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환과 이지상, 왜 청계천에?
    By 나난
        2010년 09월 10일 08: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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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걔더러 계속 서 있으라 그러세요.” 약속시간에 늦으면 앞에 서고 있는 분이 그 시간만큼 더 서야 한다는 재촉에 느긋한 대답이 돌아온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능청을 떤 대답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만일’의 주인공 가수 안치환이다.

    버들다리에서 전태일다리로

    교대시간 3분 전에 도착한 그는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정각을 가리킬 때야 피켓을 이어 받았다. 안치환에게 피켓을 넘겨주자마자 “날도 더운데 쟤 피켓 들 동안 우리는 다방 가서 시원한 냉커피나 마시고 오자” 며 1분의 에누리도 없이 교대해준 데 작은 복수를 날린 주인공은 그의 친구 포크가수 이지상이다.

    햇볕이 긴 팔 옷을 뚫고 살을 따갑게 만들 정도로 무더운 날,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서울시 공식 명칭은 버들다리)에서 두 친구의 작은 실랑이 덕에 웃음이 터졌다.

       
      ▲지난 8월 26일부터 전태일 동상이 세워진 청계천 6가 버들다리에서 ‘전태일다리’로 명칭 변경을 위한 국민캠페인이 진행됐다.(사진=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지난 9월 6일,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태일다리에 섰다.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만들자’는 캠페인에 동참한 것이다. 하루 8명이 릴레이로 1인 캠페인을 벌이는 행사에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들 모두 선뜻 동참해 주었다.

    포크가수 이지상이 4시부터 5시까지 서고, 안치환은 바로 그 뒤를 이어받아 5시부터 6시까지 그날 캠페인의 마지막 주자로 전태일 동상 옆을 지켰다.

    (이 캠페인은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가 ‘808행동’으로 이름 붙인 행사로 80일 동안 매일 8명이 참여한다는 뜻이다)

    둘은 요새 말로 절친이다. 같은 나이, 같은 직업, 같은 취미, 같은 동네… 안치환의 매니저 표현에 따르면 “절친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춘” 사이라고 한다.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로

    80년대 뜨거운 청춘을 전공과 관계없는 ‘노래’와 함께 보냈고, 지금도 가수를 업으로 삼고 있으며, 둘 다 일주일에 한차례 이상은 꼬박 공을 차는 축구 마니아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때론 시대를 읽고, 때론 시대를 거스르는 감성의 결까지 닮았다. 그리고 둘 다 싱어 송 라이터다.

    안치환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가수였다. 솔로로 나선 후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당당하게’ 등을 히트시키며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가 되었다. 대중가수가 되었다고 해서 그를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노래’에서 ‘산업’으로 바뀌면서 그처럼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이돌’ 들에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하던 대로 콘서트를 하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 프로그램에 가끔 출연도 하면서 가수로 산다.

    열린음악회 같은 큰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촛불집회처럼 다른 성격의 큰 무대에 서기도 한다. 대중가수이지만 촛불집회 같은 설만한 무대에는 또 어김없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는 그처럼, 그가 부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관제행사와 촛불집회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국민애창곡이기도 하다.

    이지상은 시대의 사명을 온 몸에 짊어진 이름의 노래패 ‘조국과 청춘’의 가수였다. 한 때 운동권의 애창곡이었던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 을 만든 사람. 세상이 혁명과 반혁명만으로 가득 찼던 시절. 혁명에는 목숨을 바치는 결기만이, 혁명의 적들에게는 불타는 적개심만이 허락됐던 그 시대에 말랑말랑한 연애담을 표현한 그 노래는 파격이었다.

    혁명시대의 말랑한 연애 노래

    여성의 주체성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혁명의 기운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비판을 받았던 노래라고 들었지만, 나는 귀동냥으로 들은 그런 사연들을 흘리면서 그 노래를 곧잘 흥얼거렸다. 운동가요 가운데 드물게 경쾌하고 입에 감기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 이지상이라는 걸 알았을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혁명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에도 ‘사랑’을 놓지 않았던 가수였으니. 그는 변하지 않았구나.

    이지상은 요즘 주말마다 라디오방송을 진행한다.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나지막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삶과 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방송 제목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포크가수인 그는 방송이 없는 날에는 주로 평화와 인권, 과거청산을 얘기하는 무대에 기타를 들고 선다. 그리고 계속 노래를 만든다. 이상하게 통속적인 노랫말도 그가 부르면 포크가 된다.

       
      ▲ ‘전태일다리’명칭 변경 캠페인에 참여한 안치환와 이지상.(사진=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피켓을 들고 전태일 동상 곁에 서서 그는 어제 다녀온 두리반(홍대역 근처 철거반대 싸움이 진행 중인 건물) 후원의 밤에 대해 얘기했다. 투쟁의 현장으로 보기엔 사뭇 낯선 풍경들을 접했는데, 그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보기 좋더라며,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피켓을 들고 서 있는 자신을 가리키며)이 편하다고 한다.

    캠페인을 마친 그와 함께 태일다리 바로 옆 명보다방에 갔다. 40년도 더 전에 전태일이 다니던 다방이다. 안에 들어서자 하릴없는 낮 시간 시장바닥의 무료함과 끈적함이, 오래되고 낡은 곳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와 함께 몸에 감겨왔다. 이지상은 이 다방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했다. 전태일은 여기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전태일이 다니던  그 다방에서

    풀빵 값도 없던 시절에 커피 값을 써가며 어떤 작당을 벌였을까? 아메리카노가 아닌 달달한 다방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문화노동자를 착취하는 현실을 성토하다, 전태일의 꿈을 얘기하다, 옛 다방의 분위기에 취했다.

    저녁 6시, 그날 치 캠페인이 모두 끝나고 안치환, 이지상과 함께 청계천을 걸었다. 이지상이 아시아 최고의 시장인 광장시장에 가자고 부추겼다. 먹을거리와 삶의 냄새로 가득한 시장을 향해 걸으면서 이 길을 수도 없이 걸었을 전태일을 얘기했다. 근사하다. 이지상, 안치환과 전태일이 다니던 명보다방을 가고, 그가 걸었던 청계천을 걸으며 전태일을 얘기하다니.

    서클에 가입하려면 통과의례였던 전태일 평전, 대학에 들어와 처음 전태일을 알았다는 두 사람. 왜 이 다리가 전태일다리가 아닌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 아니냐고 안치환은 목소리를 높였고, 이지상은 오세훈 시장이 새긴 명판을 사진으로 다 찍었다며, 자기들이 이 거리에 전태일을 기린답시고 명판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그걸 부정할 수는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광장시장의 허름한 순대국밥집에서 푸짐한 순대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이들은 전태일과 요즘 삶을 교차하며 얘기를 풀어냈다. 딸아이가 삼성핸드폰을 사달라고 해서 “삼성은 안돼”라고 했더니 입이 이만큼 튀어나오더라는 안치환의 얘기에, 이지상은 “니 딸도 그러냐, 우리 딸도 그런다. 꼭 사고 싶은 게 삼성 거라는데, 내가 삼성은 안 되고 다른 걸로 하자고 하니까 불만이 그냥….”

    가수 아빠를 뒀으면서도 애들이 아빠 노래는 안 듣고 다른 가수 사진을 붙여놔서 너무 섭섭하다는 얘기, 운동사회가 문화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 전태일 행사가 우리 안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온갖 얘기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튀다 섞이는 동안, 식어버린 순대국은 몇 차례나 다시 데워져 상에 올랐다. 술잔은 자꾸 비고 술병은 늘어갔다.

    그들의 노래가 있어 행복했다

    90년대 들어서 많은 민중가수들이 궁핍한 생계와 음악과 운동에 대한 고민들 사이에서 하나 둘, 다른 길로 사라졌다. 뜨거운 시대에 그들은 수만 명 민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거리의 가장 앞에서 혁명과 꿈을 노래했고, 그들의 노래가 있어 그 ‘민중’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함께 환호하고 호흡했던 민중들이 그들의 현실까지 책임져주진 못했다. 계속 가난한 거리의 가수로 살거나 평범한 생활인이 되거나 하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선택 앞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이든 해야 했고, 그 선택의 결과에 맞게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거리의 노래운동가들이었던 안치환과 이지상도 다사다난했을 세월을 거쳐, 나름의 삶을 살아 지금 여기 이런 모습으로 서 있다.

    돈이 곧 권력이고, 돈이 곧 행복이라 우기는 이런 시대에, 큰 무리 팬클럽을 끌고 다니는 가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래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당당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불러낼 수 있어 행복하고,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어 행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은 다짐이라도 놓지 않게 해 줘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돈이 곧 행복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어 이 두 가수도 행복하다. 그래서 노래한다.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이지상은 그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마을을 노래한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삶과 노래에, 어린 시다들을 위해 차비를 털어 풀빵을 먹이고 먼 길을 걸었던 전태일이 조용히 내려 앉아 있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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