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우파, 너희들은 누구냐?
        2010년 09월 23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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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청년 보수’의 조직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바른생활대학생연합’, ‘한국대학생포럼’, ‘New 또.다.시 1020 보수성향연합’ 등 단체들이 올해 초를 전후해 창립을 선포했다. 이들은 준법과 안보를 강조하며 이른바 좌파 일색인 학생사회에서 ‘젊은 보수’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창립은 흥미롭긴 하지만 아주 새롭지는 않다. 청년보수단체의 창립 선언은 90년대 반(反)한총련 운동을 연상시킨다. 그 동안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갈등이 학생사회의 탈정치화를 배경으로 한다면, 청년보수단체들은 ‘보수’라는 이념적 지향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학생사회의 재정치화를 시도하려는 듯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피어났다.

       
      ▲사진=한국대학생포럼 홈페이지

    무산된 인터뷰

    이 ‘젊은 보수들’은 어째서 단체까지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들은 무엇을 ‘보수’라고 규정할까? 이들이 지향하는 보수적 가치는 기성단체의 가치와 얼마나 다를까?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넘어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래서 모 단체 회장과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인터뷰는 이뤄지지 못했다. 내부 회의를 거쳤는지 어쨌는지, ‘좌빨 언론’의 필진과 인터뷰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그렇다고 “해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대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의 창립 동기와 지향을 추론해 보는 수밖에. 잠깐 ‘New 또.다.시 1020 보수성향연합’(이하 ‘보수성향연합’)을 살펴보자. 07~09학번 대학생들이 주축인 보수성향연합은 2010년 9월 19일 현재 554명의 인터넷 카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2008년의 촛불집회가 불법성과 폭력성으로 변질된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촛불집회 당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집회에 다녀온 증거를 제출하면 수행평가 점수를 주는 걸 보며 비판의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은 이들이 언론에 가시화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보수성향연합 활동가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합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중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또, 보수성향연합 카페 대문에는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배너와 “New 또다시는 서울 G20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나름대로 단체가 어떤 지향을 품고 있는지 보여주려 하는 듯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을 빼면 남는 것은?

    젊은 보수의 세력화는 무엇을 뜻할까? 지금은 선언 단계에 불과하고, 참가자 수도 그다지 많지 않아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미 탈정치화된 학생사회에서 청년보수단체라는 기획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여기서, 이들 젊은 보수가 지향하는 ‘보수적 가치’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준법과 안보란 결국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는 모범생의 가치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늘 법을 어기고 안보를 경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들 단체가 내세우는 보수적 가치가 무척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보수청년단체들은 기성세력의 부정부패와 소통 부재를 비판한다. 또, 자신들이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너무 착하기만 하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을 빼고 남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보수주의에 보편적인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보수주의의 전형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곳 정도는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의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잠깐 인용하겠다.

    보수주의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해 있다. 물론 이는 개인적 기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사회적, 경제적 신분이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

    예컨대 노동자 등 하층계급의 갑작스러운 정치적 부상은 기존 사회질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몰고 올 수도 있는 사회적 격변, 법과 질서의 붕괴, 혹은 사회적 규범이나 신분질서의 붕괴 등은 ‘가진 자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한 것들이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변화가 몰고 올 불확실성, 즉 어떻게 될 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신과 거부감을 담고 있으며, 반대로 현재 편하고 익숙한 것에 대해 애정을 느낀다. 보수주의자들이 전통과 기존 제도를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청년 보수들에게 묻고 싶은 것

    한국의 보수주의는 봉건제와 귀족 계급이 식민 통치 과정을 거쳐 왜곡되고 분절되었다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위에 서술된 영국 보수주의보다 봉건제 없는 역사를 가진 미국 보수주의와 비슷한 경향을 가진다.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계급 구성까지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내 깜냥이 아니다. 단지, 지금 청년 보수들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이 추구하고 의지하는 보수적 가치란 결국 추상적인 진보 개념에 대한 카운터 이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처음부터 한국 보수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카운터 이념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레드 콤플렉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런데 지금 청년 보수들이 지지하는 이념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얼마만큼 맞아떨어지고 있는가?

    영국 보수당은 철저하게 계급적 이해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이들 젊은 보수들은 어떤 계급적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을까? 단순히 촛불에 대한, 조금 더 소급해 가자면 학생운동과 진보단체에 대한 반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는 기성세력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 레드 콤플렉스를 반복할 뿐이지 않을까? 가치도 지향도 모호한 이 단체들은 그저 정부기관이나 보수정당, 기업에 들어갈 스펙을 쌓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을 걷어두더라도, 모든 10, 20대가 진보적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사실 생활인 대부분은 보수적이기 마련이다. 보수청년단체의 조직화가 이들을 얼마나 흡수하고 우파로 이끌어갈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한 가지, 준법과 순수성이라는 ‘모범생의 정치’를 따라가는 한, 청년보수단체가 ‘새로운 보수’가 될 가능성은 멀어 보인다. 이건 진보단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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