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최종보고서, 회피 왜곡에 조작까지
        2010년 09월 15일 03:1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어뢰는 더욱 강력해졌는데 물기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어뢰 격침이라는 결론을 확고히 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증거의 빈약함이 289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정부가 꼬박 두 달이나 발간 일정을 미뤄가며 내놓은 천안함 최종보고서, 한마디로 실망이다.

    핵심 의문은 무시 또는 왜곡으로 슬쩍 비켜가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군사용어가 허장성세를 이루고 있다. 추정과 판단이 요구되는 부분에서는 아전인수가 판을 친다. 그렇게 뜸들였는데도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러한 평가가 과연 정치공세이고, 근거 없는 발목잡기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천안함 함미 부분 (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그동안 제기된 핵심 의문 중 하나는 ‘물기둥’이었다. 천안함 갑판 위 견시병조차 보지 못한 물기둥을 정부는 높이 100미터, 폭 20~30미터의 거대한 실체로 확언해왔다. 근거는 해안 초소에서 이를 봤다는 초병 두명의 진술이었다.

    그러나 언론3단체 검증위가 입수해 공개한 초병 진술서에는 섬광을 봤을 뿐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고 명확히 적혀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초병들이 섬광을 목격한 방향과 장소이다. 그들은 초소 북서쪽 두무진 돌출부에 가려진 섬광을 봤다고 진술서에 적었고 증언했다.

    어느 하나 해소되지 못한 핵심 의문점

    그런데 초병이 북서쪽에서 본 정체불명의 섬광은 남동쪽 폭발원점에서 치솟은 거대한 물기둥으로 둔갑되었다. 이를 두고 언론3단체 검증위는 ‘종로 살인사건에 동대문 살인목격자를 찾은 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진술은 최종보고서까지 살아남아 물기둥 증거로 채택되었다.

    이는 왜곡을 넘어 조작이다. 실제로 진술서에 명확히 적혀 있는 초병이 섬광을 본 방향, 즉 방위각의 수치를 280˚에서 270˚로 바꾸어놓기까지 했다. 물기둥을 살리기 위해 조작까지 감수하는 용기가 경이로울 뿐이다.

    또 하나의 핵심 의문은 ‘폭발원점의 위치’이다. 천안함은 폭발원점에서 북한 어뢰공격을 받아 1~2초 만에 두동강 났다고 했다. 이후 동력을 상실한 천안함은 3노트에 이르는 빠른 남동 조류를 따라 표류하다 침몰했다. 폭발 이후 표류와 침몰 과정이 TOD(열상감지장비) 영상에 담겨 있다. 이는 천안함이 TOD 초소로부터 어느 방향, 어느 거리에 위치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결정적 근거이다.

    특히 TOD 영상에 표출되는 방위각(TOD 카메라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각도)의 변화를 대입해, 천안함이 폭발 직후부터 어느 정도 이동해 침몰했는지를 계산해낼 수 있다. 미세한 측정오차가 있을지라도, 천안함사건의 주요 좌표(장소)는 반드시 이 계산에 부합해야 한다.

    합동조사단도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며 폭발부터 함미 침몰까지 약 7.5˚의 변화가 있다고 밝혔다(6월 29일 공개설명회). 7.5˚의 각도 변화를 지도에 대입하면 폭발원점과 함미침몰 해점은 500m 정도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한다.

    그러나 정부가 확고하게 특정해놓은 폭발원점과 함미침몰 해점 사이 거리는 200m에도 못 미친다. 아무리 오차를 고려해도 300m에 달하는 차이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차이가 좀 날 수도 있지 않나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폭발원점은 이번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근간이 되는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씨스템)와 지진파, 공중 음파로 특정했고, 함미침몰 해점은 실물을 발견한 뒤에 확인했다. 틀려서는 안되는 좌표이며, 만약 틀렸다면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폐기하고 시간, 장소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눈 질끈 감는다고 덮일 문제가 아닌데도 말이다.

    ‘스크루 변형’에 대한 분석도 기대 이하였다. 한 방향의 변형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관성력에 여전히 집착했다. 기존의 관성력 개념으로 설명이 안되자 이번에는 ‘충격관성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두 방향으로 휘어 S자가 되어버린 스크루 날개의 변형을 관성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심지어 씨뮬레이션 동영상은 스크루 회전방향이 실제와 반대로 나타난다. 씨뮬레이션 등 공들인 분석 내용을 보고서 본문은 물론이고 부록에도 싣지 못한 이유를 정부는 스스로 알고 있으리라 본다. 이미 사진을 통해 휘고, 깨지고, 찢기고, 긁힌 처참한 스크루의 모습이 낱낱이 공개되었는데도, 여전히 ‘휨 이외에 손상흔적이 없다’고 해야 하는 절박함만큼은 이해된다.

    이밖에 연어급 잠수정의 제원을 전혀 밝히지 않았고, 무기소개책자에 있다고 거짓말했던 어뢰 설계도의 출처, KNTDS 좌표 등 도무지 기밀보호의 실익이 짐작되지 않는 핵심 자료들을 꽁꽁 숨겨두고 있다. ‘너희들은 보여주는 것만 봐라’ 이런 식이다.

    허다한 자료 은폐와 아전인수

    보고서는 아전인수로 넘쳐난다. 부실한 내용을 무리하게 증거로 만드는 과정에서 아전인수가 발견된다. 대개의 경우, 필요조건이 되기도 어려운데 충분조건인 듯 우기고 있다. 논리학의 기본을 무시한 대표적 아전인수 사례는 아래와 같다.

    희생자와 생존자의 부상상태는 골절, 타박, 열창(裂創) 등이다. 보고서는 이를 버블제트 압력파의 증거라고 한다. 압력파의 가장 대표적인 부상은 고막 파열과 장기 파열 등인데 단 하나의 사례도 없다. ‘골절, 열창이면 어뢰공격이다’라는 명제는 당연히 성립될 수 없다.

    사건 원인과 관련한 생존자 증언은 다양하게 엇갈린다. 잘 모르겠다는 경우가 다수이며 어뢰를 언급한 이들도 대부분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사실을 인지한 뒤에야 어뢰를 의심했다고 증언했다. 사건 직후의 교신에서 ‘좌초다’ ‘조난당했다’ 등의 표현이 실제로 쓰였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보고서는 ‘생존자 다수가 침몰 원인을 어뢰로 판단’했다고 결론지었다.

    CCTV 화면 복원에 대해, 보고서는 ‘부분 복원’임을 밝혔다. 그리고 최종 촬영된 CCTV의 마지막 화면표시 시각은 21시 17분 03초였다고 한다. 사건 발생시점과 약 5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5분 가운데 1분은 ‘1분 후 저장되는 기기 특성’이고, 나머지 4분은 CCTV 시계 오차라고 설명했다.

    참으로 편리한 설명이다. 그러나 설치된 지 반년밖에 안된 군용 CCTV 6대가 한꺼번에 4분 이상 오차가 생긴다는 것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4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부분 복원’된 CCTV 화면만으로는 알 수 없으며, 복원을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또한 불분명하다.

    장황한 내용으로 오히려 자충수 둔 꼴

    범용(汎用)이어서 사실상 범인 특정에 쓰일 수 없는 폭약성분이 이번 보고서에서 부활했다. 우선 폭약성분은 천안함 함체와 해저에서만 검출되고, 어뢰 잔해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알루미늄 가루는 어뢰 잔해에 덕지덕지 들러붙었는데, 알루미늄과 함께 장착된 폭약은 쏙 빠졌다.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함체 등에서 검출된 폭약성분 중 대부분이 HMX인 점이 눈길을 끈다.

    HMX는 28개소에서 527.91ng(나노그램)이 검출된 반면 RDX는 6개소 70.59ng에 불과했다. RDX는 동·서방을 막론하고 사용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HMX는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베크만방식으로 생산되며 우리 군의 어뢰, 유도탄 등에 쓰인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그럼에도 함체 등에서 발견된 폭약성분이 어뢰격침의 증거로 버젓이 올라 있다. 아군 무기가 폭발했다는 근거라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뜸을 들일 대로 들인 보고서에 정부의 논거를 강화할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1번 표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론에 가장 부각된 논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번 표기와 흡착물질의 모순관계를 도외시한 채, 기존의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뢰추진체가 폭발 반동으로 급격히 밀렸든, 열이 전달될 수 없었든 ‘1번 표기가 남아 있다면, 알루미늄 산화물은 어떻게 어뢰추진체에 들러붙었을까’라는 의문에 ‘1번 표기는 타지 않는다’는 말만 강조한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어뢰의 폭발력이 TNT 기준 250kg에서 상향 조정되었다. 정부가 지목한 천안함 공격 어뢰는 북한의 CHT-02D이다. 정부가 밝힌 제원에 따르면 폭약량이 250kg이다. 함체 등에서 검출된 HMX와 RDX, TNT에 알루미늄까지 섞인 고성능 폭약이므로 TNT 기준으로는 줄잡아 400kg 정도 된다. 아무리 숫자가 같지만 고성능 폭약 250kg을 TNT 250kg으로 계속 주장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정부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시하며 슬쩍 상향 조종했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폭발력을 증강시키면 천안함사건 규명의 대전제인 지진파, 음파와 상충한다. 규모 1.5인 지진파로 측정한 폭발력은 TNT 150㎏ 안팎이며, 공중 음파로도 최대 260kg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TNT 250kg으로 하자니 어뢰 제원과 상충되고, 고성능 폭약 250kg으로 하자니 지진파 등과 충돌된다. 이래도 모순, 저래도 모순이니 여러 경우를 제시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겨우 새로운 내용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모순을 키웠다.

       
      ▲ 필자

    흡착물질 열처리 분석도 새롭다면 새롭겠지만, 진작 했어야 할 것이기도 하거니와, 공개가 아닌 독자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검증 대상으로 남는다.

    제대로 된 국정조사부터 받아야

    정부는 줄곧 국제조사단의 조사였음을 강조해왔다. 보고서 앞머리에 각국 대표 서명을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사단에 참여한 국가가 조사결과에 동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은 일이 불거졌다.

    스웨덴 조사단은 자신들이 참여한 부분만 동의함으로써 ‘북한어뢰 격침’이라는 보고서의 최종 결론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달 가까이 함께 조사활동을 벌이고, 이후에도 각종 정보를 교류한 이들조차 보증하지 못하는 결론을 어찌 국제사회에 내놓겠는가? 정부는 국정조사부터 달게 받으라.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