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대로면 강사=잡급직, 강의=불법
    처우개선보다 교원지위 회복 우선"
        2010년 09월 18일 06: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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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건국대 강사 한경선의 유서 중, 2008. 2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조 교수님을 처벌해주세요. … 조 교수와 쓴 모든 논문(대략 54권, 조 교수 제자 포함)은 제가 쓴 논문으로 이름만 들어갔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께, 한국 사회는 썩었습니다. 교수 한 마리(자리)가 1억 5000만, 3억 원이더군요. … 학생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여러분 성적이라도 처리하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 당신에게, 미안해.” – 조선대 강사 서정민의 유서 중, 2010. 5

       
      ▲3년째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농성 중인 김영곤(왼쪽), 김동애 강사 부부.(사진=이재영)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 근처에 낡고 옹색한 텐트 하나가 3년째 자리하고 있다. ‘총파업’이나 ‘정권퇴진’을 위해 가끔 세워졌다 이내 사라지는 대형 농성장이 아니다. 한 평짜리 등산 텐트에는 대학 강사인 김동애-김영곤 부부가 농성하고 있다. “이제 3년이 지났어요. 교원지위 회복될 때까지 계속 싸울 거예요. 복잡할 게 없어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의 본부장인 김동애 선생(전 한성대 대우교수)과 남편인 김영곤 선생(고려대 강사)은 일주일에 나흘 정도씩을 이 텐트에서 보낸다. 노숙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에 중풍이 오고 얼굴이 돌아가기도 했다.

    박정희 때 빼앗긴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 위해 3년째 농성

    두 사람이 이처럼 끈질기게 호소하고 있는 것은 대학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원래는 ‘교원’이었던 대학 강사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소임을 빼앗긴 것은 박정희 정권 때였다. 30년이 지났지만, 강사들의 비판적 역할 봉쇄라는 박정희의 의도는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강사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학 당국과 교수들이 두려워 ‘조선시대 종’처럼 지낸다고 한다.

    80년대 후반 서울대에서 강사노조가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부가 이들은 교원이 아니라 ‘일용 잡급직’이라는 유권해석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교육 과정 운용상 필요한 자,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된다.

    김동애 선생과 김영곤 선생은 강사의 열악한 조건이 우리 대학 교육 부실화의 원인이고,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이 우리 나라 대학을 지식사회에 맞는 창의적 교육의 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농성 1108일째인 17일 오전, 농성장 근처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는 주로 김동애 선생이 발언했으며, 김영곤 선생의 발언은 따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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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재영

    – 농성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 대학 강사들에게는 고등교육법상의 교원 지위가 없다. 1949년 교육법에는 대학 강사가 교원이었는데, 1977년 박정희 정권이 대학 강사의 교원 지위를 박탈했다.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 강사들의 교원 지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아주 간단한 요구를 갖고 농성하고 있다.

    – ‘교원 지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배를 타는 사람은 선원이고, 학생들 가르치는 사람은 교원이다. 헌법에 교원지위 법정주의라는 게 있고, 그것에 따라 가르치는 사람은 꼭 교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 강사는 교원이 아니다. 지금 법대로라면 강사가 가르치는 건 불법이다.

    – 대학 교원에도 여러 직급에 따라 급여가 다를 테고, 교원이 된다는 것은 신분이나 고용의 안정을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쉽게 말하면 ‘선생’으로 인정받고 그에 따르는 처우나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강의전담교수제’ 정부안은 대교협의 음모

    – 정부에서는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기간제 강의전담교수제’를 들고 나오며 입법 예고했는데?

    = 정부의 ‘기간제 강의전담교수제’안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5년까지만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5년 후에는 퇴직을 해야 한다.

    – 다른 비정규노동법에서처럼 일정 기간 후에 자동으로 정규직이 된다는 규정 같은 건 없나?

    = 그런 내용 전혀 없다. 강의전담교수제에는 굉장한 음모가 숨어 있다. 학생 몇 명당 정규직 교수 몇 명을 채워야 한다는 법정전임 기준이 있는데, 강의전담교수를 그 전임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비정규 교수는 교원이 아니니까 전임 기준에 포함될 수 없음에도 교과부가 임의로 전임으로 쳐줬는데, 이것을 합법화시켜주겠다는 개악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을 자르는 단초를 마련한 것처럼 강의전담교수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사립대들은 신임 교원 충원을 거의 이것으로 채울 것이다. 이제는 정규직 교수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교과부는 전임의 30%만 강의전담교수로 채우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대학들의 로비에 의해서 전부를 강의전담교수로 채우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이 요구해온 것은 강사들에게 교원지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는데, 정부는 대학들의 입장만을 대변하여 비정규직 교수를 양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대학이 재벌들의 직업훈련소가 되는 것이다.

    –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등이 교원지위를 인정치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성균관대 교무처장이 국회에 나와 하는 말이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못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단적립금이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다.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도 하고 펀드 투자도 할 정도다. 게다가 학술진흥재단에서 대학에 보조하는 돈이 3조5천억 원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 다음 변명이 “강사들에게 교원지위를 주는 것은 철밥통 7만 개를 만드는 거다. 강사들은 실력이 부족하고 자질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성균관대에서 받은 박사학위는 검증 안 된 박사학위라는 말이냐. 그리고 그 동안은 검증 안 된 사람들에게 절반의 강의를 맡겼다는 말이냐.

    이런저런 변명이 다 안 통하니 나중에 하는 말이 “이 사람들에게 교원지위를 주면 총장선거나 과회의에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대학이 시끄러워진다”고 실토하더라.

    비민주적 재벌 훈련소 만들려는 의도

    – 결국 대학 민주화에 대한 반대인가?

    = 그렇다.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빼앗은 박정희가 목표했던 것과 똑같이 우민화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내용을 사람들이 잘 모르느냐? 교회가 은폐돼 있는 것처럼 대학이 은폐돼 왔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숨겨 왔다. <조선일보> 회장은 연세대학교 재단 이사장이고, <동아일보>는 아시는대로 고려대고, <중앙일보>는 삼성이다.

    제가 이 싸움을 11년째 하고 있는데, <중앙일보>에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동아일보>에는 조선대 강사였던 서정민 박사가 자살했을 때 저를 취재해서 한 번 나왔는데, 강사료를 인하해서 등록금을 인하하겠다는 일부 강사들의 의견을 마치 선행인 것처럼 보도하는 내용이었다.

       
      ▲농성 텐트(사진=이재영) 

    –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은 강사 입장에서는 노동권이겠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수업권 문제일 것 같다. 그 외에도 학문의 발전이라든가, 자본 측의 ‘대학 경쟁력 강화’ 등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 1998년 이후에 10명의 강사가 자살했다. 2003년 목매 자살한 서울대 백준희 연구교수는 유서에서 생활 때문에 본인의 전공과는 관계없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008년 자살한 건국대 한경선 박사는 12학점 강의를 하기로 학교와 계약했는데, 학교에서는 학점당 2시간씩 주 24시간을 강의하라고 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렇게 못한다. 그 외에 교재 선택이라든가 학내활동도 자유롭게 못한다.

    조선대 서정민 박사는 10년 동안 교수가 되겠다는 꿈에 정규직 교수와 그 제자들의 석박사 논문을 54편이나 대필해줬다. 그 정규직 교수가 어디 학회장이던데, 서 박사가 실질적인 학회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연구를 하겠나.

    강의전담교수제를 만든다는 것은 정규직 교수가 되는 길이 영원히 닫힌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5년씩 강의를 하게 되는 사람들은 학교측의 무슨 얘기든 들어주게 될 수밖에 없다. 매년마다의 재계약을 학교가 다 가지게 되니, 부당한 처사에 학교에 따지는 사람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학원보다 많은 강의, 돈벌이 프로젝트, 그리고 논문 대필

    – 너무 오래 농성하셔서 두 분이 아프셨다던데?

    = 바깥 생활을 하다 보니 중풍과 구안괘사가 왔는데, 침 맞고 해서 다 나았다. 집회 같은 데 나갔을 때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빨리 돌아오는 식으로 조심한다.

    – 일주일에 며칠이나 농성하나?

    = 보통 4~5일 한다. 나머지는 다른 강사 분들과 대학생, 노조에서 돌아가면서 와서 농성한다.

    – 비정규교수노조 등과의 관계는 어떤가?

    = 우리의 농성은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것인데,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처우 개선에 집중하려고 한다. 대학 당국에서 강성인 강사를 내쫓거나 조합원 중 일부에게 전임을 주면서 노조를 와해시켜 왔다. 결국 비정규교수노조의 전신인 전국강사노조 때는 분회가 두 개밖에 안 남는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지난 대선 직전에 농성을 접자고 노조가 잘못된 결정을 하고 농성에서 이탈했다.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은 그런 기조에 반대했지만, 집행부는 투쟁 이탈을 고수했다. 학단협과 교수노조도 그에 동조했다. 그리고 민교협이 당시 비정규교수노조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 위원장을 민교협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 교수 외 학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니, 민교협이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그래도 가려서 해야 한다. 강사인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이 교수모임에 소속되는 것은 일종의 종속일 수도 있다. 그리고 노조 측은 “품위를 지켜라. 일인시위나 천막농성은 비정규교수에 맞지 않는 투쟁이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농성에 참여하는 강사 조합원들을 빼가기도 했다. 대학 측의 회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비정규교수노조 비판에 대해 노조의 입장을 같이 실으려 했으나, 연휴를 앞둔 탓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 편집자)

    – 강사 조합원들의 이해가 다양할 수 있다. 교원지위 회복도 있을 것이고, 처우개선도 있을 것이고, 교수가 되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욕구의 차이를 아우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 (김영곤) 강사는 노동자이면서 교육자이기도 하다. 저희의 요구는 정규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더라도 교원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은 교원이 된 다음에 싸워야 할 문제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은 외형적으로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기 때문에 비정규교수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표명하면서 우리의 주장과 다른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고, 이주호 장관의 입장과도 비슷한 것이다.

    교수 되는 사람 80%는 돈 바쳐

    – 많은 강사들이 교수가 되길 바랄 텐데, 우리 사회에서 교수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

       
      ▲ 사진=이재영

    = (김영곤) 전체 교수가 6만 5천 명 정도 되고, 1년에 2000명 정도를 새로 뽑는다. 그 중 80% 정도는 돈 내고 임용되는 것이고, 실력으로 교수 되는 경우는 소수다. 다들 이런 실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교수 되는 건 기대도 안 한다.

    – 그 정도로 심각한가?

    = 첫 번째는 학연이다. 학연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은 돈을 냈는지가 교수직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이런 것에 맞서 싸우려고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싸우다가는 그나마 강의조차도 못하게 되니까. 나중에 교수가 될 기회조차도 완전히 문이 닫히니까.

    (김영곤) 강사들은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다. 비판이 제거된 거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도 없다. 사회현실에 대해 발언하거나 교수와 다른 학문적 견해를 밝히면 잘린다. 어떠한 인문학적, 비판적 기능도 못하니 결국 재벌기업이 요구하는 기능인을 키워내는 역할밖에 못한다. 이렇게 키워진 대학생들이 지식사회에 대응할 수는 없다.

    보통의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대학 교육비고, 대학 교육은 가정의 장래 비전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엉망인 교육을 받아서는 졸업해봤자 변화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강사 문제를 풀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가?

    = 이제 3년이 지났다. 교원지위 회복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복잡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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