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강 사업, 국민투표로 가자
        2010년 09월 09일 0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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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부가 하는 긴박한 정책에 맞추어서 책을 냈던 적이 두 번이 있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는 노무현 시절에 한미 FTA 강행 때,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한반도 대운하 강행에 맞추어서 책을 냈었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에 따라서 급하게 책을 낼 때,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일정을 모두 정지시키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고 한동안 틀어박혀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특정 사건과 관련해서 책을 쓸 때에는, 사건이 진행 중인 동안에 쓰는 방법이 있고, 사건이 끝나고 나서 후일담으로 쓰는 방법이 있다.

    주로 활동가와 문인들이 진행 중에 책을 내고, 학자들은 사건의 의미를 평가하면서 사후에 책을 쓰는 것 같다. 나는 드레퓌스 사건 때 로로르(L’aurore)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글을 썼던 에밀 졸라를 마음 속에 담고 사는 편이라서, 너무 늦기 전에 책을 내려고 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내가 본격적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것은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책에서 처음 했던 일이다. 이미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경주 방폐장 등 주민투표가 도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정의 주요 현안은 1987년 9차 개정헌법으로 국민투표라는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이 제도가 활용된 적이 없던 것은 좀 문제라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이다.

    잘못된 정부정책 세우는 ‘브레이커’

    유럽의 경우, 유로라는 통합 화폐의 도입 같은 것들이 개별 국가들의 국민투표로 진행되었다.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레퍼렌덤(referendum)’이라는 형식으로 질문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된 스위스의 경우는 1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6만 5천불 정도로 알고 있다. 여기는 국민투표가 잘못된 정책을 세우는 ‘브레이커(breaker)’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스위스의 국민투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라크 파병 때였다. 정책에 따라서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 정도로 볼 수 있었던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당시 스위스의 집권당은 중도좌파였다.

    영구중립국이라는 고유 입장 때문에 EU 가입을 국민들은 거부했고, 세계화 국면에서 고립될 수는 없다고 좌파들은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는데, 스위스의 극우파 정당인 ‘중앙민주연합’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좌파들의 이라크 파병을 저지하고, 그 힘을 모아 결국 스위스 최대 정당이 되었다.

    민족주의적이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극우파 정당이지만, 스위스 파병을 ‘인권’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그것을 국민투표라는 평화적인 방식에 의해서 저지한 당시의 스위스의 극우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질문을 던져주었다.

    한국에서 우파들이 국민투표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시기는, 역시 노무현 시기의 수도 이전 때라고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때때로 좌파도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우파들도 요구하고, 그렇게 스스로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서 요구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외국의 경우처럼 유권자의 일정 숫자가 서명을 통해서 국민투표를 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9차 개정헌법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부의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할지 말지, 대통령 맘대로라는 것이 현 헌법에서의 국민투표의 발동 요건이다. 지금의 헌법 체계에서도 얼마든지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물어보기’를 할 수 있지만, 단, 그것은 대통령이 원하는 때에만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어있는 셈이다.

    국민투표는 가능한가?

    이 시점에서, 청와대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 사업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적절한가, 그리고 가능한가, 그런 질문이 유효할까? 아마 이번의 국민투표까지 포함하면, 아마 한국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국민투표를 주장한 사람이 될 것 같다. 내가 국민투표라는 제도를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선진적 제도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폭주할 때, 그들의 힘이 근간이 바로 국민들에게서 나온다는 사회적 합의의 기반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뷰로크라시라고 하는 관료제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정당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고,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상호 견제와 조율이 실패했을 때, 우리는 제3의 중재자의 존재를 갈망하게 된다. 원래는 이 존재가 바로 국민이다. 그러나 국민투표와 같이, 국민이 직접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환기되지 않으면,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 함정에서 나올 수 없게 된다

    이 때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광장이다. 그러나 매번 광장에서 국민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과정은, 너무 피곤하고 또 고비용인 것이 아닌가? 이 광장을 내제화한 것이 바로 국민투표라는 제도이다.

    ‘끝장 투표’의 매력

    둘째는, 국민투표라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집단적 민주주의의 훈련이며 동시에 축제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민투표가 시작되면 수많은 단체와 정부가 토론을 하고, 또 그 과정은 비단 공중파와 같은 미디어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각급 단위에서, 각 지역에서 수많은 토론을 하게 된다

    가끔 내가 ‘손석희쇼’라고 부르고는 했던 그 ‘끝장 토론’이 아니라 ‘끝장 투표’가 바로 국민투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민주주의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함께 훈련이 필요한데, 잘 디자인된 국민투표는 그런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이걸 단순히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풀고, 결정은 투표로 하자, 그런 현실적인 제도로서의 강점을 국민투표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러한 몇 개의 특징들을 놓고 생각해볼 때, 4대강 사업의 경우는 국민투표로 들어가기 좋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반대가 더 의견이 높다. 대통령으로서는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가 생각하는 4대강의 장점이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생태적으로도 타당한 것이라면, 지금과 같이 행정력과 자금력을 동원해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국민투표를 통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그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지적이 있다.

    과정이 귀찮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민주주의적 지도자가 될 수가 없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권력을 부여받은 ‘왕권신수설’ 대신에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공화국을 역사적으로 우리가 만든 이유가, 그게 장기적으로 보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2.

    국민투표라는 질문은 우리의 대통령에게 심각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받아들인다면, 그는 최소한 절차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구할 수 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힘 싸움이 된다.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차벽으로 다시 한 번 국민의 힘과 맞서게 되는 상황, 그러한 대결 국민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절차는, 대체적으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이 국민투표를 발동시키는 메카니즘은 서명을 통해서 진행된다. 서명의 주체는 누구라도 상관없다.

    4대강 국민투표의 경우는, 여5당이 될지, 아니면 선진당을 포함한 여5당이 될지, 나는 선진당의 4대강에 대한 입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정치 집단의 형식은 잘 모르겠다.

    여기에 환경단체만이 아닌 시민단체가 국민투표 서명의 주체로 결합할 수 있다. 또 다른 형식의 흐름으로, 주류 매체에서는 잘 인정하지 않지만, 민중단체라고 분류되는 또 다른 일련의 국민 대변자들이 있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소외된 경제주체들의 대변자들을 우리는 민중단체라고 부른다.

    토건경제라는 거대한 흐름 내에서 복지경제 대신 토건경제 속에서 희생되는, 4대강의 직접적 피해자들이 국민투표 서명의 또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맞서는 현실적 힘

    만약에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거부한다면, 결국은 힘과 힘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그 힘의 잣대가 되는 정도의 수치라면 상징적으로 ‘천만인 서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국민 1천만명이 원하는 일을 거부할 수 있는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집단과 시민단체 그리고 민중단체까지 포괄적으로 결합된 운동본부가 구성된 적은 없다. 한미 FTA의 경우는 시민단체와 민중단체가 손을 잡기는 했지만, 민주당은 자신이 이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였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이번 4대강 국민투표의 서명에는 예를 들면, 중학교 이상의 아직 투표권을 가지지 않은 예비 유권자들도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서명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들의 문제이고, 이미 태어난 청소년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청소년들도 모두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이해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현행법상의 유권자들끼리만 이 땅의 생태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는 않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국민투표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폭적으로 참정권의 범위를 확대하는 변화가 생기기 전에는 법적으로 곤란하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투표를 우리가 실시하면 좋겠다는 그 서명에, 다음 세대와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대표하여,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현재 국민의 70% 가량이, 어떤 식으로든 지금과 같은 4대강을 집행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는 국회에서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아주 손쉬운 방식과 국민투표를 통해서 온 국민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너무 늦기 전에 해야할 유일한 방법

    그러나 전자는,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 상황에서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국민 서명을 통한 국민투표가, 너무 늦기 전에 한국의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이 태고적부터 이어온 국토의 숨맥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9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4대강 반대를 위한 10만 국민대회가 5시부터 열리기로 계획되어 있다. 당연한 수순으로, 경찰은 집시법을 들어 집회를 불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광장은 열리지 않고, 공중파는 굳게 막혀있고, 4대강은 지금도 불도저에 의해서 숨통이 틀어막히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다음 세대와 생태 그리고 탈토건을 고민하는 국민들 중 서명 정도는 하겠다는 사람이 천 만명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시민단체가 지금까지 했던 가장 대규모의 서명은 백만명이었다.

    국민투표 같은 평화로운 장치도 수용하지 않고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4대강 사업을 강행한다면, 그 다음에는 정권 불신임 수순으로 나가지 않겠는가? 합의와 토론, 그런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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