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전박대 하지 말아주세요"
        2010년 09월 09일 03: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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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곤파스가 한바탕 휘몰아친 지난 2일, 도심지의 많은 건물에서 정전 사태가 속출했다. 이 때문에 전기안전을 점검하는 이들의 발걸음도 분주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인 3일, 전기안전공사 점검부에서 일하는 이성규 씨(57세)를 따라 전기안전점검 현장을 따라가봤다.

    "손님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안녕하세요. 전기안전점검 나왔어요. 배전판이 어디 있을까요? 배전판 좀 볼 수 있을까요?” 이성규 씨를 따라 고척동의 한 감자탕집으로 들어섰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선 이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 안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온다. “전기안전 점검이요? 한전에서 나오신 거예요?” 테이블 한 곳에서 식사 중이던 손님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주머니들은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이성규 씨에게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인다.

    “손님있는데,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하세요. 어제도 11시간만에 전기가 들어와서 영업도 못했는데…” 이성규 씨도 난처하긴 마찬가지. “일부러 점심시간 전에 찾아왔는데 손님이 계시네….”

    우두커니 서 있던 이 씨에게 몇분 만에 전기를 내려도 된다는 주인의 ‘허락’이 떨어졌다. 식당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있는 네모난 배전판을 열어젖히자 ‘간판’, ‘형광등’, ‘냉장고’.. 등등 십여 가지의 전기가 연결된 배선이 눈에 들어온다. 

       
      ▲안전점검 중인이성규씨. 

    이성규 씨가 하는 일은 누전을 차단하는 전기 차단기가 잘 작동하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일. 차단기에는 버튼과 스위치가 달려있다. 이 씨가 볼펜 끝으로 버튼을 누르자 차단기 스위치가 아래로 툭 떨어진다. “이러면 누전시에 차단이 잘 되는 겁니다” 이성규 씨가 설명한다. 각각의 전기시설에 달린 차단기를 모두 이런 식으로 시험하고 이상이 없으면 검사날짜가 적힌 검사확인 스티커를 붙인다.

    “어제 여기 전기 안들어왔죠?” 이 씨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식당주인의 원망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이 일대 전기 다 안들어왔어요. 어제 장사 못한 거 어떡해야 되냐구요. 책임지셔야되는거 아니예요?”

    문전박대 당할 때도

    전날은 태풍 콘파스가 한반도 일대를 강타해 도심지에 한바탕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전기가 나가는 문제는 한전 소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냥 ‘전기’문제일 뿐이다. 이성규 씨도 굳이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여성 한 명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말고 이 씨의 방문에 약간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컴퓨터와 프린터를 끄고 배전판에 함께 서서 식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단기 상태를 점검했다. 

    “장마철 차단기 떨어진 적 없어요? 한 달에 한번 차단기 버턴 눌러서 차단스위치 잘 작동하는지 확인해세요”라는 당부 내용과 “검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두 번째 반복됐다.

    주택은 3년에 한번 전기안전점검을 하지만 식당이나, 노래방, pc방처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은 이처럼 1년에 한번 점검을 한다. ‘다중이용시설’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 전기가 계속 돌아가야하는데 잠깐이라도 전기가 나가는 상황을 사업주 입장에서는 반길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은 이 씨처럼 전기안전 점검을 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아이러니를 겪게 만든다.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전기를 이용하게 해드리겠다는 건데 대부분 싫어하고, 어떨 땐 문전박대까지 받으니까 많이 섭섭하죠. 낯선사람의 방문을 꺼리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신분확인을 위해 일부러 ‘전기안전공사’조끼를 입고가도 마치 범죄자 대하듯 의심부터 받는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공기업 선진화’ 미명 인력감축, 노동강도 강화

    3층에 올라가니 이번엔 살림집으로 보이는 현관문이 나타난다.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이성규 씨가 몇 번이나 “전기안전 점검 나왔습니다. 계십니까”라고 소리쳐도 안에는 강아지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이 시간에 이런 주거 공간에는 열에 일곱은 사람이 없어요. 사람을 만나려면 서너 번 와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가정집의 경우 평일 낮에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요즘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 방범이 철저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러번 헛걸음을 하거나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에 찾아가야 하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하루에 42건 정도 6일을 근무해야 할당량을 채울 수 있어요. 그러니 사람이 없다고 점검을 안 나갈 수도 없죠. 상대방이 원하는 시간에 가줘야 하니까 그게 힘든 거죠.”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실적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전기안전공사에 대해 10%의 인력 감축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기안전공사는 매년 72명씩 4년간 사람을 줄여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공사 사장은 ‘1초 경영’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단시간에 많은 실적을 올릴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성규 씨는 “지금도 하루 할당된 양을 채우기가 쉽지 않아요. 평일엔 사람이 없어 100건 가지고 나가도 40건 정도밖에 처리를 못하니까 한달에 무조건 토요일 1번, 일요일 1번은 점검을 나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성규 씨는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전기점검 안내 종이를 잘 챙겨주셨으면 해요. 연락을 했을 때 원하는 시간을 얘기해 주시면 맞춰서 찾아가거든요. 헛걸음은 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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