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 내리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2010년 09월 08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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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문제가 연일 논란이다. 다만 그동안과 다른 점은 집값이 올라서가 아니라, 내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집값을 올리지 않으면서도 거래는 늘릴 수 있는 묘책을 찾느라 전전긍긍이다. 도대체 그런 신묘한 일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8월 29일 정부는 일반의 예상보다 더 화끈한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내년 3월까지 사실상 해제했다. 물론 은행 자율규제에다 강남권이 제외되기는 했지만, 어떻든 최근 집값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된 DTI 장벽을 없앤 것이다. 또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을 2억원 한도 내에서 저리(低利)로 융자할 수 있도록 했다. 말하자면 은행돈 빌려 집 사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책 발표 열흘이 지나도 시장은 잠잠하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었다는 조짐도 없다. 그럼 이번 대책은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대책은 심리적 조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내심 걱정하고 있는 집값 폭락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집값 하락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동시에 일부에서 말하듯 대폭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8·29대책은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부가 마지못해 내놓은 대책일 뿐이다. 다만 장기적인 체질개선이라는 점에서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부정적인 조치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DTI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규범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별 효과도 없이 원칙을 훼손해버렸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가 심화될 거라는 우려도 크다.

    집값이 내려가도 파국은 없다

    대안을 얘기하기 전에, 우선 모두가 걱정하는 집값에 대해 생각해보자. 집값은 인구·산업변화 같은 장기추세, 경기나 고용사정 변화, 유동성 변화 같은 중단기 추세가 결합되어 움직인다. 따라서 인구가 늘고 경제가 급성장하는 국면에서는 웬만해서 집값 잡기가 쉽지 않고, 반면 인구·산업이 저성장단계에 들어서면 집값의 하강압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장기 흐름상 주택가격이 더이상 오르기 어려웠지만 단기적 영향으로 이상 급등했던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 선진국). 반면 중국처럼 장기추세가 여전히 상승국면에 있는 국가들은 이번 위기의 여파가 훨씬 적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식 장기 거품붕괴가 나타날 단계는 아니다. 인구 구조가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점 외에도 전반적인 주거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어느정도 가격하락시에 수요가 회복될 저지선이 있다는 점, 또한 우리나라 특유의 전세제도로 인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매우 낮아서 은행부실과 그에 따른 연쇄적 가격하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이 이유이다. 다만 중기적으로 하락은 불가피한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향후 3~4년 정도의 주택가격 하향안정 추세가 계속될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장기대책 준비할 때

    다행히 이번에 큰 위기가 없다 하더라도, 인구 구조가 정점을 찍게 되는 2020년까지 제대로 연착륙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진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10년간 과거 관성대로 부동산 경기부양에 매달리고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수급불균형 현상을 더 크게 부풀려서 마구잡이식 공급을 한다면 진짜 거품붕괴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번의 위기를 계기로 ‘부동산 불패론’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진정한 주택정책 체질개선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몇가지 핵심 과제가 있다.

    우선 민간임대주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자가소유율은 이미 60%를 넘어섰다. 일본의 자가소유율이 1968년 이후 지금까지 61%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도 이미 정점에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민간임대에 거주하더라도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전세금 반환 위주로 설계되어 있는 임대차보호제도를 선진국형 임대차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임대용 주택은 예외 없이 등록하게 하고, 점진적으로 전세과세를 포함한 임대소득세 현실화도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임대주택을 계속 늘려야 한다. 현재 전체 가구의 3% 정도만 거주할 물량을 가진 상태에서는 안전망 구실을 하기도 어렵다. 최소한 일본(6.4%)만큼이라도, 나아가 전체 가구의 10%가 살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주거복지정책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주택경기가 바닥에 있을 때는 가장 부작용이 적은 경기부양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10년간 부동산 관련 세제를 지속가능한 세제로 정착시켜야 한다. 집값이 오를 때는 허겁지겁 올리다가 내릴 때는 또 모두 다 내리는 ‘널뛰기 세제’를 끝내야 한다. 경기상황에 따라 강약을 조절할 세금도 있지만, 대부분은 규범으로 정착해두어야 할 일이다. 여기서 여전히 중요한 원칙은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낮추는’ 것이다. 또 임대소득세 정착에 맞춰 양도세 제도도 재편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부양이라는 마약 끊기

    물론 시장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체질개선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하향안정 추세가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그간 과다하게 팽창했던 건설업이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냥 무작정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체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과 정부 할 것 없이 마구 벌여놓았던 개발사업도 될 일과 안될 일, 급한 일과 아닌 일을 나눠야 한다.

    더 신경쓸 일은 집 한채만 가진 가정이 담보대출을 못 갚는 사태이다. 집값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금융권은 낮은 LTV 덕분에 안전하지만, 가계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경우 상환에 여유를 주거나 낮은 이자로 바꾸도록 지원한 바 있다. 아직 과감한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획기적인 지원책을 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된다.

    너무 비싼 집값은 우리 경제의 혹이다. 거품은 빼야 한다. 그러나 잔뜩 부푼 풍선은 바람이 조금만 빠져도 쭈글쭈글한 곳이 생긴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울퉁불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다행히 이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 아직 시간도 남아 있다. 가격하강 국면에 부동산 체질개선에 나서면 오히려 더 건강한 경제로 되살아날 수 있다. 다만 그때까지 또다시 건설업 경기부양이라는 마약에 손대지 않으면 된다. 집값 내리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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