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평등파 새로운 차원 소통 기회"
        2010년 09월 27일 01: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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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안면이 있던 한형식으로부터 『맑스주의 역사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나는 책 제목처럼 그저 대중적인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고 심상히 들어 넘겼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80년대 중반 맑스주의를 접하고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20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던 내게 많은 고민을 주게 하는 책이었다.

    주관적이고 실천적인 서평

       
      ▲ 책 표지

    그리고 나의 고민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동료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에 가능한 주관적이고 실천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스탈린에 대한 분석과 평가이다. 한형식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공포정치 등이 스탈린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사상이론적인 근원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 특히 소련의 사회적 고립과 임박한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와 사건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283~284쪽에 소개된 ‘아시아놈’과 관련된 일화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일화는 스탈린에 대한 한형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이다.

    내가 보기에 스탈린에 대한 위 평가는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다. 나는 한형식의 주장을 스탈린을 옹호하는 어떤 입장이라기보다는 당시 상황을 소개한 상식적인 주장으로 읽었다. 정작 흥미 있었던 점은 그러한 상식적인 주장이 왜 맑스주의 진영 내부로부터 왜곡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형식은 위 과정을 흥미있게 소개한다. 한형식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917년 10월 무장봉기로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다수당이 되는데 실패하자 제헌의회를 해산한다.

    이를 계기로 당시 독일 사민당의 이데올로그였던 카우츠키가 『프롤레타리아와 독재』라는 책을 통해 볼셰비키를 비난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관련된 레닌-카우츠키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논쟁이 ‘전체주의-민주주의’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스탈린과 스탈린주의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조건을 벗어나 신비화(악마화)되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신비화 또는 악마화

    결국 한형식은 신비화되었던 스탈린을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공간으로 불러내어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정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한형식의 위 책을 단순한 학술적인 작업이 아니라 실천적인 관점에서 독해하게 된 이유는 90년대 이후 좌파(80년대 초반 맑스주의가 진보진영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 자주파와 평등파로 분열된다. 여기서 좌파는 평등파 중 일부 진영을 의미한다) 진영이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시켰던 점과 최근 사민주의에 대한 과도한 주목 때문이다.

    나는 80년대 후반 이래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운동을 했다. 나는 북의 수령론이나 군사주의가 농민국가(맑스주의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의 역사적 한계의 산물이라고 보지, 절대악과 같은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한형식이 스탈린주의의 현실적이지만 불행한 선택을 소련의 고립과 히틀러의 침략 위험 때문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좌파 동지들은 이른바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어떤 괴물처럼 대하곤 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국가보안법과 반공주의에 기대어 관철(?)하려 한 점이다.

    후자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좌파 동지들이 많을 듯하여 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맑스주의는 어느 시점에 시민권을 얻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교수나 연구자의 신분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된 한국에서 현실 운동에 크게 개입하지는 않되 관념적으로는 과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몽상적인 교수들을 감옥에 보낼 이유는 별로 없다.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괴물로 보는 ‘동지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사회주의를 외치는 교수들은 버젓이 교직을 유지하면서도 범민련이나 한총련 등 자주파와 ‘다함께’가 감옥을 메웠던 이유이다.(나는 ‘다함께’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 또는 그들의 선배들이 감옥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에는 경외감을 갖고 있다)

    위 평가에 가슴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저명한 공안수들의 연행과 그들의 석방 이후 행적을 공부해 보기 바란다. 한국의 공안기관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그들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용케 구별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한국의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했던 노동자 출신의 혁명가가 어느 날부터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모호한 주장을 늘어놓고,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위험하지 않고 진보적인 매체에서는 환영하지만, 첨예한 사회경제적 갈등에서는 다소 빗나간 공간에서만 활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여지없이 공안기관과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교감이 묻어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의미 있게 노력했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 시점에서 공안기관, 국가보안법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칭 맑스주의자임을 자칭하며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하려는 태도에는 그것을 통해 공안기관과 국가보안법의 검열 과정을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참패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일심회 사건이나 민족문제 등에서 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파를 악마화하는 태도와 분당

    다음으로 사민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2007년 이후 역사적인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파적 갈등은 대체로 끝났다. 2007년 대선에서 100만 총궐기를 주장하고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내걸었던 민주노동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의회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반MB냐 독자후보냐의 전술적 대립보다 중요한 것은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민주노동당이 2012년 대선에서의 선거 전술을 중심으로 세상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한형식의 책을 옮기자면 마치 제2인터내셔널이 반전을 주장하고서는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태도를 바꾸었던 것처럼 말이다.

    평등파는 워낙 갈래가 많아 궤적을 추적하기 어렵지만 북유럽 사민주의를 금과옥조처럼 되뇌이는 모습에서 맑스의 자취를 찾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나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적 몰락 속에서 사민주의가 급부상하는 모습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서 의회주의, 합의제, 정당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복지국가 노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 급부상을 우려한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안정화나 호황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사민주의가 뿌리에서 자본주의 호황을 배경으로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점진적 개량을 주장한 사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든(보편적 복지, 혁신경제 따위로 보완, 치장하더라도) 사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현재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간과한 주장이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맑스의 자본론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의 경향이다.

    둘째는 사민주의가 의회주의, 정당 민주주의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만큼 2008년 이후 역동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촛불, 서거정국.6.2 지방선거에서의 민심 표출 등과 배치되어 있다.

    셋째는 비스마르크의 복지국가 노선이 독일 노동자계급의 분출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발상에서 발원했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노선은 보수 또는 보수-중도 정치 구조를 구조화하고 진보정치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민주의 또한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한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가치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대중적 진출이 가속화되는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는 사상-이론 체계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 만고불변 진리 아니다

    한형식의 위 책은 시종일관 맑스주의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입각하여 고찰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제 2인터내셔널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조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묵인한 점을 통렬하게 적고 있다.

    나는 2차 대전 이후 사민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공적을 평가해야 하는 것처럼 사민주의를 역사로부터 분리해 사민주의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그들이 했던 역사적 공과를 간과하려는 경향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최근 운위되고 있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론 등을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그밖에 한형식의 책은 여러 면에서 실천적인 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제 2인터내셔널이 맑스주의의 생명력을 거세하여 1차 대전 이후 파멸한 것처럼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체계화(교조화)가 소련 패망의 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등에 나오는 ‘반영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도식성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환기시켜 준다.

    둘째, 한형식은 맑스주의를 섣불리 체계화하려는 경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것이 경제적 토대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평등파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발원한 자유주의, 문화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내가 평등파 동지들에게 느꼈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내가 속했던 자주파에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의 폐해는 크지 않았다. 반면 실천과 의식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과학성을 경시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주파, 평등파 정견의 현대적 재구성

    그런 면에서 80년대 중후반 이후 진보진영을 양분했던 자주파, 평등파의 정견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맑스주의 역사를 뛰어나게 개괄한 것은 물론 다양한 실천적, 현재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진보운동사를 정리해 보고 진보운동이 선 입각점과 과제를 명확히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자주파 동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평등파 동지들에게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새로운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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