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 이후, 또 다른 비극
    By 나난
        2010년 09월 24일 10: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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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 성공한 뒤, 권력이 이제 저항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 ‘가까워진 권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더불어 공산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20세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는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후마니타스)이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 책 표지.

    『한낮의 어둠』은 가장 정의롭고 민중적이고 혁명적인 사회를 함께 꿈꿨던 사람들이 그런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된 순간에 대면하게 되는 또 다른 비극을 다룬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혁명 이후의 상황뿐 아니라, 혁명적 동지애의 이상향처럼 여겨지는 중국혁명 또한 혁명이 성공한 뒤 유사한 딜레마를 겪어야 했다.

    이 책의 주인공 루바쇼프는 1938년 스탈린에게 숙청된 니콜라이 부하린을 모델로 하고 있다. 부하린은 러시아 혁명 이후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1927년에는 코민테른 의장을 역임했으나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인 1938년에 총살되었다.

    『한낮의 어둠』의 줄거리는 이렇다. 혁명 정부의 2인자였던 루바쇼프는 어느 날 반역과 최고 지도자 암살 모의 혐의로 체포된다. 그로부터 한 달여 동안 집요한 심문을 받는데, 심문은 옛 동지였던 이바노프, 혁명이 낳은 새로운 세대이자 냉정하고 이성적인 전형 글레트킨, 그리고 자기 자신과 혁명·대중·도덕·양심·권력·정치 등에 대해 벌이는 치열한 논쟁이다.

    글레트킨은 루바쇼프에게, (결백하더라도)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대중들이 당에 대한 반대파를 경멸할 수 있게 하는 것, 옳은 것은 보기 좋게 도금하고, 틀린 것을 검게 칠하라고, 자신을 희생해서 혁명을 지켜 내는 것이 당이 루바쇼프에게 요청하는 마지막 봉사라고 말한다. 루바쇼프는 고민한다. 침묵 속에서 죽을 것인가, 마지막까지 당에 봉사할 것인가.

    “어느 쪽이 더 명예로울 것인가? 침묵 속에 죽는 것인가, 아니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인가?”

    루바쇼프의 이 같은 고민은 혁명 이전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지만 혁명이 성공한 뒤 오히려 모든 것이 불분명해진 상황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조효제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진보개혁 진영에서 솔제니친은 많이 읽히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의 비판적 지성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솔제니친의 서거를 계기로 이제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지적 역량에 얼마만한 여유 공간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최근 어느 출판인으로부터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이런 것이 복합적인 현실 인식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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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아서 퀘슬러(Arthur Koestler, 1905~83)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고 에세이스트인 그는 1905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유대계 부모 아래 태어났다. 러시아혁명의 이념적 순수성과 정치적 비전에 동의했고, 그래서 초기에는 당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히틀러-스탈린 사이의 불가침조약(1939년)과 모스크바 재판을 겪으면서 쾨슬러는 1935년 이후 당과 결별,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작가로 활동한다. 『한낮의 어둠』은 바로 이 무렵에 있었던 모스크바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역자 – 문광훈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독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독문학)를 받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아도르노와 김우창의 예술문화론』을 포함 김우창론 3권이 있고, 한국 문학 쪽으로 『시의 희생자, 김수영』과 『정열의 수난 : 장정일론』이 있다. 미학 쪽으로 『숨은 조화』와 『교감』, 『렘브란트의 웃음』이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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