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 빼닮은 이명박 ‘문화’
        2010년 09월 16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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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별난 족속이다. 그들은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창조적 동물이다. 빵은 그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확실한 징표는 ‘문화’에 있다. 그것은 짐승과 구분되는 품격의 원천이다. 거기엔 인류 진화의 동력이 숨어 있다.

    작가, 예술인들이 존경받아야 할 까닭이다. 문화계 인사들을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야만이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강제로’ 해임됐다.

    그 과정을 더듬어본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군불’을 지핀다.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일부 기관장의 실명까지 들먹이며 자진 사퇴를 압박한다. 법이 보장한 임기를 한참 남겨 놓은 김 관장은 장관의 뜻을 거부한다. 장관은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비열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50대 장관은 때로는 반말로 칠순의 김 관장을 질책한다.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다. 김 관장은 그 모욕을 견뎌낸다. 장관은 집요하다. ‘현미경’을 동원해 미술관 운영상의 꼬투리를 찾는다. 작은 흠집을 빌미 삼아 끝내 ‘옷’을 벗긴다. 그러나 법원은 그 빌미를 ‘어거지’로 본다. 대법원이 이명박 정부의 ‘표적성 물갈이’를 위법이라고 인정한 첫 사례다.

       
      ▲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사진=미디어오늘/이치열 기자)

    저항의 글쓰기 운동

    ‘점령군 사령관’ 유인촌의 희생자는 많다. 대부분 진보 성향의 문화계 인사들이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김홍남 국립박물관장, 김철호 국립국악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물러났거나 해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들도 ‘폭력’을 경험했다. 지난 2월 한국의 대표적 작가들이 회원으로 몸담은 ‘작가회의’에 해괴한 공문이 도착했다. 문예진흥기금을 운용하는, 문화 예술 지원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낸 것이었다. “국고 보조금을 타려면 회원 작가들의 ‘시위불참확인서’를 제출하라.” 작가회의는 어안이 벙벙했다. 듣도 보도 못한 요구였다.

    작가들은 보조금을 포기했다. 보조금으로 발간해 오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는 무기한 정간하기로 했다. 알량한 국고보조금은 3400만 원이었다. 한 소설가가 운영하는 ‘작가 교실’에 대한 보조금의 절반 수준이다. 작가들의 집필실과 작가지망생을 위한 ‘창작교실’을 운영하는 이문열의 ‘부악문원’엔 올해 7000만 원이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반문화적 행정폭력에 맞서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저항의 글쓰기운동’을 펼쳐 이명박 정권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들은 이명박 정권의 ‘오염된 언어’에 주목한다.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국격’에 작가들은 실소를 흘린다. 정작 문화정책은 천박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무형의 정신적·철학적 가치에 대한 성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 작가들은 비판적 사유와 창조정신을 위협하는 MB정권의 반문화적 행태가 멈출 때까지 저항의 글쓰기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윤수 관장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쳐 해임되고 작가회의를 조롱한 문제의 문화예술위 전 위원장 김정헌씨를 만났다. 그는 1, 2심에서 잇달아 ‘해임 무효’ 해임 취소’판결을 얻어낸 후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집권자에겐 전리품이 필요했을 것이다.

    “코드 인사 이해한다. 그러나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순리다. 조폭적 방식은 문제다. 자존심을 짓밟는 모욕은 참을 수 없었다.”

    -문화계 ‘표적 물갈이’ 과정에서 진보진영 인사에 대한 원색적인 색깔 공세도 있었다.

    “대대적인 문화계 물갈이는 이명박 정권의 ‘실지 회복’ 의지와 ‘뉴라이트’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적 공세는 근거나 논리가 빈약했다. 예술가는 실력과 실험, 그리고 작품으로 경쟁해야 한다. 젊은이들을 오염시킨다는 게 명분 아닌 명분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불온’이나 ‘좌파’ 매도로 일관해서야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 김정헌 위원장 (사진=미디어오늘/이치열 기자)

    -좌우 갈등 양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술이란 끊임없이 변화·진화하는 유기적 생명체 같은 것이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좇는 것이 진보라면, 기존 가치 중심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 보수일 게다. 진보·보수의 공존과 균형은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2기 문화예술위는 김정헌 체제와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화부 지시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예술인은 자유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문화예술위원회도 ‘자율’의 원칙 위에서 독립된 기구다.”

    -공공기관의 선진화가 강조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MB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기관 선진화’는 재무·재정적 안정에 무게 중심이 있다. 위원회 설립 취지나 성격을 감안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재정’을 강조하면 예술가의 창조성과 실험정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화계에 침투한 경제논리

    문화계에 침투한 경제논리는 이명박 철학의 어두운 그림자다. 김윤수 현대미술관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공학박사 출신의 전문경영인이자 DJ정부에서 정통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미술관장으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정책에는 안성맞춤이다. 재정적 자립과 안정은 문화부 산하 기관의 중요한 화두인 터다. 경제논리는 문화와 예술인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족쇄다.

    문화는 자율이라는 토양 위에 피는 꽃이다. 이른바 문화 선진국의 문화정책을 지배하는 대원칙이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그 대원칙을 조폭적 방식으로 짓밟는 나라는 아직 문명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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