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반공주의에 반대한다”
    2010년 09월 11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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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개되고 있는 김규항과 진중권 사이의 논쟁은 이념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의 진로에 대한 제안들로서의 의미가 크다. 두 사람이 각자의 지면 칼럼에서 서로에 대한 비판을 한 차례 주고받은 이후 논쟁은 진보신당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레디앙>이 이 논쟁의 당사자인 김규항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규항은 “진중권 같은 자유주의적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으로 보기 어려운 것을 진보정당에게 강요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이 커지면 문제로 삼아야 한다”면서 “여러 좌파 전체를 부인하는, (진중권 주장의) 해악이 어느 선을 넘어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진중권의 해악이 선을 넘었다”

진중권을 ‘자유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김규항은 “그를 좌파라고 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의 좌파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식의 극단적 표현을 일관되게 해왔고, 갈수록 그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규항은 “‘닭짓’이니 ‘너 나가라’라는 식의 얘기는 절대 해선 안 된다. … 의견이 차이가 있어도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김규항은 진보신당의 진로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규항은 “심상정의 구상에는 민주당 좌파까지 포함되는 거 같은데, 과거에도 통추나 재야연합 등 비슷한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결국은 자유주의 정치에 포섭되는 과정”이라면서 “심상정 정도 인물이라면 민주당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고 심상정 전 대표를 비판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과의 인터뷰는 9일 오후 서울 성산동의 커피숍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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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상황이 심각해서 쓴 것

– 논객들의 실명 논쟁이 오랜만이다. 그 내용이나 전개가 어떻든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흥미롭다. 본인은 어떻게 느끼나?

= 제가 논객처럼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는 제 의견을 밝히는 글을 쓰는 정도였지, 실제 의견이 오가는 논쟁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논쟁에 임하게 된 건 진보신당의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서 이 정도면 좌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이다. 그래서 <한겨레>에 진보신당의 지방선거운동 결과를 다룬 ‘오류와 희망’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이 진중권씨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닌데, 그 글에 ‘진중권씨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적의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이 있어서 진중권씨가 거기에 대응한 거고, 저도 이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 진중권이 왜 ‘자유주의자’냐?

=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진중권씨는 모욕을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진보신당에도 자유주의 경향의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노힘’ 성향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저 사람 왜 저기 있지? 민주당이나 국참당에 있으면 더 좋겠는데’라고 보이는 사람들도 진보신당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성향 자체가 비난거리는 아니다. 자유롭게 입당하고 탈당할 수 있으니, 그런 경향 사람들이 진보신당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재단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으로 보기 어려운 것을 진보정당에게 강요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이 커지면 문제로 삼아야 한다.

이건 진보정당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 어디나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민주당에, 한나라당에 더 어울리는 성향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거나 영향력이 크다면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진보 아닌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 ‘자유주의’라면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거나 자유권적 시민권에 대한 옹호 등 여러 정의를 할 수 있겠는데, 진중권씨는 자본의 규제를 주장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 사람을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 아니냐?

= 한국의 현실 맥락에서 그런 규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에게나 좌파에게나 공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을 기준으로 말해보자. 반이명박에만 올인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이명박은 물론 민주당이나 국참당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동시에 비판하고 견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가 자유주의자고 후자가 좌파다.

좌파는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김대중 정권으로 바뀌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반이명박의 성과가 민주당이나 국참당, 김대중-노무현 세력에게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진중권씨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민주당 계열과의 투쟁을 앞장서서 격렬히 했다. 진중권의 천성이 어떠하다는 것이 아니라면, 앞서 말한 실천적 구분으로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실천 활동은 오히려 ‘좌파’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

= 중요한 건 어느 당적인가, 남의 당과의 세력 싸움을 얼마나 격렬히 했는가가 아니라 정체성이다. 전반적 흐름으로 보면, 진중권은 점점 우경화되고 있다. 내가 그를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하는 건 실은 그 스스로 자신을 매우 실천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자로 규정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근래 몇 해 동안의 활동은 그 대상이 거의 전적으로 극우 세력에 한정되어 있다.

물론 한 좌파 개인이 극우세력 비판과 자유주의 비판을 적정 비율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를 좌파라고 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의 좌파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식의 극단적 표현을 일관되게 해왔고, 갈수록 그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뺀 거의 모든 좌파들을 모조리 ‘닭짓’하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람을 좌파로 봐야 하나?

사회주의, 폐기 아니라 새로운 상 만들어야

– 그런 것은 이념적 파시즘이나 이념적 에고이스트에 가까운 거 아니냐?

= 진중권씨 스스로 ‘개인적으로 리버럴하다’거나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바란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자유주의적 좌파’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과는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바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부인한다. 조갑제나 지만원이나 이명박만 욕하고 조롱하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가?

이를테면 진중권 씨는 ‘지금 어느 시댄데 맑스 얘기냐’라든가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자계급’이라든가 ‘폐기된 사회주의’ 같은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그건 나는 좌파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거듭하는 것과 같다.

맑스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맑스를 어떻게 달라진 현실에서 읽고 실천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계급이 사라졌다고 말할 게 아니라 계급의 변화한 양상과 자본의 계급 통합 전략에 맞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주의 개념 자체를 부인할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좌파다.

사회주의가 뭔가? 무슨 본래부터 고유한 개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노력 아닌가? 그러니 사회주의를 부인하면 더 이상 좌파라고 할 이유가 없다. 자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러려면 그냥 복지에 관심이 많은 근사한 자유주의자로 살면 된다. 그게 본인에게나 사회에게나 훨씬 낫다.

진중권 해악 선을 넘어서

– 진보신당의 이념이나 진로를 둘러싼 ‘자유주의자’들의 영향력, 진중권의 ‘전진’에 대한 비판 등이 염려된다는 말인 것 같다.

= ‘전진’과 진보신당에 합류하지 않은 여러 좌파 전체를 부인하는, 그런 해악이 어느 선을 넘어선 것 같다. 제 주장은 ‘진중권이 자유주의자’라는 규정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한겨레21> 설문에선가도 내가 진중권보다 오히려 더 개인의 자유에 대한 태도가 강한 사람으로 나왔던데, 나는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갖는가에 대해 거의 완전한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그를 굳이 자유주의자라고 한 건, 그를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자유주의적 경향, 혹은 반좌파적 경향이 진보신당과 좌파 전체에 해악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이틀 사이 일은 아니지만 이젠 공식적인 논의가 필요한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진중권씨는 ‘전진’더러 당에서 나가라고 했는데, 거꾸로 진중권씨가 당에서 나가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 전혀 그렇지 않다. 정상적으로 토론하자는 것이다. ‘닭짓’이니 ‘너 나가라’라는 식의 얘기는 절대 해선 안 된다. 진중권 씨는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이 모욕적이라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유주의적 상식도 못 가진 사람이다.

그런 태도는 극우에게서나 볼 수 있다. 극우가 왜 극우인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의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에 극우 아닌가. 의견이 차이가 있어도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해야 한다.

– 토론을 봉쇄한 것이 진중권씨의 가장 큰 잘못이라는 말이냐?

= 그렇다. 진중권이 폐기되어야 할 80년대 박제라고 말하는 전진은 진중권씨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식적으로 논란을 한 적도 없다. 그 역시 한 의견이라 받아들인 거 아닌가. 그런데 달라진 사회에서 가장 세련된 좌파를 자처하는 진중권 씨가 도리어 그렇다는 게 말이 되는가.

80년대 사회주의 정파들끼리 삭막하고 과격한 논쟁을 했지만, 대중을 상대로 ‘저것들은 폐기돼야 하는 인간들이야’라고는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가 진중권한테 ‘반공주의’라는 과한 표현까지 쓴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넓은 의미의 좌파적 경향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 이상 조갑제 같은 사람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조갑제 씨가 말하면 젊은 사람들 다 웃는다. 오늘의 반공주의는 유시민이나 문성근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비현실적인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에 의해서다. 하물며 진보정당의 당적을 가진 사람이 ‘사회주의’니 ‘계급’ 같은 기본적인 모토 자체를 폐기된 것처럼 말하면 세상에 그런 효과적인 반공주의적 활동이 어디 있나.

젊은 사람들이 ‘계급’이니 ‘사회주의’에 매력 없어 하는 것은 전세계적 흐름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족보 없이 냉소적이다. 그런 말을 상상하는 싹조차 싸그리 잘라버리고 있다. 노무현이나 유시민이 좌파 역할을 하는 한국이다. 그런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한국의, 족보 없는 냉소주의

– 주대환씨가 사민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데, 이런 것은 진중권씨와 비슷하다. 주대환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럴 수 있다. 그분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한, 좀 더 시대에 맞고 현실적인 나름의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에 비해 진중권의 결론은 결국 자유주의다. 진중권은 좌파적인 가치나 지향을 거의 전적으로 탈각하고 냉소하고 있다.

– 이 논쟁이 진보신당과 좌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본인이 생각하는 ‘좌파’란 무엇인가?

= 어떤 분들은 저를 ‘전진’보다 더 왼쪽에 있는 그룹의 강고한 일원이라 생각하는데, 오해다. 예전에 ‘노힘’의 회원이었지만, 그 강령이나 노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지하가 아니라 대중과의 접촉면을 갖고 활동하고 있고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전진’ 회원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노힘’의 선배들보다는 진보신당에 한석호나 이장규나 장석준을 만났을 때 더 편안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자본은 아주 손쉬운 좌파 고사 전략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가치와 그 가치의 불행한 사례인 현실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런 시도 자체가 실은 어리석고 나쁜 것이라는 생각만 유포하면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에 대한 상상력 자체를 차단한다. 좌파라는 사람이 그런 자본의 전략에 맞서진 못할 망정 모범을 보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보신당 사람들 만나면 편하다

우리는 자본이 그런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주의적 가치와 현실 사회주의를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의 양식이라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구좌파로서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라 현실과 미래를 조망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아집에 찬 태도에 비판적인 것이다. 저는 노힘이나 전진의 입장에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진중권 씨 정도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한 범좌파의 기본적 가치를 가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좌파가 왜 다 같아야 하나. 어떤 사람들은 근본적 변화를 위해 백 년의 목표를 두고 활동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5년 안에 의회에서 뭔가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 다 필요하다. 진중권 씨가 후자를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그의 자유지만 문제는 그가 전자의 존재 가치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 가치의 실현이 어렵다고 가치 자체를 버리지는 말자는 주장인가?

= 그렇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치를 폐기하려면 굳이 좌파일 필요가 없다. 좀 더 실현가능한 데 집중해서, 민주당이나 국참당에 가서 복지를 조금 더 늘린다거나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 아닌가.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기본 지향까지 포기한다면 굳이 좌파의 일원으로 남아있는 게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진중권씨가 ‘당적’을 빼고 유시민씨나 문성근씨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회주의자나 사민주의자나 구체적 실천 형태는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지향은 같은 거다.

좌파그룹들 활동 답답하지만, 대중성 갖도록 도와야

– 좌파적 가치를 존중하자고 주장하는데, 진보신당 외에 좌파 블록들의 실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하다. 기본적인 가치 외에 대중들에게 소구하는 방식 등의 실천은 많이 낡았다는 느낌이다. 대중과 완전히 차단돼 있다. 이런 점에서는 진중권씨의 판단이나 정서와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파의 일원이라면 그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도와야 한다.

그들이 대중적이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대중적 소구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낡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세련되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진중권 씨는 대중들을 향해 그들을 망신을 주고 조롱한다. 실제보다 더 과장해서 말이다.

그들이 비록 실천적으로 미미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가치 지향들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들이 낡은 생각으로 지금 당장 국가사회주의를 실현할 능력이라도 있다면 그들의 폐해를 경계해야겠지만, 그들은 국가를 접수하긴커녕 그들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치와 지향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 이번 논쟁에서 진중권씨가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김규항이 진보정치 실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 그런 소릴 자꾸 하던데 몹시 민망하다. 그럼 나도 “네가 촛불시위할 때 고래식구들과 전세에서 월세로 나앉으면서 교육운동했다”고 말해야 하나. ‘나 할 때 넌 뭐 했느냐?’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성인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민망하다. 활동의 양으로 따지더라도 진보신당에는 10년, 20년 이상 인생을 헌신한 사람들이 허다한데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가.

심상정 구상, 자유주의에 포섭될 것

– 요즘 여러 가지 연합론이 나오고 있다. 김기식 문성근의 빅텐트론, 심상정의 진보통합론, 김세균의 진보연합론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진보신당의 진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

= 문성근과 김기식의 주장은 새로운 것 같지만, 뭔 얘긴지 뻔히 보이는 주장이다. 그들은 반이명박 정서와 노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대중적 슬픔에 편승하는 것 말고는 자신들이 창조한 가치가 전혀 없다. 이명박을 불러들인 죄과, 대중들이 오죽하면 ‘진보고 민주고 다 싫고 이제 먹고나 살자’는 식으로 나오게 됐는지에 대해 좀 쑥스러워 한다거나 해야 하는데, 일고의 반성의 기미도 없다. 주장하기 전에 반성부터 할 일이다.

심상정의 구상에는 민주당 좌파까지 포함되는 거 같은데, 과거에도 통추나 재야연합 등 비슷한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결국은 자유주의 정치에 포섭되는 과정이다. 헤게모니를 가지면 좋겠지만, 힘이 모자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정체성이라도 지켜야 한다. 헤게모니는 꿈도 못 꾸고 정체성은 내주는 연합은 별 논의의 가치가 없는 거 같다. 심상정 정도 인물이라면 민주당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김세균 교수 등 진보교수연구자모임의 진보대연합 제안은 논의 가치가 충분하다. 저는 진보신당만의 강고한 정체성을 주장하거나 하지 않는다. 강기갑이나 이정희가 지나치게 민주당에 가까워서 위험하기는 한데, 그 정도는 민노당 내부에서 토론하고 정리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대중성과 대중성 강박은 다르다

– 앞으로 진보신당이 어떻게 해나가야 하겠나?

= 진보신당은 대중의 호의와 지지를 자신들에게 끌어오는 게 아니라 모조리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몰아주고 있다. 당의 유력자들이 대중적 명망성을 가지고는 있는데, 그 명망성이라는 것이 ‘반이명박’ 투쟁을 통해 확립된 것이고, 자유주의 세력과 변별성을 확보하는 데는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정치적 성과를 바치게 되고 있다.

촛불투쟁 때부터 지금까지 민주당 계열에 대한 견제를 하지 않은 것도 진보신당이 어려워진 이유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실정으로 인해 자유주의와는 다른 진보정당의 변별력을 보여줄 호기가 왔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

노회찬과 심상정에 대한 대중들의 정치적 신망은 한국 정치인 중 최고인데, 왜 고작 국회의원도 못되는가. 심상정에 대한 노인층의 지지도 대단하더라. 그런데도 고생하고 있다. 왜 진보신당을 찍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 노회찬은 줄창 오세훈 욕만 하더라. 결국 한명숙을 도운 꼴만 됐다.

대중성과 대중성 강박은 다르다. 잘못된 대중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중성은 얻었지만, 진보정당에게 유의미한 대중성은 아니다. 고생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퍼주는 대중성일 뿐이다. 심상정이 퇴임한 노무현과 FTA를 두고 논쟁하면서 차별성이 부각됐을 때 진보신당의 지지도가 높았다고 알고 있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이유를, 굳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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