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를 '을'이라 부른다
    By 나난
        2010년 09월 14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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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재는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는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내게는 그림을 그리는 대학교 동창이 있다. 그를 ‘을’로 지칭하는 이유는 단지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의 실명이 ‘을’이어서도 아니다. 그의 삶 자체가 ‘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집이 부유하지 못했던 그는 내 자취방에 와서 대신 청소하고 설거지도 도맡아 해 주며 내게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남의 집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변머리와 넉살을 인정받아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학생운동마저도 우리 과대표로 혼자 나가 했었고 그래서인지 심지어 별명마저 과대표였다. (줄여서 꽈대)

    10년만에 만난 꽈대

    이 ‘을’이 바로 학습지의 그림을 그렸던 녀석이다.

    오랜 기간 만화계 주변을 기웃거리며 90년대 중반만 해도 나름 방귀냄새 풍겨준다는 잡지사에 연재 계약을 따내어 작품을 연재했는데, 전 국민적 폭풍인 IMF와 그것이 몰고 온 만화계 붕괴의 강풍에는 그 또한 무사하지 못하여 속절없는 실직자가 되었다.

    그나마 순정만화였다면 어찌 어찌 억척같이 빌붙어 먹고 살 수준은 되었으련만, 그마저도 장르가 달라 그만한 작가는 널린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 죄라면 죄였을까. 손톱만한 연재 원고료에도 불구하고 꿈을 가지고 나아가던 이 친구를 한 십년 정도 보지 못하다가 이번 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핑계 삼아 술 한 잔 대작하며 마주 앉았을 때에는 그 꽈대, 남의 집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하던 넉살좋은 내 친구 ‘꽈대’는 사라지고, ‘을’만이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기간 동안 그는 그림자가 되어 살았다. 모든 계약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을’이 되어 진행되었고, 과중한 업무와 수많은 리테이크(수정작업과 재작업)에 묻혀 살았다. 여기까지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어차피 기획자가 따로 있는 작가의 원고란 결국 능동적인 ‘갑’, 그러니까 즉 출판사/기획자의 능동에 끌려가는 형식이 당연할 테고, 수많았던 리테이크와 수정 주문은 설령 무리했지 몰라도 애 키우며 살아가는 가장으로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작은 난관들에 불과했을 테니까.

    하지만 바로 거기에 맹점이 있다는 게 이 친구가 지나가듯 이야기한 핵심이었다. 그렇게 두루 뭉뚱그려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거다. 하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실상 지금 내가 어슬렁거리는 일과 그리 무관하지도 않은 일이기에 이 친구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기도 했다.

    만화계의 붕괴는 그림으로서 먹고 살 수 있는 타 직종에 공급 초과 현상을 초래한다. 어차피 정규직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화가는 하나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 같은 의미에서 더 이상 만화를 그릴 수 없는 만화가라면 실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계의 붕괴와 학습지 시장

    이 수많은 실직자들은 그나마 가장 장르가 비슷했고 보수 또한 좋았던 일러스트레이션의 학습지 시장으로 밀려들어왔다. 이 경우 당연히 학습지 작가에 대한 대우가 점점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IMF 당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출판사들은 먼저 ‘저렴한 작가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대형 출판사가 아닌 중소규모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학습지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컷을 공급할 수밖에 없고,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다.

    과중한 업무에 지쳐 붓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경기가 느껴질 정도가 되면, 출판사는 자기 입장에서 보다 고급의 퀄리티, 그러니까 잘 그린 작품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히트한 다른 작품들을 곁눈질로 훔쳐보게 되는데 이 경우 다른 작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만’을 넘본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을’은 학습지 시장에서 돈을 벌고 그것을 밑천삼아 장가까지 들었던 녀석이었다. 부양가족이 있다 보니 입지가 좁아지고 꿈을 향해 달릴 기회가 적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창 시절의 넉살과 독기에 걸맞게 한 자루 붓에 걸었던 희망을 부여잡고 ‘갑’이 되어보기 위해 안달했다.

    그가 기획부터 시작하여 스토리, 그림까지 도맡았던 수학에 대한 학습지가 히트를 쳤고, 호평을 받아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는 그가 내내 꿈꾸어 왔던 것, 속칭 글로벌 히트작가가 된 것이다. 곧 아류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해가 되는 ‘그 짓꺼리’

    문제는 이 아류작들이 그의 그림체와 구도, 스토리 진행방법과 내용을 참조한 것이 아니라 아예 라이트박스나 트레이싱 페이퍼에 대고 베껴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 그림들이었다는 것이다.

    "새꺄, 비일비재한 거야. "

    소주잔을 채우며 ‘을’이 말했다.

    "알면서 뭘 그래. 만화계가 망하면 거기서 작가들만 짤려나가냐. 기획자, 편집자들 줄줄이 사표내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겠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면 도둑질만 하고 살아야지. 학습지 출판사 가 봤더니 알고 지내던 얼굴 꽤나 많이 있더라. 이 그림이 잘 나간다면 올해 상반기는 이걸로 가고, 저 그림이 잘나간다면 하반기는 저걸로 가 보자던 사람들이."

    대다수 학습지는 만화와 달리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것이 아니며, 독자 또한 작가를 믿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의 명성이나 제목을 보고 필요한 내용인지 판단하여 구매한다. 따라서 눈에 잘 띄는 그림의 스타일마저도 대동소이하게 베껴내는 경우가 허다하며, 잘 보이지 않는 아이콘같은 것들은 아예 다른 작품에서 떼어와 사용하는 경우도 흔해 터졌다.

    평소 알고 지내는 또 다른 학습지 작가, 초짜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대로 복사하듯 그려 달라는 편집자의 주문사항을 이야기하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던 것이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애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새끼들 그 짓거리,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냐……."

    관행으로 굳은 ‘저작권 무시 커넥션’

    당연하지만 출판사도 할 말은 있다. 전 국민이 금반지 팔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그때보다야 살짝 나아졌다지만 지금 또한 호황이라고 말할 수야 없는 처지에서 그들 역시 먹고 살아야 한다. 결국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건비, 그러니까 직원 봉급과 원고료뿐이다.

    하지만 정규직 직원의 최저임금이야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일정액 이하로는 손대지 못하고, 작가들의 원고료 역시 생계를 보장해 주지 못하면 결국 시장 파탄. 작가가 사라지면서 학습지 시장마저 흔들릴 수 있다.

    쌈지 아가리는 움켜잡아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시장은 키워내야 하는 이 웃기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작가들의 과중한 업무 밖에는 없는 셈이다. 그러니 작가 한 명 당 한정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창의력에서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출판사의 이미 발간이 되어 나온 작품이라도 죄다 끌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다음에 자신들의 회사 역시 그러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 터인지라 이 과정에서 동업자 정신이 발현되는 것이다. 저작권 논의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출판사의 횡포에 화를 내는 작가는 초짜 취급당하고 마는 현실. 어느 정도 그 시장에서 굴러본 작가라면 상황에 맞추어 무디어지고, 이 저작권 무시 커넥션이 당연시되어 관행으로 굳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뿐일까.

    심지어 몇몇 출판사는 스토리작가, 이를테면 경제학 교수나 수학 교사 등 전문직종의 감수 조차 건너뛰고 학습지의 스토리를 편집자와 작가가 알아서 진행한다. 전문가들이 이름만 빌려주고 나면 실제적인 감수 작업은 그림작가와 편집자 선에서 끝나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아는 ‘을’이라면 수학과는 거리가 먼 녀석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물어보았던 것이고, 답변 또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집 소주는 무척이나 썼다

    "내가 수학 잘 하냐고? 훗, 장난하냐. 이 책 저 책 끌어다 쓴 거지 알긴 개뿔. 그래도 나 혼자 다 했었기 때문에 쥐꼬리 좀 만졌었다."

    놈의 시각은 변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하는 술자리다보니 상호 협의된 주제 속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동창 상봉 자리나 마찬가지였는데, 대화 내내 내가 알고 있던 ‘꽈대’의 꿈은 사라지고 희망을 잃어가는 ‘을’의 몰골만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운하? 파도 좋아……, 나한테 일거리만 떨어지면 말야. 광우병? 알 바 아니고……, 통일? 하면 큰일나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안 돼. 여기서 더 밀리면 난 죽을거야 아마. "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기에 학창 시절 과대표처럼 혼자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통일 노래를 불렀던 그 입에서 나온 말이다. 동남아 인세를 받아 돈 좀 만졌다지만 그것도 몇 년 전 이야기이고, 요즘은 문화부에서 진행하는 예술 강사 시스템에 목을 맨 채 살아간다는 그 친구. “벌 수 있을 때 벌어놔야 하는데…….”를 입에 붙이고 사는 ‘을’을 보면서, 난 술값을 계산했다. 그 고기집의 소주는 무척이나 썼기 때문에 돈이 아까왔다.

    나도 쌈지는 틀어쥐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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