콘크리트, 아스팔트 정글화’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미 도시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상황 속에서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봉착했고, 그 결론은 단순했다. 비를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저장하는 것’이었다. 즉, 비를 일거에 하수도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하수가 역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를 탱크에 모아 둔다든지 지하에 침투시킨다든지 해서 비가 하수도를 흘러 내려가는 속도를 제어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도쿄 전체가 비를 모아 둔다면 어느 정도가 될까 계산해 보았다. 놀랍게도 연간 물 소비량인 약 20억 톤을 상회하는 약 25억 톤에 이르는 물을 저장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토쿄에서는 물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면 언제나 댐 건설을 요구하곤 했지만, 바로 코앞에서 방대한 수자원을 버려왔던 것이다. ‘흘려보내면 홍수, 모아두면 자원’이라는 단순한 진리였다. (‘일본 빗물네트워크회의 전국대회 – 후쿠오카’ 자료집 참조)

    남산 한옥마을의 사례

    이번 집중호우 당시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 설치된 빗물저류조가 청계천으로 흐르는 빗물을 저장해 청계천 범람을 막아 이 일대 비 피해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일보, 9월 27일자)

    서울 중구는 지난 2008년부터 서울시 재난관리기금 38억7,800만원을 지원받아 1년여 공사 끝에 빗물저금통을 설치했다.

    집중호우 시 저지대로 빠른 속도로 흘러 내려가는 많은 양의 빗물을 상류쪽에 일시 모았다가 조금씩 밑으로 내려 보내는 시설로 이 ‘남산골 한옥마을 빗물저류조’는 모두 6,978톤의 빗물을 담았다가 조금씩 방류함으로써 하류지역인 필동은 물론 청계천 주변 및 저지대의 침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중구는 2001년 집중호우 당시 청계천 복개구간의 하수관이 넘쳐 주변 일대가 물바다로 변했던 곳이다.

    빗물 조례는 왜 만들었나요

    서울시를 비롯하여 꽤 많은 지자체들은 ‘빗물이용에 관한 조례’를 가지고 있다. 조례의 내용은 단순하다. 빗물 이용시설을 장려하고 지자체는 이에 대한 예산 등을 적극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하면되지 않나? 이미 조례도 있는데 말이다.

    공공건물은 물론이고 대형건물과 신축건물에는 의무화하도록 하고 상습 침수지역 등을 선정하여 빗물저금통을 만들자. 점차 민간건물까지 확대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모아둔 빗물은 평상시에 조경이나 화장실, 혹은 청소용의 허드렛물로 사용하면 수도요금도 아낄 수 있다. 오세훈 시장님의 공약 ‘미세먼지 감소’를 위해 연일 도로를 누비는 청소차의 용수로 사용하면 안되나? 서울시는 청소차량의 청소용수로 톤당 1,200원의 물값을 지불하고 있다. 서울시 예산은 이런데서부터 조금이라도 아끼면 안될까?

    답도 해결도 ‘빗물’이다. -‘물그릇을 늘리면 홍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발생하는 주거지의 피해가 없게 하려면? 답은 단순하다. 물을 잘 흘려 내려보내게 하거나 물을 어딘가에 잠깐이라도 가두어 두면 된다.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 하수관의 정비보다는 우선 정부가 그리도 좋아하는 ‘물그릇’ 서울에 만들면 안될까? 물그릇은 왜 4대강에만 만드나?

    도시에도 만들자. ‘물그릇을 늘리면 홍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말은 이럴 때 옳다. 그 물그릇이 4대강에선 생명을 죽이는 물폭탄이 되지만 서울에선 물바다를 막는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다. 서울에 물그릇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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