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사회
        2010년 09월 08일 0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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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장관과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국민이 얼마나 신뢰하는가는 제쳐놓고라도 대통령과 정부 부처에서 강조하는 국정 키워드는 ‘공정사회’이다.

    이 말이 이미 굳어져가는 ‘격차사회’의 현실을 외면한 채 반복되는 레토릭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공정사회라는 것에 과연 대한민국 청년들은 포함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의 특혜취업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와 장관이 청년실업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청년실업자보다 그들의 부모에게 먼저 사과해야 할 것이다. 시쳇말로 빽도 돈도 없는 대한민국의 보통 부모들이, 취업하지 못한 자녀의 절망을 자신의 무능(?) 때문이라고 자책하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세대의 절망은 부모세대의 자책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구호와 현실, 통계와 실상의 괴리

    이 정부의 일자리정책은 과연 청년들에게 공정한가? 그리고 그에 걸맞게 예산은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가? 청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한 공정한 기회는 주어지고 있기는 할까? 청년층 취업자수가 지난 30년 이래 최저수준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작 청년층의 공식적인 실업률은 OECD국가 평균의 절반수준이지만 OECD국가 중 최하에 달하는 청년층 고용률과 취업자 수는 청년들의 현실과 통계지표상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공식적인 청년실업률은 경기에 따라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평균적으로 8%대를 오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질청년실업률은 20%를 훌쩍 넘기고 있다. 각종 기업연구소들에서도 실질청년실업률이 20%를 넘어서고 있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경고한다. 공식적인 청년실업률과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고용상황이 이처럼 동떨어진 이유는 현재의 실업률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청년실업자 통계에는 60만에 달하는 취업준비자, 18시간 미만 노동을 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생, 구직단념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관료나 관련 연구자들이 제대로 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기준과 통계지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실업률 외에도 고용의 불안정성 등을 측정할 수 있도록 6단계에 걸친 고용지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현재 청년들의 고용불안을 제대로 반영하는 공정한 실업률 통계지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갈피 못 잡는 청년실업 정책과 예산

    산업정책과 예산배분 면에서도 따져볼 점이 많다. 정부는 4대강사업을 비롯해 토목건설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건설업에서 청년층 취업자수는 계속해서 줄고 있다. 통계청의 ‘2010년도 2·4분기 연령별·산업별 취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34세까지 청년층의 올 4~6월 건설업 취업자수는 30만 6000명으로 4대강사업이 시작되기 전보다 4만 7천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지금 토목건설업 등에 수십조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청년고용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2,30대 청년층이 가장 주목한 정책이슈가 4대강사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합리적이고 공정한 예산배분과 사업집행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현재 일하고 있는 청년들 다수가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처해 있는 현실도 돌아봐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노동자 중 시간제나 임시일용직 같은 비정규직 비율은 52%로, 중장년층의 44%보다 훨씬 높다. 저임금노동자 비율도 30.74%로 중장년층의 23%을 한참 상회한다.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로 전락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 바로 청년층이다. 그때 가서 공정한 경쟁 운운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경쟁을 벌일 만한 여력이 없고 오히려 빈곤탈출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워킹 푸어로 급전직하중인 청년층을 위한 소득정책과 사회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

    일례로 현재의 고용보험제도는 청년층 다수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피보험자가 천만명을 넘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정작 29세 미만 청년층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996년에 39.3%에서 2010년 7월 현재 22.6%로 급감했다. 상당수 청년들이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어 고용이 워낙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을 막 졸업한 신규 청년실업자와 직업탐색기간을 거치고 있어 이직이 활발한 청년노동자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자발적 이직자에게 실업급여 지급이 되지 않고 신규실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신규 청년실업자 등을 고용안전망에 포함하는 실업부조의 도입과 고용보험의 개선은 진작 논의되었어야 하는 제도이다.

    ‘젊은이들 눈이 높아서…’ 운운하는 정부의 무책임성

    하지만 정부의 정책담당자와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취업하기 어렵다고 왈가왈부한다. 물론 젊은층에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상당수의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는 이미 중소기업 취업자 개인의 노력으로 좁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또한 고질적인 학벌구조에 따른 취업관행과 경력직을 선호하는 주요 기업들의 행태 역시 ‘학벌’과 ‘경력’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지지 못한 다수의 청년층이 자격증이나 학점, 어학연수 따위를 통해 ‘스펙 쌓기’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처럼 구조적 원인을 제쳐두고 청년층의 눈높이만 나무라는 것 역시 공정한 시각이라 할 수 없다. 주요 공기업과 대기업에 청년층의 신규채용을 강제하는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종업원수 50인 이상의 민간기업이 고용인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실업자를 의무 채용하도록 하는 제도) 같은 한국판 청년고용할당제의 도입은 어쩌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과열된 스펙 경쟁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고려해봄직한 대책이다.

    진보개혁진영에서 주장하는 복지담론에서도 청년층의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떠나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복지국가라는 것이 주목받고 있음에도 정작 필자가 만나본 청년층 다수는 복지담론에 상당히 무감각하다. 설령 복지국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중장년층 또는 노년층만 이득 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청년을 위한 복지담론과 공정사회 바란다

    의료보험비를 더 내서 의료혜택을 확충하자는 논리도 당장 몸이 건강하고 소득이 워낙 적어 아예 의료보험비를 내는 것 자체가 부담인 청년층 입장에서는 환영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에 대한 과열된 비판이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의 청년층에서 자주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지국가 구상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논하는 과정에서 청년집단의 현실을 고려하고 세대간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는 세대간에도 공정한 사회인가? 공정사회라는 가치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강남과 비강남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가치는 또한 십여년째 만성실업과 불안정노동 속에 시달리며 모두가 죽고 한명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속에 내몰리고 있는 수백만의 청년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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