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정치론, 상층부 세력재편 논의뿐
    신분상승 차단, 진정한 계급사회 도래
        2010년 09월 12일 06: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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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야권정계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진보대통합정당론만이 아니라 ‘빅텐트’론(야권단일정당론), 제3지대 백지신당론 등등 온갖 구상들이 난무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있는 진보신당 또한 이와 관련된 당발전특위안이 당대회에서 일부 수정되어 통과되었으며, 이런저런 당내 논쟁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그리 흔쾌하지 않다. 이는 필자가 통합의 당위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강경파’라서가 아니다. 이런저런 통합 논의들 대부분이 뭔가 그럴 듯한 그림그리기에만 몰두할 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 민주노동당 시절에 우리는 왜 제대로 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실패했는지, 과연 이대로 갔을 때 우리 운동의 재생산이 계속 담보될 것인지, 우리는 어디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 진보신당 내의 내부 토론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앞으로 말할 필자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필자의 문제제기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기에, 간단히 이를 밝혀보고자 한다.

    진보신당 – ‘독자파’와 ‘통합파’의 대립?

    일단은 필자가 소속된 진보신당 내부의 논의 상황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현재의 진보신당 내부 논쟁은 ‘독자파’와 ‘통합파’의 대립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규정이다.

    이른바 ‘독자파’라고 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당위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연대의 필요성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반면 ‘통합파’라고 해서 당의 자체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과거는 따지지 말고 무조건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양쪽 모두 당의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일치하고 있으며 실제로 당대회에서 통과된 당발전특위안의 내용도 바로 이것이다.

    물론 어느 쪽에 보다 우선순위를 두는가라는 측면에서는 틀림없이 일정한 차이점이 있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자체역량 우선강화론’과 ‘연합정치 우선론’ 정도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엄밀하게 들어맞는 구분은 아니다.

    가령 필자는 위의 두 입장 중에서는 ‘자체역량 우선강화론’이라고 분류되겠지만, 필자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설사 통합이나 연합이 되더라도 진보정치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새로운 역량들이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기에 뭐가 더 우선인가의 차원이 전혀 아니다.

    통합 내지 연합정치론이 놓치고 있는 것

    필자가 이른바 통합 내지 연합정치론을 소리높여 외치는 사람들에게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다. 그분들의 주장에는 진보적 시민단체와 함께 해야 한다느니, 노무현 지지세력의 일부도 끌여들여야 한다느니, 한국사회를 보수-자유-진보의 삼자정립구도로 만들어야 한다느니 등등의 상층부 세력재편 논의가 중심일 뿐 기층의 노동자민중들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활동가들을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왜 그런 고민이 없느냐, 10만 노동자 입당운동이나 10만 명 세액공제 등등이 바로 그런 기층의 활력을 담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옛 민주노동당 시절에 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제대로 안 되었는지 전혀 돌이켜보지 않고 또다시 그때를 반복하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에 입당해서 당비 내고 선거 때 지지해주고 세액공제 조직해주고 그러면 노동자정치세력화가 되는 것인가? 그렇게 ‘돈만 내고 몸만 대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옛 민주노동당 시절에 이미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10만 입당운동이니 세액공제니 하는 방식들은 그 때의 실패를 더 큰 규모로 되풀이하겠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이런 주장의 더 큰 문제는, 이 방식은 기존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운동 중심의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조직노동운동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과연 우리 운동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그간의 투쟁 속에서 쟁취한 조직노동운동의 성과 및 역량은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하며, 조직노동운동 내에서도 많은 건강한 활동가들이 있음을 필자는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성과나 역량을 지키려고 애쓰고, 그들을 동원하는 것만으로 우리 운동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까? 오히려 가면 갈수록 조합원들은 보수화되고 우리 운동은 더 깊은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필자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우리 운동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재생산의 위기이다

    요즘은 누구나 위기를 말한다. 이른바 통합 내지 연합정치론자들의 가장 중요한 논거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보정치세력 전체가 쇠락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어떻게든 ‘세력’을 키워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위기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우리 운동은 아직도 ‘바닥’을 치지 않았으며 진정한 위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우리 운동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재생산의 위기이며, 기존의 활동가들이 활력을 잃어감에도 새로운 활동가들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50대 이상의 나이든 사람들만이 운동의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일본의 상황이 우리에게도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과연 있는가? (물론, 최근의 일본은 새로운 흐름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런 재생산의 위기가 과연 상층부의 세력재편을 통해 덩치를 키우기만 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일까?

    오히려, 통합 등 상층부의 세력재편을 통해 단기적으로 약간 세를 불릴 경우 그것에 안주해서 더 근본적인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위험성조차 있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글 앞부분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필자의 이런 생각이 통합이나 연합정치 자체를 아예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설사 통합이나 연합이 이루어지더라도, 이 문제 즉 재생산의 위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활동가들을 만들어내려는 집중적인 노력이 없으면 운동의 근본적인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왜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는가?

    재생산의 위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청년세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운동적인 관점이 아닌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이게 더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것은 왜 그동안 대다수의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바로 그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는가라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잘못된 학교 교육 때문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이를 조중동의 세뇌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근의 통합론자들은 진보정당이 그들이 기대할 만한 ‘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 또한 통합의 논거로 써먹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소수정당의 성장을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선거제도의 문제(결선투표 없는 소선거구제 및 불충분한 비례대표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요인들이 다 나름대로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으니, 그것은 바로 귀속적 계급의식의 문제이다. 귀속적 계급의식은 노동자라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비록 현재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이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고 믿는 한 제대로 된 계급의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별적 노력이 아닌 계급적 단결을 통해서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낄 때만이 진정한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우리 사회는 개별적인 신분상승이 가능한 사회였다. 본인이 아니면 본인의 자식이라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또는 운이 좋다면 상당한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이 가능했거니와, 설사 본인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이나 부동산, 증권 열풍도 이 문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또한 명절 때 친척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정치적 공간 중 하나가 명절이라는 공간이다).

    이런 신분상승의 경험들 속에서 사람들은 나도 또는 내 자식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거니와, 이렇게 될 경우 본인은 노동자라 하더라도 귀속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적인 계급의식을 갖게 되며 자신이 부자가 될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해줄 것 같은 보수정당들을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97년 이후로 한국사회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작동하지 않으며,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어떤 의미에선 이제 진정한 계급사회가 한국에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계급적 단결을 통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킬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만 한다면, 이제야말로 진보정치의 새로운 기반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면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나마 가진 쥐꼬리만한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려 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규직 노조의 보수화나 젊은이들의 스펙 경쟁 등이 바로 그러한 사례들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새로운 조직화로부터

    그러나 제대로 노력할 경우,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이다.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거니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진보정치의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

    그간의 진보정치의 주된 지지층이었던 조직노동운동은 이상에서 말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능동적인 진보정치의 주체가 되지 못했지만, 더 이상 개인적인 신분상승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 새로운 계급주체들은 보수정당에 그 어떤 기대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운동 또한 진전시킬 것이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사내하청 등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가령 대졸자들의 취업 직종 1위인 학원강사의 경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개인사업자(인적용역사업자)로 등록되어 4대보험이나 퇴직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 중 하나이다.

    혹자는 학원강사는 수입이 좋지 않으냐고 되물을지 모르나,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학원강사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동네보습학원 강사들은 박봉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 외에도 과반수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각종 알바 등 젊은이들과 비정규노동의 연결고리는 곳곳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보다 장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젊은 세대를 새롭게 조직화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상층부의 세력재편, 그것도 몇 년까지는 반드시 통합을 이루겠다는 식의 일정 박기 방식으로는 계급정치의 재활성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기존의 한정된 조직노동 자원을 쥐어짜는 10만 입당운동 등의 동원 전략을 시도하겠지만, 이건 설사 잘 된다 하더라도 우리 운동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계속)

                                                       * * *

    * 이 글은 필자가 한국노동운동연구소의 기관지인 ‘노동의 지평’에 기고한 내용을 확대 보완한 것입니다. 이 글에 이어,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향에 대한 제안을 담은 후속편이 추후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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