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신화다"
    2010년 09월 12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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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국 조정에서 또 난리가 한 번 났으니 재미있게 구경해봤습니다. 예조 판서 영감께서 자식을 잘못 기용했다가는 주상마마로부터 내침을 당한 모양입니다.

소위 ‘명문’ 학교를 나와도 절반 넘게 거의 1년 동안 변변한 직장을 찾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백수로 지내는, 날로 딱해지는 이 세상에서 귀족들끼리 고스톱을 짜고 치는 꼬라지는 아무래도 민란(?)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민심에 자극을 주니 조정에서 이렇게 빨리 조치한 모양입니다.

현대판 귀족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

뭐, 외무부의 ‘귀족성’이야 오늘 어제의 일도 아니니, 사실 유서가 깊고 잘 바뀌지 않는 분위기이겠지요. 지난 20년 동안은 중산층까지도 출입국이라는 권리를 누려왔지만, 1980년대 말까지는 자유로이 외국에 왕래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귀족 특권’에 가까웠습니다.

귀족이 아닌 몸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병영/군사기지를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란 공부를 아주 잘해서 관비유학생이 된 소수의 모범생,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한국 사회에서 질시, 모멸 당하는 입장이 된 극소수의 여성, 그리고 월남이나 중동 건설 현장에 집단으로 가는 노동자 정도이었습니다.건설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군사기지에서 사우디 건설 현장과 같은 작은 병영으로 갔다오는 셈이었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병영사회에서는 늘 ‘휴가’를 밖으로 갔다올 수 있는 외무부의 위치는 특별했으며 거기에 운좋게 들어온 상당수 기득권자들이 당연히(?) 그 위치를 세습화하려 애쓰곤 했죠. 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 일반의 시선이 많이 차단됐을 뿐이지 성골, 진골, 육두품들이 다시 생긴 건 꼭 오늘 어제의 일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체질적 특성일 뿐입니다.

그런데 외무부와 같은 ‘특수’ 부서에 대해서는 일반의 시선이 사실상 거의 차단돼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특채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는, 외무 내지 정보 계통의 관계자들이 실제로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설정하고 관리하는 세계의 다른 정부들과의 ‘관계’의 상태는 실제로는 어느 정도인지 웬만하면 내부 관계자나 정부 당로자, 소수 관변 학자 아닌 이상 아무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국민’이란 외무부나 국정원을 먹여주는 ‘세금’을 내지만, 그 세금이 무엇으로 어떻게 쓰이고 그 효과는 어떤지는, 그 아무도 납세자들에게 보고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됩니다. 대외 관게에서 ‘난리’가 나거나, 미국 외교 문서가 30여년만에 비밀해제돼 일부 공개되거나 이런 경우입니다(대한민국의 외교문서는 그처럼 일정기간 지나서 자동적으로 공람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베일에 쌓인 외교-정보통 활동

예컨대 지난 번에 리비아와의 관계에서 ‘불’이 나 신성불가침의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문제됐을 때에 한국 외교, 정보 관계자들이 사실상 이스라엘과 미국을 위해서 행동해왔다는 주장이 발표됐습니다.

계속 가난해지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백성이 내는 세금을 받아 먹는 리비아 주재 공무원들이 타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느라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험에 노출시켰다면 이는 배임행위에 가깝겠지만, 그 때는 제 기억으로는 그 누구도 납세자들에게 그 어떤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하지 않았죠.

양민들이 입역(入役)하고 세미(稅米)를 납부하면 그만이지 국정을 논할 자격은 어찌 있겠습니까? 좌우간, 그러한 난리가 나야 우리는 진실의 단편이라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아주, 아주 부분적으로요.

인터넷으로는 만가지 정보가 만인의 공유가 됐다고 하지만, 납세자와 외무의 괴리는 그렇다고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알짜의 의미 있는 정보는 인터넷에서 공개될 리는 만무하고, 인터넷에서 공개되는 정보를 다 모아봐야 대한민국 국제 관계의 실질적인 상태의 윤곽만을 아주 희미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인민일보>와 <광명일보>, <해방군보> 등 중국 관변 매체들을 정독해보고 그 쪽 국제 전략 관련 학술지를 읽고 사회과학원 등 관련 기관의 관련 학자들의 발표문들을 다 찾아 읽으면 중국 측이 이명박 정권의 친미주의에 상당한 불만을 품으면서도 주로 무역, 투자 관계를 고려해서 대응의 수위를 치밀하게 조절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거기까지죠.

그것만 가지고는 우리 주상마마와 그 예조판서 영감의 업적을 평가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관변 매체 (www.vz.ru나 www.expert.ru 등 류의 관계, 재계 매체라든가 극동연구소 학술지 등등)를 정독하고 외무 관련자들의 개인 블로그까지 읽어도, 이명박 정권의 장기성에 의문을 품고 근본적으로 이 정권을 불신하면서 ‘다음’을 기다린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역시 거기까지뿐입니다.

부르즈아 민주주의의 현실

그 다음 이야기는, 행여나 30~40년 후에 공개되거나, 아예 묻혀질 가능성은 큽니다. 그러니까 외교란 교회나 사찰의 내부 생활만큼이나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돼 있는 것이죠. 교회나 사찰은 좋아하는 사람만 먹여살리지만, 외교 관련자들은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먹여주어야 한다는 점만은 차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민주 국가’에서 산다고 확신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대외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논할 것도 없고 그 정책에 대한 정보 접근권조차도 완전히 박탈 당하는 것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을 ‘독재’라고 많이들 깔보지만, 사실 외무/외교에 대한 일반인의 정보력 내지 영향력은 대한민국이나 북, 중, 러 등 대륙 국가들이나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미국이나 노르웨이라고 해서 실제로 또한 별로 차이 없을 것이고요. 노르웨이 외교 관련자들이 희대의 독재 국가 투르크메니스탄에 석유 및 가스 개발 문제로 최근 접근했을 때에 일반 노르웨이인들의 여론에 관심이라도 기울였나요?

뭐, 노르웨이 외무부가 누구를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일반인들이 그리 잘 아는 것 같지도 않고 알 위치에도 있지는 않죠. 이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민주’라고 하지만, ‘민’이 ‘주인’이 된 적도 없고 될 일도 없습니다. 주인들이 실제로 뭘 어떻게 하는지도 알 자격도 없고요.

그 다음 번에 그 어떤 다음의 트로츠키가 혁명의 ‘외무 인민위원’이 되어서 여태까지의 모든 비밀조약들을 다 모조리 발표할 때까지요. 단, 그러한 일이 세계사에서 너무나 드물게 일어나는 것만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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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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