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2010년대 새로운 화두된다"
        2010년 09월 25일 10: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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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학자들이 대개 ‘거리’를 좋아합니다. 시사를 논하게 되면 온갖 개인적 호불호나 감정 등이 다 개입되지만, 약 30년 이상의 거리를 두면 어느 정도 감정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사학적 ‘중립성’ 확보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사학자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위험도’라는 문제도 가미됩니다.

    가령, 남한의 보수적 사학의 원조격인 두계 이병도 선생께서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리버럴이었으면서도 아주 골수의 반북파, 반공파이었습니다. 부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다 보니 ‘공산 치하’나 ‘공화국 치하’를 두려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재산과 신분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감만큼의 강력한 감정이 세상에 있습니까?

    ‘거리두기’의 관습을 깨고

    한데, 오늘은 비록 부르주아 자유민주주의 지향의 사학자라 해도 박헌영이나 체게바라를 원하기만 하면 꽤나 중립적으로, 감정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사자, 박제화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게 된 사자는 별로 무섭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거리’라는 게 사학자에게 아주 귀중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 이 관습을 깨고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시대, 즉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사상사적으로 사고해볼까 합니다. 그러한 시도를 또 해봐야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좌우’라는 축을 사용하자면, 지난 20년은 말그대로 하나의 ‘반동의 시대’였습니다. 해방 직후와 6.25 전쟁 때에 식민지 시대에 자라난 토착적 좌파가 남한에서도 (사실, 곧 북한에서도) 철저하게 학살된 이후로는 한국에서 ‘좌파’가 1980년대 중반쯤에 재정립될 때까지 약 30년이나 소요됐습니다. 즉, 이념계의 중심은 1953~1985년간 아주 서서히 "왼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죠.

    1950년대의 화두가 주로 ‘민주주의’ 정도였다면, 1960년대는 굴욕 외교 반대 속에서 ‘식민지 유산 청산’ 등 ‘민족적’ 문제들이 첨가됐으며, 1970년의 전태일 의거 이후에 ‘노동’ 문제가 재발견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에서 다시 한번 ‘사회주의’가 말해질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1990년대 초반의 일련의 사태들이 이념계의 중심축을 다시 한번 아주 급진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놓았습니다. 보통 형해화된 소련, 동구권, 북한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몰락 내지 위기를 주원인으로 거론하지만, 꼭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구 운동권 지도층의 체제 내 포섭

    한국의 세게체제에서의 위치가 급상승됨에 따라 남성, 고숙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현저히 상승되는 등 노동계급의 일부가 체제내화되어 노조관료의 일각이 보수화된 것도, 1987년 이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구 운동권의 지도층의 상당 부분을 변절시키면서 성공적으로 흡수, 활용한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부유해지고 복합화된 남한 사회의 포섭력, 흡수력이 강화돼 반체제적 움직임들이 탄력을 잃은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는 사상계의 중심축은 우향우를 거듭했습니다.

    ‘우향우’의 구체적인 방식은, 특정 지식인 그룹의 체제 내 포섭 방식에 따라 결정되어졌습니다. 부르주아 정당에 흡수된 구 운동권의 주도층 다수는, 대개 1950~1970년대 식의 ‘민주주의’ 논리를 부활시켜 거기에다 ‘시민’ 등 유행어 몇 개를 첨가시켜 ‘시민민주주의’ 발전을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땅 부자 1%가 전국 부동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5대 재벌의 총매출액이 이미 1994년에 국민총생산의 약 54%를 차지하는 나라, 즉 극소수가 절대 다수를 경제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초과독점의 나라에서 과연 ‘민주주의’ 자체가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박물관이나 대학부터 건설사와 이동통신업체까지 모든 것을 다 하나의 세습독재형 ‘초과 재벌’이 소유, 지배한다면, 청와대가 아무리 시민 운동가들의 완전한 차지가 되어도 결국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사회 법칙상) 재벌의 의지가 당연히 이길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르주아 정치판에 흡수된 구 운동권의 ‘작은 수령’은 이런 당연한 질문을 자기 자신들에게 던져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천문학적 자금이 사회의 판도를 결정하는 곳에서 일개 신화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본인들이 ‘벌거벗은 임금’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개혁’ 희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1990년대 초반부터 천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수입상과 고물상

    1980년대의 ‘지도자’급은 그 고귀한 몸둥이들을 주요 정당에 비싸게 팔았지만, 위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이념가’ 등은 대학 교직 진출에 성공하여 재벌 사회의 ‘지식 관리자’가 되지 못하는 이상 자신의 두뇌의 소출을 대중 교양서 출판 시장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장사 방식을 아주 거칠게 이분하자면 ‘수입상’과 ‘고물상’으로 나누어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구주 언어에 밝거나 약간 ‘개화파적’ 기질의 수입상들은 주로 ‘포스트모던’ 철학과 그 파생물들의 국내 수입 및 판매에 주력했습니다.

    ‘근대성의 내재된 규율성의 비판’ 정도면, 한 때에 1980년대의 ‘독점자본 반대’만큼이나 아찔하게 느껴졌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죠. ‘근대성의 내재된 규율성’을 비판하시는 선각자 분들은 기차를 안타나요?

    그 기차의 기관사가 규율성 타파의 의미에서 예컨대 자의적으로 10분, 20분 정도 연발한다면 과연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운이 좋으면 병원, 운이 나쁘면 무덤이죠. 원시 사회의 코끼리 집단 사냥부터 오늘날 기술사회까지 생산공정은 일정한 정도의 규율성을 늘 요구해왔습니다.

    일정 수준의 규율성이 없으면 사회적 생존이 불가능하죠. 물론 한국과 같은 최악의 병영사회에서는 규율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정말 필요했습니다. 한국 지배자들이 필요불가결의 규율성을 넘어 전 사회를 맹종의 피라미드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나 교묘하게도 많은 경우에는 ‘근대 비판자’들은 한국 자본주의적 근대의 최악의 규율주의적 산물인 군대를 주 타깃으로 삼는 양심적 병영거부운동 등에 다소 무관심했습니다. 군대 같은 재벌 독재의 유지에 긴요한 기관과 맞짱뜨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거둔요.

    2008년 세계 공황이 판을 바꿀 것

    ‘수입상’들이 자본도, 국가도 빠진 근대 비판에 몰두하는 사이에, ‘고물상’들은 국가권력의 무한한 강화를 꿈꾸었다가 실패한 정조 같은 반(半)독재자적 국왕들을 ‘계몽군주’로 만들거나, 외과가 거의 발전되지 않아 간단한 수술도 하지 못했던 전통 한의학을 ‘근대 의료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등 ‘전통’ 장사에 열을 올렸습니다.

    웃겨도 참 웃기는 일은, 지금 남한 인구 사이에 퇴계나 율곡, 다산의 가문들이 소유했던 노비들의 자손들이 그 세 명 사상가의 자손보다 더 많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퇴계, 율곡, 다산’을 이야기할 때 그 노비들의 참상이 아닌 그 세 명의 양반 노비주의 ‘위대한 담론’들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탈계급화된 의식이, 계급적 존재를 배반하는 장인데,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개혁’, ‘시민사회’, ‘근대성 비판’, ‘전통’의 판매가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져 ‘사회주의’와 같은 거북스러운 단어들은 한 때에 거의 다수의 기억을 벗어났지만, 2008년에 시작된 세계 공황은 이 판을 이제 곧 바꿀 것입니다.

    ‘개혁’을 백 번 외쳐도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부자들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부유세를 통해 몰수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거나, 대기업들에게 강제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정규직 증원을 명령하지 않는 이상 계속 심해져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근대성 비판은 이론적으로 다 재미있지만, 지금대로 간다면, 남미화돼가는 남한의 인구의 상당 부분은 대형병원이나 장거리 비행기와 같은 근대 산물들을 접근하기가 많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근대성 운운과 무관하게 돈이 없어서요.

    반동의 시대여, 안녕

    그리고 아무리 ‘진경시대’가 이태리 르네상스를 백배 초월했다고 과감하게 주장해도, 가난해지는 20~30대들이 어차피 예전만큼 교양서적을 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곧 맞이해야 할 시대는 다수의 빈곤화의 시대, 중산층이 소멸돼가는 사회에서의 극적인 갈등들의 심화의 시대,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성장 침체의 시대, 그리고 전세계적 자연재해와 자원전쟁, 각종 패권 갈등의 열전화 시대일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근본 문제는, ‘웰빙’도 ‘근대성 비판’도 아닌 단순한 다수의 집단 생존일 것이고, 그 생존의 방책은 사회가 전 사회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윤 추구가 없는 집산적 체제, 즉 사회주의일 것입니다. 물론 스탈린주의와 다른 민주적 사회주의 말씀입니다. 예상컨대, 바로 자본주의의 종언과 ‘자본주의 그 다음’의 문제는 2010년대의 새로운 화두로 돌아올 것입니다. 반동의 시대여, 안녕히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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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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