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원 전체가 교섭대표였다"
        2010년 09월 07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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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를 결성하고 명성전자 노동조합 단체협약 초안을 만들었다. 88년 11월 중순, 조합원 총회에서 단체협약 요구안을 확정하고 힘찬 투쟁을 결의하기로 했다. 회사와 실랑이 끝에 간신히 2시간을 합의하고 3시30분부터 식당에서 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황급히 대의원 한 명이 노조사무실로 뛰어왔다.

    “위원장님, 큰 일 났어요. 조합원들이 퇴근카드를 찍고 퇴근하고 있어요!”
    “어떻게 된 건데?”
    “1층 관리자가 방송했어요. 오늘은 그냥 퇴근해도 정상퇴근으로 해준다고요!”
    정문으로 뛰어나갔다.
    “조합원 여러분! 오늘은 퇴근하시고 내일 이 시간에 식당에서 봅시다. 회사에서 고마운 일을 했네요!”
    식당으로 가보니 150여 명 남짓 앉아 있었다. 이미 300여 명이 퇴근을 한 것이다. 아찔했다.

       
      ▲ 1988년 명성전자 투쟁을 다룬 당시의 <인노협 신문>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앞으로 단체협약 투쟁을 하는 데 핵심입니다. 오늘은 일찍 가서 쉬시고 내일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봅시다. 임원, 상집, 대의원, 라인 소위원과 상집 차장들까지는 이 자리에 남아 주십시오!”
    노조로 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회사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조합원들 총회하면 피곤할까봐 조기 퇴근시키시고 내일 총회하라는 말씀이시죠? 감사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오늘 총회한다면서요?”
    “그것은 제 알 바 아니고 1층 계장한테 물어보세요.”

    남은 사람은 서른여섯

    식당에 빙 둘러 앉은 사람들은 모두 36명이었다.
    “지금부터 돌아가면서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저부터 하겠습니다. 조합원들이 오늘 이렇게 가버린 건 순전히 제 잘못입니다. 단체협약이 노조에게,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설명하고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점, 저희 임원들이 조합원들을 직접 조직하려고 하면서 여러분들의 역할을 빼앗아버린 점, 이 두 가지는 분명 저의 잘못입니다. 앞으로 월권행위 하지 않겠으니 열심히 해 봅시다!”

    이어 부위원장, 회계감사, 사무장, 대의원들, 상집들, 상집차장, 라인 열 명 당 한 명의 소위원들 모두 스스로 반성하느라 식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럼, 내일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단체협약은 제대로 체결하지 못하면 노조가 있으나 마나 할 만큼 중요합니다. 이 단체협약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식을 높여내고 그것으로 인노협 가입과 전노협 건설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노조가 보인 이 헛점에 회사는 분명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만 내일부터 우리가 단결된 조직력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제대로 한다면 회사는 오늘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라인별 공청회에 임원진들이 일체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의원들 스스로 노조상황과 교섭상황을 알리고 그 라인에 있는 상집, 차장, 소위원들이 대의원을 도와주십시오.

    우선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라인 돌리지 말고, 공청회를 열고 단협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대의원들이 설명하시고, 오후 총회 참석할 때 어떤 대오로 올지 의견수렴해서 라인별로 총회 참석하세요. 이상입니다!”

    회의가 끝났지만 아무도 일어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걱정이 태산들이다. 라인별이면 50여명, 대의원이라지만 마이크 잡고 조합원 앞에서 연설 한 번 한 적 없었는데 용어도 익숙치 않은 단체협약 내용을 설명하라니? 아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임원들을 붙들고 통사정이다.

    “내일만 해주시면 안 돼요?”
    “정말 저는 못해요~”
    “공부를 진작에 시켜주시지 이제 와서 설명을 하라면 어떻게 해요?”등등.

    “정말 못하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사무장과 부위원장이 붙어서 퇴근 후 공부 좀 시켜주세요!”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안도하며 서로 두 사람을 선점하려 애썼다.
    다음 날 아침 8시, 간부들이 줄줄이 노조사무실로 들어서는데 한결같이 눈이 게슴츠레 하거나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야! 단체협약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구나.’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고 “공부들 억수로 했나보네, 눈들이 밤새 운 사람 같아.”

    공부하느라 밤 새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한다. 밤새 공부하고 연습하느라 한 잠도 못잤단다.
    “도저히 자신 없는 사람은 층별로 해도 되니 층 대의원과 상집들이 알아서 하세요.”
    이 말에 아무도 그러겠다는 대의원은 없었다. 8시30분부터 9시까지 라인별 공청회가 시작되었다. 상근자 세 명이 한 층씩 맡아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나름 감동적으로 설명을 잘 하는 대의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저기요, 그것, 그.. 있잖아요. 오늘 식당…….”
    “노래 한 곡 문화부에서 더 해요~”
    “아무튼 오늘 3시30분 식당입니다!” 라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대의원들은 점심시간에도 쉬지않고 식당을 돌며 조합원들에게 단협 설명을 하고 있었다.
    3시 30분, 총회시간, 노조는 회사로부터 어제 일에 대한 사과와 함께 어제 조기퇴근과 오늘 아침 30분 공청회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다음 기세높여 총회를 시작했다.

    라인별로 교섭대표를 선출했고 파업자위대, 즉 단협사수대를 만들어 교섭대표와 투쟁대오를 호위하기로 했다. 각 부서와 라인에서는 단협이 끝날 때까지 개인, 부서, 라인 그리고 1층, 2층, 3층은 각각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서를 내기로 결의하고 힘차게 총회를 마쳤다.

    그리고 길고 긴 단협투쟁이 시작됐다. 두달 여 동안(당시는 두달도 긴 교섭이었음) 대의원들은 크게 성장 했다. 라인별로 뽑은 교섭대표 대의원들은 교섭을 마친 다음에는 반드시 보고대회를 열었다. 그 속에서 조합원과 호흡을 맞추며 선전선동뿐만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원칙들을 만들어갔다.

    관리자와 친분이 두터운 상집이나 대의원, 조합원이 있을테니 교섭 기간에는 교섭자리 이외에서는 절대 관리자와 말하지 않고 오직 노조 임원들 만나기로 결의했다. 왜냐면 전쟁 중이니까. 그런데 한 간부가 총무과장과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가다가 잠시 몇 마디 한 모양이었다. 한 간부가 노조로 뛰어오더니 점심시간 후에 바로 비상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해 달라고 했다. “저 간부가 총무과장과 이야기를 했고, 원칙을 깬 그는 간부느 확대간부회의에서 비판받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하지 마라

    또 이런 원칙도 세웠다.
    “교섭에서 가벼운 안을 다룰 때는 사장이 안 나오던데, 위원장님도 교섭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합의가 어려울거 같은 상급단체로 인노협, 전노협을 정할 때라든가, 유급휴가 6일이나 조합원 교육시간, 간부활동 시간 확보 같은 중요한 안건 다룰 때만 참석 하시고 지역 연대활동 나가시는게 좋겠어요.”

    법외임의조직인 인노협을 상급단체를 명시하기 위해 합법적인 한국노총과 비교하여 설명할 때만 해도 몇몇은 불안해 하거나 의아해 하는 눈빛이었는데 만장일치로 결의를 모았다. 날마다 각층 화장실, 현장문, 컨베이어 벨트 위는 소자보로 도배가 되었다.

    밥 먹어도, 일을 해도 현장은 온통 “이번엔 어떤 조합원이 소자보를 쓸 것인지, 집회 사회는 누가 볼 것인지, 노래는 누가 부를 것인지, 교섭대표들이 교섭에 나갈 때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호위할 것인지, 각 라인에서는 머리띠는 뭘로 하고 피켓은 무슨 문구로 할 것인지, 파업자위대와 문화패는 어떤식으로 대오를 만들어 분위기를 가열시킬 것인지….” 등등 노조이야기로 벌집마냥 웅웅거렸다. 적어도 교섭을 진행하는 두 달 여 동안 450명 조합원들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하나같이 노조 때문에(?) 바빴다.

    그 교섭기간 동안 나는 총 네 번 교섭에 들어간 것 같다. 상견례, 조합원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으니 위원장이 특별히 교섭에 들어와 달라는 확대간부회의의 요청으로 한 번, 그리고 인사위원 동수구성, 상급단체 상근자 파견, 인노협과 전노협(준) 상급단체 인정, 조합비 일괄공제, 추석, 여름, 구정 6일 유급 휴가 명시(사실은 하루 양보하기로 했는데 워낙 힘이 세서 6일이 됨) 교섭 때였다.

    너무 힘이 세서 휴가가…

    마침내 마지막 교섭날이 왔다. 이날은 층별 라인별이 아닌 전 조합원이 함께 움직이는 날이었다. 교섭장소를 정하는 문제부터 회사와 옥신각신이었다. 회사는 4층 회의실을 고집했고, 노조는 식당을 원했다. 결국 오전엔 회의실, 오후엔 식당으로 정했다.

    오늘 안 되면 내일부터 파업이었다. 라인별로 파업준비를 확실히 마쳤다. 파업에 들어갈 것이란 기대에 조합원들은 흥분했다. 그동안 짬짬이 노조 일을 하기에 시원치가 않았으니 파업동안 노조 일 좀 편하게 실컷해보자고 아우성들이었다.

    지금까지 가슴이 아릴 만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나는 일이다. 1층 복도와 계단에서부터 4층 회의실 앞까지 늘어선 조합원 손마다“단체협약 완전쟁취! 인노협을 상급단체로, 인사위원 노사동수로, 끝내 승리하고 전노협 전설하리라!” 가 물결쳤다.

    오후에 진행한 교섭. 전체 조합원이 교섭대표였다. 회사가 반박을 하려하면 조합원들은 노래와 구호로 맞장 떴다. 결국 회사는 백기를 들었다.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하나였다. 모두가 두 달여 동안 성장했다. 전체 조합원이 스스로 말하고 실천하고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진짜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단협 투쟁을 통해 ‘잘 난 한 사람이 노조를 지켜낼 수 없다, 모두가 하나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다불어 ‘토론은 치열하되 결정하면 모두가 그 한 곳으로 집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민주집중제라는 큰 성과를 안고 명성노조는 지역연대투쟁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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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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