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걸그룹 일본 '침공' 사건
        2010년 09월 07일 07: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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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소녀시대 홈페이지 

    한국의 걸그룹들이 일본에서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녀시대, 카라, 포미닛 등이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다른 걸그룹들도 뒤를 이을 것 같다.

    마치 공습을 보는 듯하다. 영국의 밴드들이 미국 팝시장에 공습을 감행했던 브리티쉬 인베이전이 떠오를 정도다.

    이를 두고 새로운 한류 폭발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 이번 걸그룹의 일본 공습(?)이 의미 있는 것은 일본의 기존 한류팬들이 주로 ‘아줌마’들이었던데 반해 이번엔 10~20대 여성들이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10~20대 여성들은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집단이다. 팝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을 잡는다는 것은 당대의 최전선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겨울연가>로 중장년층에게 ‘추억’, ‘향수’ 등을 느끼게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인 것이다.

    특히 더 의미 있는 것은 이번에 진출한 걸그룹들이 한국의 컨텐츠를 가지고 갔다는 데 있다. 기존에 성공했던 동방신기나 보아의 경우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밟았었다. 이를 두고 한류가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현지화 노선만이 답이라는 칼럼이나 기사들이 여러 차례 나왔었다.

    말이 좋아 현지화지, 결국 인력 수출에 다름 아니다. 문화적으론 경쟁력이 없으니 사람을 보내 아예 그곳에서 살면서 일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걸 한류하고 하기엔 낯 뜨겁다.

    미국 사람이 한국에 와 살면서 한국 노래, 한국 드라마를 소화한다고 헐리우드의 공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미국 작품, 미국 노래가 들어와서 성공해야만 그런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류라는 말이 명실상부해지려면 우리의 컨텐츠가 그곳에서 인정받아야 했다.

    한류의 새 장을 열다

    이번 걸그룹의 공습이 바로 그것을 가능케 했다. 소녀시대는 쇼케이스에서 아예 한국어로 노래했다. 일본의 것을 베끼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한국 대중문화가 드디어 역습을 개시한 것이다. 대중음악 부문에서 한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는 이래서 가능하다.

    이에 따라 걸그룹들은 순식간에 영웅이 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5초 가수’란 비아냥을 들으며 우리 걸그룹이나 아이돌들은 냉소의 대상이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그들은 실력파 아티스트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자 걸그룹에 대한 비아냥이 쏙 들어갔다.

    일본의 아이돌 걸그룹은 ‘올망졸망한 여자 아이들의 율동단’ 같은 느낌이다. 일본의 걸그룹 쇼를 보면, ‘저기에 한국 걸그룹이 갔다가는 대폭발이 일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었다.

    한국 걸그룹은 소녀의 귀여움에 머물지 않는다. 소녀이면서 동시에 성인의 이미지까지 소화한다. 귀여움부터 섹시까지 모두 갖춘 것이다. 게다가 90년대부터 시작된 아이돌에 대한 질타가 헛되지 않았다. 기획사들은 노래를 어느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아이돌들을 만들어냈다. 립싱크 문제로 엄청난 질타를 받았던 SM에서 실력파 아이돌들인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이 나온 것이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훨씬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고, 완성도가 높은 걸그룹이라는 이미지는 이래서 가능했다. 그러자 10~20대 여성들이 반응한 것이다. 닮고 싶은 멋진 언니, 멋진 동년배로 동경의 대상일 수 있는 걸그룹을 한국이 공급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론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인정받고, 한국음악이 성공하는데 누가 싫다고 할 것인가. 그건 그렇지만 마냥 반가워만 하기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율동부터 섹시댄스까지 올인원 걸그룹

    한국 대중음악계가 궤멸 국면으로 가면서 이젠 노래의 완성도조차도 아이돌들이 선도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친구와 자주 하곤 했다. 소녀시대, 카라, 투애니원을 비롯한 걸그룹들의 노래 중엔 팝적인 완성도가 높은 노래들이 있었다. 귀여운 소녀들이 성숙미까지 소화하며 그렇게 완성도 높은 노래를 부르니 눈길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 다른 가수들은 모두 다 어디 갔단 말인가? 귀여움, 섹시미, 원숙함 등을 모두 아이돌이 빨아들이면 다른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90년대 이후 아이돌 전성시대가 전개되는 사이 한국 대중음악계는 망가져버렸다. 중견 가수들이 예능에 나와 웃음을 팔고 있다. 아이돌 이외엔 음악프로그램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다. 심지어 새 앨범 작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렇게 황폐해진 대중음악계에 아이돌만 비대해졌다. 특히 걸그룹은 율동부터 섹시댄스까지, 발랄 가요부터 성인팝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며 쇼비즈니스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문화적 대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걸그룹의 경쟁력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사실 아이돌은 귀여움 정도만 해도 좋다. 성인 가수들과 밴드들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아이돌과 공존하는 것이 더 풍부한 대중음악계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음악들이 자연스럽게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바람직한 구도다.

    지금의 걸그룹 공습은 마치 황폐해진 시장에서 모든 자원을 걸그룹에게 투입해 소수정예의 전천후 특공대를 조련해서 얻은 성과 같기 때문에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 화려함 뒤에 여전히 우리 대중음악계의 앙상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성숙하고 섹시한 우리의 어린 걸그룹들.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그들에게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며 그들의 경쟁력만 올라가는 지금의 구조는 확실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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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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