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당원 내버린 지도부 무책임해
    반신자유주의 아닌 '공생' 가치를
        2010년 09월 13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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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지도부의 무책임함

    젊은 세대의 새로운 조직화에 있어서 진보정당은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직화를 꼭 노조 결성 노력 등 노동운동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겐 노조 결성보다 정당 가입이 차라리 더 쉽다) 정당조직의 틀 내에서 새로운 조직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 2년간의 진보신당의 무책임함이다. 2008년 총선 이후의 ‘지못미’ 흐름과 촛불시위의 열기 속에서 진보신당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이 입당했다. 이로 인해, 진보신당은 단순히 옛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성격을 띠게 되었다.

    지금도 진보신당 당원의 절반 이상은 옛 민주노동당 출신이 아니다. 즉, 뭔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신입당원으로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이들을 완전히 방치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 신입 당원들을 진보적 정체성이 불분명한 자유주의자쯤으로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의 무책임함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유주의적 성향을 뛰어넘어 진보적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당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 아닌가?

    그럼에도 지난 2년간 당은 어떤 당내 교육이나 당내 언론 체계구축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창당된 지 2년이나 지났음에도 아무런 당내 교육 시스템이 없고, 당 기관지나 정책 이론지도 아예 없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많은 가능성을 지녔던 신입당원들은 그냥 당비만 내는 후원회원쯤으로 전락해갔다.

    당이 제대로 된 교육체계를 갖추고, 그 교육체계를 활용해서 정체성 교육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직결된 각종 상담교육 등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가령 각종 알바나 학원강사를 위한 노동법 교육을 하고, 그 교육을 받은 당원들이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여차저차한 문제가 있으면 당과 상담하라는 식이었다면?

    또는 당내 언론을 통해 최근의 경제흐름을 손쉽게 설명하면서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대처방법 등을 알려주었다면? 이런 활동들은 당원들의 귀속의식을 높일 뿐 아니라, 젊은 세대를 새롭게 조직화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지도부는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임시정당’이라는 이유로 이런 과제들을 완전히 내팽겨쳤다. 임시정당이건 뭐건, 당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놓고 이제 와서는 ‘임시정당이었으니 이제 새로운 길로 떠나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간 안 했던 것을 새로운 당에서는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내가 이른바 통합 내지 연합정치론자들에게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노동시간 문제 – 언제까지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해?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젊은 세대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주제를 잠깐 언급해보자. 반MB연대니 후보단일화 등등의 논란에 묻혀 전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내건 정책공약 중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제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한국의 과도한 노동시간에 대한 것이다. OECD 최장, 그것도 2위와의 격차가 한참 나는 최장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따지더라도 4~5위 내에 들어가는 장시간 노동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생산직이건 자영업자건 사무직이건 대부분의 한국인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일에 시달린다. 사무직이나 IT 종사자 등 많은 직종에서는 야근수당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가? 단언하건대, 이 문제는 향후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다.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는 진보정치에도 필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강조하지만, 현재와 같은 장시간 노동체제 하에서 지역에서의 주민참여란 시간적인 여유가 되는 중산층이나 지역유지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들이 실제로 지역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한, 지역 또한 중간계급 위주로 흘러갈 뿐 진보적 지역운동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현재의 수도권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화 모델은 지역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다. 그냥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거니와 몇 년 안에 주거지를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지역에 대한 무슨 귀속감이 있겠는가?

    직장 또한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끊임없이 직장을 옮겨다닌다. 그런 판에 직장 단위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라도 약간의 직장내 안정성은 보장되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노동자 중심의 조직화 방식이다.

    지역이나 직장이 아니라 직종 단위로 조직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IT노동자, 학원강사, 사회서비스노동자 등등 비슷한 직종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실질노동시간 단축은 고용을 확대함으로써(‘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덴마크 등 북구 모델의 핵심요소 중 하나이다) 청년실업 문제와 직결된다. 즉, 기존 취업자의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이고 이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보다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세대 간의 정의에도 부합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하고, 젊은 세대의 재생산이라는 우리 운동의 근본적인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을 강력하게 내걸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생의 가치를 이야기하자

    노동시간 단축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핵심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지금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기치로 내세워지는 ‘반신자유주의’라는 수사에 대해서도 필자는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신자유주의는 물론 우리가 견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는 이는 그간의 네거티브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초적이라도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기해야만 할 때가 되었다. 둘째는 이미 민주당 내의 상당수 유력정치인들조차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는 판에 그다지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몰락하고 있다. 그런 판에 반신자유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몇 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약간 ‘뒷북’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회복지’를 외치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또한, 박근혜조차 복지를 외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다지 차별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장기불황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복지는 앞으로 모든 정치세력의 슬로건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제기해야 할 것은 ‘평생동안 경쟁에 찌든 한국인의 피곤한 삶’ 그 자체이다.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즉 ‘공생’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삶,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을 서로 기억하고 지지해주는 사회, 젊은이들과 어르신들도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와 더불어 살기 등등.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말한다는 것만 확고히 전제된다면, 한 때 우리가 간직했던 유토피아의 이상 즉 꼬뮨에로의 지향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지 않을까?

    통합 논의는 상수가 아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지금과 같은 통합 논의는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통합이 되든 말든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 운동의 재생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이 통합 논의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필자는 통합에 대한 논의를 추진하는 것을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대책없이 반MB 논의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진보의 가치를 확실히 하는 진보대통합론이 차라리 낫다.

    물론 그것이 꼭 통합이 아니라 일상적인 연대와 선거연합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지 굳이 다시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어 또다시 당내에서 티격태격할 이유가 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필자가 옛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이유는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때문이 결코 아니다.

    서로 장기적인 전망이 다른 사람들끼리 하나의 당 내에서 끊임없이 소모적인 당내 정치에만 몰두하는 것보다는, 각자가 따로 살면서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당외정치 즉 대중사업을 열심히 해나가는 가운데 필요한 일은 서로 연대해서 함께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합논의 그 자체를 굳이 회피할 이유도 없다. 서로 이야기가 잘만 된다면 또다시 같이 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통합은 상대방이 있는 것이기에, 서로 이야기가 잘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즉, 통합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일종의 변수에 불과하다. 상황에 따른 변수에 불과한 것을 기본 상수로 미리 전제해 놓았다가, 뜻대로 잘 안 되면 그 때 가서 또다시 우왕좌왕할 것인가?

    일단은 독자적인 비전을 가지면서 당의 장기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자체역량 강화를 기본 상수로 놓고 이른바 통합이나 세력재편 논의는 상황에 따른 변수라고 생각해야만, 이후의 전개과정이 어떠하든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통합을 외치는 사람들은 통합 그 자체만이 관심사일 뿐 장기적인 역량강화에 대한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까지 나온 그 분들의 논리만 보아서는, 그 분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 운동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대의 계급정치역량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이라도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당장 뭘 해보겠다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 * *

    * 이 글은 필자가 한국노동운동연구소의 기관지인 ‘노동의 지평’에 기고한 내용을 확대 보완한 것입니다. 이 글에 이어,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향에 대한 제안을 담은 후속편이 추후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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