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문의 죽음 후 23년 만에 치러진 장례
    By 나난
        2010년 09월 08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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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까맣게 탄 아들의 유골을 차마 묻지 못했던 어머니는 몇 년간 시신을 집에 두고 온갖 집회 현장을 다녔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들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 “노동자 정경식을 죽인 살인자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하며, 아들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이 세상에 폭로되길 원했다.

       
      ▲ 고 정경식.

    하지만 고 정경식 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지 23년이 지난 2010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난 8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정 씨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에 따라 23년간 미뤄온 장례식도 겨우 치를 수 있을 뿐이었다.

    8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1987년 실종됐다 유골로 돌아온 고 정경식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등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영결식은 23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영결식 참석자들은 정 씨의 장례가 23년 만에라도 치러진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의문의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채 그를 땅에 묻어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떨궜다.

    23년만의 장례식… 그러나 아직도 진실은…

    정경식. 그는 1984년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 특수생산부에 입사한 이후 드릴을 교체하다 오른팔이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한 이후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회사가 근무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당연한 보상이 아닌 ‘본인의 부주의’를 강조하며 그만 둘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조합이 제대로 서 있다면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87년 5월 28일 노동조합 대의원 및 지부장 선거 당시 회사의 선거개입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아무개 대의원과 폭행사건이 발생했고, 정 씨는 폭행죄로 고소당했다.

       
      ▲ 8일 민주노총 앞에서 고 정경식 씨의 영결식이 개최됐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그리고 그해 6월 8일 정 씨는 이 씨와의 합의를 위해 근무 중 외출증을 끊고 나간 뒤 실종됐다. 정 씨가 유골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88년 3월 2일이다. 경남 창원시 소재 불모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던 중 정 씨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정 씨의 행방불명 이후 결성된 ‘대우중공업 정경식 실종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으나,  88년 8월 마산지검은 정경식 사건을 ‘자살’로 사건 종결했고, 회사 측은 어머니를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어머니는 89년 7월부터 3개월간 마산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은 계속됐다. 2000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아들의 사건을 접수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요구했지만, 2002년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진상규명 불능’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또 다시 사건을 신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진실규명 불능’이었다.

    옥살이까지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규명 불능’

    하지만 정 씨의 죽음 이후 23년간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뛰어다닌 어머니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답하듯 2010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정 씨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리고 9월 8일 23년만에 정 씨의 장례식이 치러지게 됐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영결식 조사를 통해 “23년이나 지나서야 허락된 묘비명이 고작 ‘관련자’”라며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주인”이라며 정 씨 의문의 죽음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93년 대우중공업 위원장 출신이자 정 씨와 함께 근무했던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은 “효성이 깊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며 정 씨를 기억했다. 그는 “긴 시간 구천에서 떠돌며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23년 만에 땅에 묻히지만, 그가 어떻게 죽었고,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영결식에서 “23년이나 지나서야 허락된 묘비명이 고작 ‘관련자’”라며 “‘민주화운동관련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주인”이라며 정 씨 의문의 죽음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사진=이명익 기자/ 노동과세계)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불혹의 세월을 바친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아들을 헤친 사람이 양심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기 원하고 있다. 어머니는 “양심선언을 한다고 해서 죽은 경식이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경식이의 영혼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장례도 치러줬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은 아직 이뤄지지 못한 채 아들을 땅에 묻는 어머니는 “살인자 좀 처벌해 달라”며 “죽은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다”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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