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이 직접 가꾸는 녹색공산주의
        2010년 09월 13일 03: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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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노선논쟁이 그야말로 뜨겁다. 초기에는 공학적 계산에 경도된 논의로서의 성격이 다분했는데, 점점 세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을 갖춘 주장이 더하고 있어 앞으로 더욱 주목된다. 이번에는 지면의 열기를 잠시 식히면서 농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유기농과 친환경농산물을 통한 도시-농촌의 연대를 모색하는 이야기다.

    녹색행성 <뷰티풀 그린>에 나온 CSA

    자연이 그야말로 수난을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녹색을 다룬 작품들이 주로 아픔이나 범죄를 통해 그려진다. 그에 비해 15년 전에 나온 <뷰티풀 그린>이라는 프랑스 영화는 녹색 공산주의를 전면에 배치한 영화지만, 외계행성과 텔레파시같은 공상과학의 코드도 등장하고, 지구의 문명과 공업화, 이혼문제까지 종횡으로 횡단하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다.

    프랑스의 코미디 감독 콜린 세로의 1996년 작인 이 영화의 제목 ‘뷰티풀 그린’은 주인공이 사는 녹색 행성으로, 산업화된 지구를 선사시대의 야만으로 부를 만큼 진화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척 봐도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만든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프랑스 특유의 개그 코드와, 산업화 후 3천 년이 지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간 뷰티풀 그린의 주민들의 눈에 비친 지구의 물질문명과 경제적 계약관계를 보다 보면 웃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 장면에 펼쳐지는 뷰티풀 그린 행성의 풍경은 자연림과 초원밖에 없는 자연 그대로의 녹색별 모습이다.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인트로에 아이들이 갓 수확된 가지각색 농작물을 마음껏 가져다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모습이 바로 개인간 지역순환형 농산물 교환 방식인 시민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에서 회원들이 지원하는 농가의 수확물을 분배하는 방식을 나타낸 것이다. 아직은 손가락에 꼽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CSA방식으로 운영되는 농가가 등장하고 있다.

    주부활동가들이 직접 만든 도-농 순환형 농업시스템

    화학농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던 60년대, 일본의 주부들은 장기적으로 먹거리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농가와 직접 결합해서 먹거리를 안전하게 공급받을 수 있게 만든 ‘테이케이’를 조직했다. CSA는 바로 이 ‘테이케이’를 원형으로 하는 도-농 순환형 농업시스템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지역사회 곳곳에 생협이나 지역주민을 위한 센터가 운영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테이케이를 만들었던 70대 노인들이 여전히 이러한 지역활동의 주요 활동가군이다.

       
      

    일본에서 테이케이가 조직되던 당시는 일본의 농촌이 점점 붕괴되는 시점이었다. 붕괴하던 농촌은 테이케이 조직 덕분에 되살아나게 되는데, 농가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도시의 소비자들도 유통 비용 없이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기업농이 융성하게 되는 1970년대 이후에도 농촌을 보존할 수 있었고, 유기농법 등의 기술개발을 통해 농산물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CSA는 유럽을 통해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1,300 곳 이상의 CSA 농장이 운영되고 있을만큼 성공한 도-농 순환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생협 가입자수 25만 명

    먹거리의 안정성과 국내의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시작됐던 CSA는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여기에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노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순히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은 대형 할인마트의 유기농 코너를 방문해도 괜찮겠지만 유기농산물이나 친환경농산물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CSA처럼 입체적으로 농가와 농촌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무래도 낫다.

    현재 한국의 생협조합원 수는 집계에 따라 25~35만 명으로 나타난다. 중복가입자를 고려해 25만 명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조합원의 가족을 4인으로 잡을 때 100만 명, 즉 전국민의 약 2%가 생협이 공급하는 유기농이나 친환경농작물을 섭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생협도 원래 농부가 도시에 사는 친척에게 수확한 작물을 보내주고, 농작물을 받은 친척들이 다시 농부를 금전적으로 보조하는 개인간 직접 교환 방식이었다. 이후 한동안 증가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유통에 집중했으나 최근 CSA 형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CSA 작동방식과 한국의 CSA 농장

    CSA는 주주회원들이 농부와 공동으로 농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농가는 기술과 노동력으로 참여하고, 주주회원들은 영농비용과 농가의 인건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멤버쉽을 얻는다. 이들은 어떤 수확물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며, 분배방법과 기타 제반사항을 공동으로 결정한다.

    보통 로컬푸드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CSA의 수확물 배송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주회원들이 직접 농장에 방문해서 수확된 농작물을 픽업하거나 직접 수확에 참여하는 방법인 농장픽업은 회원들이 농사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식이지만, 모든 회원들이 농장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각 가구가 농장까지 이동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탄소사용량과 비용이 더 드는 방식이다.

    특정 도시처럼 농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회원들이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는 회원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장소를 마련해서 공동으로 배송받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CSA 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교나 공공기관의 장소를 임대해서 농장의 수확물을 정기적으로 운반해두고, 정해진 날에 회원들이 방문해서 필요한 양의 농산물을 픽업해가는 방식이다.

    다른 회원을 위해 픽업하는 수확물의 양을 조절하는 등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과도한 양의 수확물을 가져가지 않으며, 배송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탁월한 방식이다. <뷰티풀 그린>의 인트로에 나온 장면과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일본처럼 택배시스템이 잘 팔달한 곳에서는 개별배송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CSA의 회원들은 농작물의 생산계획부터 수확 및 분배까지 농산물과 관련된 작업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농가나 수확물을 매개로 회원모임, 공동육아, 김장담그기 등의 회원활동을 벌인다. 뿐만 아니라 농장의 수확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미 레시피를 공유하거나 CSA의 확산을 위해 조사, 연구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최근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녹색교육의 한 형태로 회원가구의 어린이들이 씨뿌리기와 모종심기, 채소 수확에 참여하는 농가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CSA 형태로 농장을 운영하는 곳은 여성농민회의 ‘우리텃밭’(http://cafe.daum.net/jangbaguni)과 YMCA 등대생협의 살림 유기농 농장(http://cafe.daum.net/paldang40), 그리고 이천에 농장을 운영하는 콩세알 나눔마을(www.kong3al.net) 등이 있다. 운영방식에 따라 수확물의 분배 간격이나 회비 등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CSA는 그 자체로 공동활동의 모형이기도 하면서 환경친화적인 농산물을 생산하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붕괴해가는 농촌을 지키는 시스템으로 주목할 만한 농업형태이다. 빠른 조직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조직이 성공하면 녹색과 지역균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의 풀뿌리 단위로서 이상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로컬 푸드나 친환경 농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농촌과 농업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농촌의 친환경농업과 결합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과제인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주로 세제혜택과 연구개발 등의 육성정책에 힘이 몰리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도-농이 일상에서 연결되어 각 지역을 생태적으로 자극시키고, 이를 통해 도-농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찾아내 홍보하는 것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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