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디앙은 과연 진보적일까?"
        2010년 09월 15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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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라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있다. 우리 장모님만 보아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장모님은 요즘 김치를 담그시면 무조건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는 무조건 땅에 묻어가지고 숙성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김치냉장고가 있으니 세상이 정말 진보한 것 같기는하다. 안그러냐?’

    그러고보면 우리 장모님에게 진보란 인간의 고생을 조금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김치냉장고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아직도 그 무거운 삽을 들고 땅을 파고 김치를 묻어야 했을 테니까.

    물론 쓸데없는 삽질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 정도의 고생이야 뭐그리 고생스럽기야 하겠냐만, 김치를 담고 김치통에 넣어 냉장보관하는 것보다야 이쪽이 고생스러운 건 사실 아닌가? 만약 인간이 고생을 조금 덜하게 하는 것이 진보의 한 가지라면 우리는 질문을 하나 할 수 있다. 과연 우리의 진보는 진보적일까?

    시각장애인에게 레디앙이란?

    내가 여기 레디앙에 가끔 접속할 때마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걸보면 소위 진보적 매체라 불리는 레디앙은 어떤면에선 그리 진보적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발칙하게 들릴지 몰라도 발끈하진 마시라. 이제부터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다.

    필자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스크린 리더기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웹을 즐긴다. 스크린 리더기란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대신하여 화면에 나타난 텍스트들을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프로그램인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웹세상과 조우한다.

    기본적으로 키보드 조작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이 프로그램은 초기엔 단순히 화면상의 텍스트만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역할에 충실하였지만 점점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기술력이 발전해가면서 거의 모든 컴퓨터상의 제어들, 가령 버튼이나 동영상이나 플래쉬 등등을 인식하는 데까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스크린 리더기가 발전해가고 시각장애인들을 포함한 유저들의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웹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에서는 그에 맞춘 여러가지 대응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웹접근성 지침이라는 것이다.

    웹접근성 지침

    웹접근성 지침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웹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웹콘텐츠 제작방식을 정의한 것으로 웹콘텐츠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곳에서 접근성을 준수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웹접근성 지침은 첫 번째로 올바른 대체 텍스트를 제공할 것과 둘째로 배경 이미지가 의미를 가질 때 대체 콘텐츠를 제공할 것, 셋째로 동영상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자막 ,원고, 수화 등을 제공할 것 등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깜빡이는 효과에 대한 경고 및 회피수단을 제공할 것, 모든 제어를 키보드만으로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할 것, 반복되는 링크를 건너뛸 수 있는 링크 스킵 네비게이션을 제공할 것, 플래쉬나 액티브X 등의 부가 에플리케이션을 제공할 때 대체 텍스트나 접근성을 보장할 것 등등의 지침들로 이루워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웹접근성 지침들은 단순히 지침상으로만 기능하는 것에서 벗어나 법률적인 효력까지 얻게 되었다. 바로 2년 전부터 시행된 장애인 차별 금지법의 한 형태로 이 웹접근성 지침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이제 웹접근성이나 웹표준을 지키는 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라는 의미이다.

    이미 여러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 준수에 대한 광범위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이는 웹 접근성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하여 올해 상반기에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한 웹접근성 모니터링이 이루워졌었고,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선거후보들을 대상으로한 웹접근성 모니터링 결과를 수집해 발표하기도 했었다.

    btn_sc_ov.gif 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요구와 모니터링은 이제 공공기관을 비롯한 공적인 부분을 넘어 민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바로 얼마 전인 9월2일, 시각장애인들은 방송 3사(KBS, MBC, SBS)의 홈페이지 웹접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차별을 시정해줄 것을 촉구하는 집단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그들은 말한다. 비장애인과 마찮가지로 시각장애인도 스스로 방송국의 콘텐츠를 클릭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 하나는 이제 웹접근성이라는 것은 더이상 급진적인 요구가 아니라 상식적인 요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법률이란 것은 급진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하나 떠올릴 수 있다. 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웹접근성에 대한 상식적인 요구를 진보적인 곳에서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지금 레디앙은 웹접근성 문제에 대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있다. 이건 시각장애인으로서 레디앙에 느끼는 내 솔직한 불편함의 표현이다. 내가 스크린 리더기로 레디앙에 접속할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책으로 만들어 쌓아올린다면 아마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정에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레디앙 사이트 내에 있는 sec0.gif 나 sec1.gif 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tn_c.gif 나 btn_sc_ov.gif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떨 때에는 메인화면이나 팝업되는 창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버튼 목록을 불러오는 기능을 활성화 했을때 ‘이름없음’이라고 부르는 그 수많은 버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것은 혹시 요즘 진보정당 상황들에 무료함을 느끼고있는 나를 위해 준비한 레디앙의 새로운 게임 서비스는 아닐까? 이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 역시 웹접근성을 지켜야하는 것일테니까.

    레디앙의 기사들은 주로 텍스트 위주이고 그 텍스트에 링크가 많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어서 읽는데 큰 불편함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외의 콘텐츠들에서 느끼는 웹접근성에 대한 아쉬움은 ‘대중적 진보매체’라는 어떤 검색 엔진에서의 설명을 무색하게 한다.

    이 문제가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제인 것임을 생각해보면 더욱 실망스러운 게 사실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들보다 진보적 매체들은 여러가지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게 사실이니까.

    실제 웹접근성 문제라는 것이 아무런 투자나 인력없이 어느날 뚝딱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그런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웹접근성에 대한 요구가 더이상 진보적 주장이나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식과 법적인 문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진보매체들의 열악함은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사이트들과 웹콘텐츠 업체에서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 진보적 매체에서 지키지 않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바꿔말하면 열악한 환경이라는 얘기를 하기에는 ‘비겁한 변명입니다!!!’란 소리듣기 딱좋은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레디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세상은 웹접근성을 부수적으로 취해야할 옵션정도로 보고있지 않다. 당신이 글을 올릴 때, 당신이 기사를 적을 때, 당신이 웹콘텐츠를 업로딩할 때, 바로 그순간 너무 당연하게도 웹접근성은 보장되어야 마땅한 것이리라.

    이런 부분에서 보면 진보정당들의 홈페이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게시판에서의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편인데 아무 설명도없이 올라오는 웹자보들을 생각해보면 아예 동영상 게시물이 웹접근성을 준수해주길 바라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긴 이문제는 일반적인 홈페이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웹콘텐츠를 제공하는 쪽에서 웹접근성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그 콘텐츠를 이용하는 유저들이 웹접근성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니까.

    이것은 웹콘텐츠를 바라보는 유저들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바래야 할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을 바라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아니 그렇게 되기위해서라도 콘텐츠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웹접근성에 대해 유저들을 설득해야 한다. 적어도 진보정당들,혹은 진보적인 매체들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나서야하지 않을까?

    흔히 월드 와이드 웹 (World Wide Web)의 창조주라 불리우는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는 웹이란 ‘장애에 구애없이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 정의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손쉽게’라는 말에 따라 그간 다양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며 웹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웹을 넘어서 인간의 미래를 가늠하는 키워드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레디앙이 ‘진보’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단순히 ‘손쉽게’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위의 말에 덧붙혀 ‘웹콘텐츠를 제작할 때에는 장애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제작하여야 한다.’라 말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가 강조했던 것은 웹이 ‘모든 사람’과 ‘누구’에게나 손쉽게 접근할수 있는것이어야 한다라는 것일 게다. 특별히 창조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정도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치만 동의한다고해서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웹접근성의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절실한 문제이지만 그렇치않은 사람들에겐 문제거리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상식은 물론이고 진보에게 더욱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진보라는 이름은 이름없이 잊혀져가는 수많은 작은 문제들을 위해 언제나 그 이름을 빌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레디앙은 그 진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언론이다. ‘대중적 진보매체’인 레디앙이 ‘모든 사람’과 ‘누구’에게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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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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